2017.08.20 10:02
책 목록 자체보다도 글들이 재밌어요!
1.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 로베르 브레송 : 가방 속 '생각의 오아시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132234015&code=960205
아마 누구나 가방 속에 책 한 권은 넣어 가지고 다닐 것이다. 예기치 않게 약속이 미뤄지거나 뜬금없이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 약속과 약속 사이에 아주 애매하게 틈이 생겨버릴 때가 있다. 나는 그런 시간을 사랑한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대낮의 휴식. 이 선물과도 같은 시간. 그때를 대비하여 들고 다니는 책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가벼울 것. 아무 페이지에서 시작해서 아무 페이지에서 끝나도 상관없을 것. 들고 다니다 낡아서 버리고 새 책을 사기에도 부담이 없을 것.
그냥 단 한마디로 위대한 로베르 브레송이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에서 자신의 연출에 관한 방법론에 의지해서 말하는 이 아름답기 짝이 없는 영화의 존재론에 관한 단상들은 구구절절 눈부시다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의 그 무언가를 건드린다. 먼저 고백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순서대로 읽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무 데나 펼쳐서 읽기 시작한 다음 약속 시간이 다가오면 별다른 표시를 하지 않고 덮었다. 수백 번, 아니 정말 과장 없이 수천 번을 뒤적거렸지만 어쩌면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이미 내가 읽은 구절인데도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을 때 마치 처음 읽는 것 같은 어떤 일깨움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거기에 밑줄도 쳐 있고 심지어 떠오른 어떤 생각을 써 넣기도 했는데도 항상 그러했다. 그때마다 나 자신에게 감사하게 된다. 무언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생각을 끌어내고 있고 그걸 이 책의 어느 문장을 읽을 때마다 확인하는 것 같은 기쁨에 사로잡힌다. 내가 들고 다니는 이 책은 벌써 열 권도 넘게 새로 산 판본이다. 아마 곧 또 새 책을 사야 할 것 같다.
2.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 자기 삶에 매일 용기 주는 법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142215025&code=960205
3. <히치콕과의 대화>, 프랑수아 트뤼포 : 구구절절한 시네필들의 우정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162320015&code=960205
4. <감독 오즈 야스지로>, 하스미 시게히코 : 나를 절망시킨 비평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172224005&code=960205
5. <말과 사물>, 미셸 푸코 : 원본 읽고 싶게 만든 명문장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182115005&code=960205
2017.08.20 15:08
2017.08.20 15:39
브레송의 흑백영화들은 두 눈 부릅뜨고 어떤 사명감을 갖고 봤다면, 후기 컬러영화들은 나도 모르게 좀더 느슨해졌고 어법이 좀더 친밀해서인지 마음으로 봤네요 ㅋㅋ 그래서인지 브레송 영화 중 저의 페이버릿은, 끝나고 멍했던 <돈>(1983)과 제목 등이 엣지있는 <아마도 악마가>(1977). 둘다 컬러.
2017.08.20 16:02
브레송 감독의 컬러 영화라니 어쩐지 상상이 안 가요. ^^
<소매치기>와 <당나귀 발타자르>가 이 감독의 최고작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후기작은 제목부터가 도발적인 것이 어떤 영화일지 궁금하네요.
<돈>은 인터넷에서 찾았고 <아마도 악마가>는 동네 도서관에 있던데 조만간 빌려서 봐야겠어요.
2017.08.21 10:59
저는 별로 인내심이 없는 사람인데도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영화는 그냥 숨죽이고 영화 속 인물들을 지켜보게 되더군요.
끝까지 열심히 보고 나면 언제나 엄청난 영화적 보상이 있었다는 걸 경험해서 그런 것 같아요.
소매치기(1959)은 너무 재밌어서 홀린 듯이 봤고 A Man Escaped(1956)도 꽤 스릴 넘치게 재밌게 봤지만
별로 설명해 주는 것도 없이 그냥 인물들의 움직임을 따라가야 하는 당나귀 발타자르(1966)나 무쉐뜨(1967)는
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볼 필요가 있는데 당나귀 발타자르는 보면서 점점 가슴이 아파져서 사는 게 이런 건가 싶었고
무쉐뜨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모든 것을 말해 주는 듯 참 인상적이고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불로뉴 숲의 여인들(1945)은 흥미진진한 로맨스 영화였고 시골 사제의 일기(1951)은 분위기는 멋졌는데 졸면서 봐서... ^^
제가 좋아하는 감독이라 다른 듀게분들도 (안 보셨다면) 한 번쯤 보셨으면 해서 적어봤습니다.
갑자기 오늘은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1972)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