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생충에서 관객 모두를 긴장하게 만든 장면이 있죠. 이선균(박사장)네가 캠핑을 떠난날 밤 송강호가 가족들을 데리고 이선균의 저택에서 술판을 벌이는 장면이요. 영화의 특성상 분명 이선균이 다시 들이닥칠 거고 송강호네 가족들이 현장을 들켜버리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 때문에 모두가 쫄리면서 그 장면을 봤어요.


 한데 생각해보면 기생충은 스파이 영화나 공포 영화에 비해, 비밀이 들키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의 페널티가 별로 안 커요. 설령 이선균에게 현장을 들킨다고 해도 이선균이 걔네들을 해치거나 두들겨패지도 않을 거 아니예요? 한데 관객들은 그 장면을...마치 들키면 바로 목숨이 날아갈 상황인 스파이영화나 공포 영화급의 긴장감을 지니고 봤단 말이죠.


 왜냐면 거짓말이란 것, 거짓말이 들킨다는 것은 견딜 수 없이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겠죠.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나 신경에 의하면 그렇거든요. 거짓말이 들킨다는 것...그동안 해온 거짓말을 들키는 그 순간, 그동안 거짓말을 해올 때마다 본인이 지었던 모든 표정과 미소가 리와인드되는 거니까요. 지금까지 거짓말을 했던 그 모든 순간이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해서 견딜 수 없는 일인거예요. 



 2.최근에 게시판의 유저가 쓴 글 중에서 정치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더라는 경험담이 있죠. 하지만 정치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는 괴물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예요.


 일반적인 모임을 생각해 보세요. 아무런 발화나 행동 없이, 자신의 존재감만으로 한번에 20명에게서 호감을 획득하는 건 어려워요. 그러려면 정말 외모가 뛰어나거나 정말 커리어가 좋은 사람이어야 하죠. 커리어가 그냥 좀 좋은 커리어가 아니라, 권위가 되어줄 정도로요.


 돈이 많아도 그렇지 않냐고요? 그런데 돈이 많은 걸로 호감을 끌려면 사람들 눈앞에서 직접 뿌려주는(셰어하는) 퍼포먼스가 있어야만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니까요. 액션 없이 존재감만으로 한번에 호감을 쓸어담으려면 압도적인 외모나 압도적인 완장이 필요해요.


 하지만 이 점을 생각해 봐야 해요. 압도적인 외모나 압도적인 완장을 지닌 사람들은 무작위로 아무나 만나지 않거든요. 그들에겐 자신의 바운더리가 있고 자신의 바운더리 내에서 사교활동을 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바운더리 밖의 사람들에겐 잘 눈에 띄지 않아요.



 3.그렇기 때문에 고만고만한 모임에서 한번에 호감을 얻는 사람은 기가 세거나 말을 많이 하거나 묻지도 않는 걸 스스로 주워섬기는 인물들이예요. 그리고 경험상, 그렇게 나서서 발화를 하는 경우는...유감스럽지만 거짓말이 섞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먼저 나서서 나대는 사람은 호감을 얻거나 의심을 얻거나 둘중 하나예요. 문제는, 그가 이미 15명에게서 호감을 얻었다면? 거짓말쟁이를 의심하는 5명은 거짓말을 하는 그자만을 상대하는 게 아니예요. 


 왜냐면 거짓말쟁이를 의심하려고 나서면, 거짓말쟁이가 이미 자신의 편으로 포섭한 15명도 상대해야 하거든요. 거짓말쟁이만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요. 왜냐면 거짓말쟁이에게 호감을 느껴버린 15명은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쟁이인 게 사실이면 본인이 바보가 되는 거니까요. 열심히 거짓말쟁이를 옹호하게 되죠.



 4.휴.



 5.이런 일반인들이 모이는 모임에서도 이런데 정치인은 차원이 다른거예요. 모임은 하다못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기라도 하죠. 정치인은 다양한 층위의 다양한 사람들의 호감을 동시에 쓸어담아야만 하는 사람이예요. 동시에 수만 수십만명의 사람의 호감을 쓸어담아야 하는데 문제는 그 수십만명의 호감을 두고 경쟁하는 경쟁자도 만만하지 않단 말이죠. 


 그야 본인이 압도적인 스펙과 도덕성을 갖췄다면 모르겠지만 정치판 같은 곳에서 그정도의 군계일학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예요. 자신의 스펙과 도덕성만으로 승부를 볼 수 없으니 이런저런 말빚을 져야만 하죠. 왜냐면 수십만명의 호감을 쓸어담아야만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으니까요. 정치인이 괴물이 되어버리는 건 필연적인 일이예요. 


 일반적인 사람들...기생충의 그 장면을 보며 긴장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이 들켰을 때의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뭔지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괴물들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죠. 


  

 6.위에 썼듯이 그래요. 거짓말쟁이를 의심하려고 나서는 순간, 거짓말쟁이에게 포섭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단 말이예요. 거짓말쟁이 본인보다도 더 열심히 거짓말쟁이를 변호하는 사람들을 말이죠.


 물론 그런 사람들을 모두 거짓말쟁이에게 속았다거나 포섭당했다고 말하는 건 온당하지 않겠죠. 그런 사람들은 더 나쁜 거짓말쟁이를 막으려고 덜 나쁜 거짓말쟁이의 편을 드는 중일 수도 있으니까요. 본인의 기준에서요.



 7.휴우...추석이네요. 사실 추석에는 관심 없어요. 어차피 늘 추석이니까요. 사실 거짓말쟁이에도 관심 없고요. 어차피 나는 거짓말쟁이도 아니고 거짓말쟁이를 편드는 사람도 아니고 거짓말쟁이를 문제삼는 사람도 아니니까요. 슬프게도 나는 외톨이거든요. 사람들의 이해의 원 안에 들어갈 일이 없죠.


 사는 것도 지겹지만 어쨌든 살 거니까 열심히 살아야죠. 어렸을 때는 추석이 정말 신났어요. 감옥 같은 인생에서 찔끔찔끔 주어지는 일요일 하루의 출옥이 아닌, 한번에 대량으로 감옥에서 해방되는 시간이 주어지는 거였으니까요. 그게 너무 기뻤어요.


 하지만 어른이 되니 한가지는 알게 됐죠. 어차피 인생 자체가 감옥이라는 걸요. 내가 연휴 때마다 투덜거리는 거지만, 연휴는 정말 쓸모가 없어요. 왜냐면 열심히 일해서 이 감옥을 좀더 괜찮은 감옥으로 바꾸어 놓는 게 인생의 보람이잖아요? 연휴에는 일도 도박도 할 수가 없어서 짜증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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