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갑자기 깨어집니다. 깨어짐의 절묘한 비밀은 그 돌연함에 있죠. 
당연했던 일상이 깨어질 때마다, 삶은 크고 작게 변화하면서 거듭 새로워지는 것이고요. (으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개인의 일상이 깨질 때,
동네의 아기들은 땅을 이기고 일어나 걷기 시작하며,
구름은 다시 한번 무연히 형태를 바꾸고,
어리석었던 친구는 기차 창 저편에서 순한 얼굴로 웃고,
자기모멸에 휩싸였던 시인은 그럼에도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법이라는 생각을 해본 몇달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노트북 자판을 두들겨 봐요. 
석달 전 작지 않은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졸음운전하던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신호대기 중이던 제 차를 들이받아서 오른쪽 팔이 부러지고 갈비뼈 네 곳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만약 제가 주행 중이었으면 사망각이었을 사고였다고... - -)

병원에서 일주일, 부모님 집에서 석달 간 몸을 추스리는 동안 제가 눈을 감을 때마다, 눈을 감고 느낌으로만 세상과 부딪힐 때마다,
내가 그동안 누려왔던 일상이 깨지면서  '눈뜸'의 계기가 찾아온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다'는 건 대체 어떤 일이며 언제 가능한 것일까요?
 
어린시절, 집 근처 익숙한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맸던 적이 있습니다. 
기억의 왜곡인지 모르겠는데, 그 비바람 치는 어둠 속에서 실은 제 마음 속 길의 영상이 가장 환했다는 강렬한 느낌이 남아 있어요.
길을 잃는다는 건 마음 속에 보이지 않던 길 하나 새겨져 빛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달까요.
 
세상의 모든 삶이 고유하게 빛나고 있지만, 또한 모든 삶이 하찮아 보이는 그런 시간의 마음.
그 마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이롭게 '밖'의 경계선에 가닿고 있는 중입니다. 일상의,  의미의, 이유의, 언어의 밖에요.
'밖'에 닿는 순간의 충만에, 세상 모든 곳에서는 일제히 항아리들이 깨어지는 법이라죠.  언제나 그러하다지요.
살아낸 시간을 반추하며 그간의 자신을 용서하고 어둠 속에서 빛으로 이행하는 순간을 기록해봐요.

-  태초에 신이 세상을 지을 때 항아리를 깨었으니, 
   신이 쏟아붓는 충만함을 항아리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일로 빛이 쏟아져내려 세상은 암흑 속에 머물지 않게 되었다.
   우리 영혼의 항아리가 깨어짐도 이와 같으리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3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9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85
126050 오펜하이머를 보다가 catgotmy 2024.04.24 123
126049 프레임드 #774 [4] Lunagazer 2024.04.23 76
126048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5] 조성용 2024.04.23 419
126047 잡담) 특별한 날이었는데 어느 사이 흐릿해져 버린 날 김전일 2024.04.23 163
126046 구로사와 기요시 신작 클라우드, 김태용 원더랜드 예고편 [2] 상수 2024.04.23 292
126045 혜리 kFC 광고 catgotmy 2024.04.23 240
126044 부끄러운 이야기 [2] DAIN 2024.04.23 381
126043 [티빙바낭] 뻔한데 의외로 알차고 괜찮습니다. '신체모음.zip' 잡담 [2] 로이배티 2024.04.23 302
126042 원래 안 보려다가 급속도로.. 라인하르트012 2024.04.22 237
126041 프레임드 #773 [4] Lunagazer 2024.04.22 65
126040 민희진 대표님... 왜그랬어요 ㅠㅠ [8] Sonny 2024.04.22 1308
126039 미니언즈 (2015) catgotmy 2024.04.22 88
126038 칸타타 콘트라베이스 스위트 아몬드, 라떼 catgotmy 2024.04.22 89
126037 최근 읽는 책들의 흐름. [8] 잔인한오후 2024.04.22 384
126036 듀게 오픈채팅방 멤버 모집 물휴지 2024.04.22 40
126035 눈물의 여왕 13화?를 보고(스포) [2] 상수 2024.04.21 330
126034 [왓차바낭] 선후배 망작 호러 두 편, '찍히면 죽는다', '페어게임' 잡담입니다 [10] 로이배티 2024.04.21 259
126033 프레임드 #772 [4] Lunagazer 2024.04.21 43
126032 LG 우승 잔치는 이제 끝났다… 3년 뒤가 걱정이다, 구단도 냉정하게 보고 간다 [5] daviddain 2024.04.21 206
126031 [넷플릭스] ‘베이비 레인디어’ 굉장하네요 [10] Gervais 2024.04.21 100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