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그렇듯 구체적인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올레티비의 영화 관련 컨텐츠는... 글쎄요 요즘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유플러스에서 이걸로 갈아타던 시점을 기준으로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많이 허접합니다. 유플러스가 특별히 훌륭하단 느낌은 못 받았는데 갈아타고 나니 그리워지더라구요. =ㅅ=

 그리고 '프라임 무비팩'이라는 정액제 서비스를 얹어 주는 영화 관련 요금제 - 제가 쓰고 있는 - 역시 많이 허접합니다. 매달 수십편의 영화를 무료로 제공해주지만 그 중 대부분이 미국 사람들도 존재 자체를 모를 법한 괴상한 Z급 영화들 아니면 흥행 비평 양면에서 쪽박을 찬 최신 한국 영화들 몇 편. 보통 한 달 업데이트분들 중에 정말로 돈 더 낸 값 한다고 할만한 영화는 몇 편 없어요. 제가 이 요금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제가 핸드폰도 인터넷도 KT를 쓰기 때문에 결합으로 할인을 받았을 때 추가금이 몇 천원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로 걍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를 한 달에 두 세 편이라도 추가금 없이 볼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쌤쌤 정도는 된다고 정신 승리(?)를 할 수 있죠.


 그런데 또 매달 '이번엔 걍 요금제 내려쓸까?'라고 고민할 때마다 괜찮은 영화가 한 두 편씩은 이 몹시도 프라임한 무비팩에 등장해서 절 난감하게 하는데 이번 달의 경우엔 그게 바로 이 영화였습니다.



- 포스터의 홍보 문구를 보면 '판의 미로'와 비교를 하는데, 뭐 비슷한 구석이 많긴 하지만 전 차라리 스필버그가 80년대에 많이 감독, 제작하며 만들어낸 어린이 모험물들이 생각났습니다. 평범, 찌질하던 어린이 패거리가 어쩌다가 현실에선 절대 맞상대 할 수 없는 사악한 놈들과 맞닥뜨리며 여행 겸 모험을 하는 이야기인데, 단지 이야기의 배경이 멕시코의 마약 전쟁이고 애들이 상대해야할 악당들이 마약 카르텔 & 부패 정치가라는 거. 그리고 소재가 이렇게 궁서체로 심각한 소재이다 보니 스필버그 영화와는 톤이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는 거죠. 괴상 허접한 설명이지만 '시카리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어린이 모험물이랄까요(...)


 여기에서 '어린이 모험물'과 '멕시코 마약 전쟁'이라는 이질감 쩌는 소재들을 접합시키기 위해 등장하는 게 한 때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명명되어 유행했던 초현실과 현실이 마구 뒤섞이는 스타일이고. 그래서 '판의 미로' 생각도 나게 되고 뭐 그렇습니다.



- 일단 영화 속 초현실과 현실의 조화는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이게 좀 아이러니인 게, 이 영화에서 다루는 멕시코의 마약 전쟁이란 게 너무나도 초현실적인 현실이라서 주인공이 겪는 초현실적 일들과 전혀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린다는 겁니다.

 무슨 내전도 아니고 범죄 조직이 지네들끼리, 그리고 군&경찰과 맞싸우는 일인데. 그걸로 국민 수십만명이 죽거나 행방불명되고. 도시의 초등학교로 총탄이 날아들어서 휴교가 되고 갑자기 부모가 사라져서 죽어 버리고. 그러다가 동네 하나가 통째로 유령 마을이 되고. 그 와중에 고아가 된 아이들이 정부의 보호도 받지 못 하고 자기들끼리 빈 집을 약탈해 가면서 거리에서 먹고 자고... 이런 게 21세기 어느 나라의 일상. 그것도 나름 '멕시코'쯤 되는 네임밸류의 나라의 일상이었다는 게 그렇게 현실적으로 와닿지가 않잖아요. 그러니 뭐 그 와중에 주인공들이 세 가지 소원을 빈다든가, 자꾸 환상을 본다든가 하는 일쯤은 그냥 위화감 제로인 거죠.



- 그리고 이런 초현실적 현상들을 영화가 다루는 방식도 꽤 괜찮습니다. 일단 시각적으로 아주 훌륭해요. 예쁘고 무섭고 섬찟하며 서글픕니다. 그리고 (좀 흔한 방식이지만) 그게 진짜로 일어난 일인지 주인공이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인지 애매하게 처리하는 방식도 이야기 속에 부드럽게 잘 스며들구요.



- 하지만 뭣보다도 훌륭한 건 주인공 어린이들입니다. 특히 남녀 주인공 둘은 연기도 정말 좋고 캐릭터 자체도 훌륭해서 보는 내내 이 어둡게 환상적인 이야기에 몰입하게 해줬습니다. 음... 그러니까 이 어린이들은 분명 무력하고, 또 나이에 맞게 어리숙하고 모자랍니다만.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을 둘러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맞서요. 그 맞서는 방식이나 모습은 역시 나이 답게 어리숙하고 모자라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더 갸륵하고 장하고 안타깝고 막 그렇습니다. 글을 적는 지금 생각해보면 이 영화를 이렇게 좋게 본 것의 80%는 아이들 연기 & 캐릭터 빨인 듯도.



- 아쉬운 점이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사실 막판의 전개는 개연성 면에서 많이 허술하고 너무 쉽게 풀립니다. 특히 악당들이 벌이는 짓들이 그렇죠. 미칠 듯한 분위기와 주인공들에 대한 몰입 때문에 대충 덮어주고 넘어가게 되긴 하지만 그런 허술함 때문에 결말의 감흥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해서 그런 단점을 충분히 덮어줄 수 있을만큼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이야기의 비극은 강렬하고 캐릭터들은 매력적이에요. 90분도 안 되는 분량의 이야기이니 부담 없이 한 번 보실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사족으로. 관람 등급은 15세인데 보다보면 계속 19금 영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어도 거의 없고 야한 건 전혀 안 나오지만 그냥 이야기 자체가 너무 살벌하고 꿈도 희망도 없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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