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와 우자

2019.05.15 05:46

어디로갈까 조회 수:1026

1. 현자賢者와 우자愚者가 있습니다. (라고 구분해봅니다.) 
예를 들자면, 현자는 치아가 몸에서 썩기 쉬운 부분인 것을 알고 미리 치과에 다니며 검진을 받는 사람이고, 우자는 치아가 상하고 난 후 통증에 몰려서야 마지못해 치과에 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건 치과의사의 입장에서는 큰 차이로 비치지 않는 문제겠죠.
원 모양의 색상표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알 수 있어요. 검은색과 흰색은 그 자체만을 놓고 보면 '다름'이고 '단절'이지만, 두 색상 사이의 그 미세한 변화의 색감들을 경유하면 결연한 단절도 아니고 극단적 다름도 아닙니다.

어제 오후, 미팅을 마치고 낙담한 채 몇 정거장을 걸어오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현자에 비해 우자는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고통과  싸우는 사람이므로, 오히려 우자가 현자보다 현자다운 게 아닐까 하고.
사실 이는 보편적인 현상인 것입니다. 언제나 우자가 더욱 고통을 당하죠. 그러므로 최상의 상찬은 우자에게 바쳐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누추하고 비루한 우자들에게. 요즘처럼 햇빛이 찬란하게 눈부신 날,  입 안에서 이가 썩고 있거나 말거나  아이스크림을 물고 걸어다니며  볕의 밝음에 미소짓는 우자들에게.

우자는 선 자와 누운 자로 나눌 수 있고, 여기에 서서히 쓰러지는 자와 뒷짐 진 자를 덧붙일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분류는 완성됩...... 아니, 한 부류만 더 말해볼까요. 바라보는 자와 외면하는 자가 있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자와 피킷을 든 자가 있으며...있으며...있으며...
(그러고도 거리엔 무수한 다른 부류의 우자들이 존재합니다. - -)
 
2. 약한 환상은 개인적 특성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강력한 환상은 치유불능의 병으로 격리됩니다. 약한 환상을 지닌 이의 언행에 세상은 재미있는 생각/태도라며 미소로 반응해요. 하지만 강한 환상을 지닌 이에겐 침묵하거나 굳은 얼굴로 외면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수의 현실에 의탁하여 애매한 공통분모에서 살아가죠. 그러나 하이브리드의 현실로부터 고립순수의 자아를 지키려는 이들은 공통분모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문법을 거부하고, 선악의 판단을 넘어 현실과 결별하며 미래로 건너갑니다. 

3. 음...
이렇게 글을 맺기가 어정쩡해서 귀국하던 날 뱅기 안에서 끄적였던 낙서 하나를 복붙. -_-

난 아직 늙은이는 아니죠. 
이런저런 업무에 시달리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삶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궁금하지도 않아요.
이 대륙 저 대륙을 떠돌다가 문득 자신을 돌아볼 뿐이에요.

지구 어디에든 맘을 누일 곳은 항상 있는 법, 
낯선 세상에 날 드러내 보이지만 포장한다고 신기해하는 사람은 없답니다.
난 세상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
그게 가장 내 마음에 들어요.

쓰잘데기 없는 존재인 게 싫지 않아요, 그래도
좀 아쉽기는 하죠. 
세상에 어필하려고 때로 의식에 알록달록 전구들을 끼워 달죠.
그런다고 반짝이는 건 아니지만
곱거나 너른 이들은 날 바라보며 안다는 미소를 지어주죠.
그들이 하는 생각을 난 알아요. 
엄마 자궁에서부터 알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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