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2021.03.13 13:12

Sonny 조회 수: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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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키토 무이치로의 주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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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현 1의 혈귀 코쿠시보우의 주마등



귀멸의 칼날을 읽다보면 하나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주 위급한 전투 도중에 자신이 죽을 위기에 몰리면 인물들은 갑자기 지난 날을 돌이켜보며 자신의 내면으로 빠져듭니다. 주마등을 보는 묘사가 그렇게 특이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귀멸의 칼날이 이 패턴을 쓰는 방식은 조금 독특합니다. 대개 한 인물이 죽기 직전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묘사는 작중 비중이 크거나 선한 쪽에 있는 인물에게만 부여되는 묘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귀멸의 칼날은 이같은 묘사를 엑스트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캐릭터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아주 악독하고 비겁한 귀신들에게서도 이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주마등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아니라 캐릭터 본인의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독백하는 형식으로 나타납니다. 그 결과 독자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죽음 직전의 절절한 호소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이 연출이 자아내는 감흥은 뚜렷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완성된 이야기로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싸움 - 주마등 - 죽을 경우 참회와 반성 / 죽지 않을 경우 깨달음 의 구조가 반복됩니다. 1:1의 대화 혹은 독심술을 통해서 독자는 저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속속들이 정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귀멸의 칼날을 보다보면 중후반부부터는 지루해집니다. 누구와 싸우고 누가 위기에 몰리든 주마등으로 모든 감상을 다 끌어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독하게 말하면 귀멸의 칼날이란 만화는 '주마등 유랑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능력자 액션물이 전체적으로 감상적인 톤을 지닌다는 것은 개성일지 모르나 그 개성을 연출하는 방식은 단 하나의 패턴 뿐입니다. 그래서 잔인한 액션과 아련한 자기연민의 감성이 따로 놉니다. 치열한 전투 도중에 인물들은 감상에 빠져드니까요. 


이 주마등식 연출을 인물의 입체적 묘사라고 할 수 있을지도 회의적입니다. 어떤 인물이 입체적이라는 것은 기능적인 악역이나 딱 하나의 목적의식만 가지고 있는 것에서 탈피해, 어떤 면에서는 보편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독특한 사람이라는 것을 묘사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 결과 독자는 어떤 인물을 자신과 닯았다고 느끼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거리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귀멸의 칼날은 가장 절박한 순간 인물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으로 시점 이동을 시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지 그의 불행과 비참함을 강조합니다. 알고보니 이 놈도 불쌍한 놈이었다는 결론이 모든 인물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됩니다. 최고악역인 무잔을 포함해 단 한명도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어쩌다보니 내가 죽게 되었구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를 돌이켜보며 한 인물의 일생을 그대로 전시합니다. 그 결과 독자는 거의 모든 인물을 강제에 가깝게 이해하게 되고 연민에 젖게 됩니다. 


저는 이런 묘사가 입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토리를 끌어갈 방법이 없으니 모든 인물의 불행한 과거를 인질삼아 벌리는 동정에의 호소에 훨씬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떤 사람이 옳다 혹은 그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귀멸의 칼날은 연민을 자극해서 이것이 이해인양 다 섞어놓습니다. 그 결과 전투가 끝나면 인물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불가능해집니다. 아주 비열하고 치사한 인물들도 무조건 불쌍한 사람이 되버리니까요. 이 주마등의 반복은 역으로 작가가 다른 식의 연출은 하지 못한다는 역량부족을 반증합니다. 죽기 직전에는 그 누구나 불쌍합니다. 가장 연약한 순간이고 삶이 끝나는 순간이니까요. 이 연출이 인간의 보편적인 약점을 통한 이해로 이어질까요. 모든 인물의 마지막에 불우했던 과거를 끼워넣고, 그 인물의 후회와 무능을 이야기하며, 그런 그를 동정하자는 이야기들이 반복될 때 이것은 선동에 조금 더 가까운 방식입니다. 그래서 독자는 귀신을 향한 양가적인 감정이 아니라 동정으로 끝맺는 결론에 이 전의 미움과 의협심을 까먹게 됩니다. 화냈다가, 울어주다가. 저주와 추모를 오가는 이 극단적인 감정변화는 입체적인 묘사가 아니라 흐름이 없어서 파편화된 에피소드들에 끼워맞춰지는 감상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이렇게 주마등을 반복하면서 얻는 결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죽음을 아름답게 그리며 죽음의 고통을 지운다는 것입니다. 일단 주마등은 죽음 자체에 대한 미화입니다. 죽음이란 것이 얼마나 평온하고 애상이 서려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죽음을 낭만화하게 됩니다. 죽음을 낭만화하면서 얻게 되는 것이 또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죽는 순간의 고통입니다. 사람이 통증을 느끼고 후회와 무력감에 진절머리 치는 것이 누가 죽을 때 신체를 비롯한 외부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귀멸의 칼날은 그 순간 주마등에 몰입하며 이런 실재적인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마취시켜버립니다. 이것은 작품 바깥에서 보면 사실 굉장히 조악한 연출입니다. 삼류 픽션에서 누가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았을 때,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유언을 오분 십분씩 하는 장면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귀멸의 칼날도 다를 게 없습니다. 단지 그 유언을 작품 속 다른 인물에게 하는 게 아니라 독백으로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할 뿐입니다. 귀멸의 칼날은 죽음을 피안의 세계로 그립니다. 과거를 정리하고 내세의 평화를 다짐하는 순간이죠. 독자는 귀멸의 칼날을 보면서 죽음을 아릅답게 보게 됩니다. 


귀멸의 칼날은 귀멸을 그리지 않습니다. 귀멸의 과정에 발생하는 죽음들을 그리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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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살대의 수장 우부야시키가 가족들과 동반 폭탄 자살을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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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보스 무잔과 싸울 때 힘없는 귀살대 사병들이 자살에 가까운 돌진을 하는 장면


죽음이 낭만화되었을 때 이는 대의를 위한 수단으로 아주 쉽게 변질됩니다. (저 고기방패란 단어는 의역이 아니라 직역입니다) 비질런티 집단의 지도자가 악의 보스를 처단하기 위해 자기 아내와 어린 딸들을 폭발에 휘말리게 하는 장면은 과연 윤리적이라 할 수 있을까요. 힘없는 사병들이 최전선의 전투원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고기방패가 되어라"라면서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과연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귀멸의 칼날에는 보통 소년만화에는 나오기 힘든, 그리고 악인을 악인이라 규정짓는 결정적 패착들이 주인공 측에 의해 실행됩니다. 대의를 위해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그 희생이 비장하게 그려지는 이런 연출은 자연스럽게 그려져야 할까요. 독자는 고민을 할 틈이 없습니다. 처절하고 비장한 미의식이, 윤리적 논의를 사전에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아름다운 안식이다.' 귀멸의 칼날이 주마등으로 되새기는 이 미학은 자기자신의 죽음과 삶에만 국한되지 않고 타인의 삶과 죽음에도 절대적인 전제로 작동합니다. 수많은 인물들이 "나"로 겪는 죽음을 주마등으로 그릴 때, 주마등을 겪지 않거나 주마등을 겪으면서도 죽음에 저항하는 인물들은 지워냅니다. 그리고 결국 죽음이라는 아름다움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개개인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다르겠지만 귀멸의 칼날에서는 하나로 통일됩니다. 내가 무언가를 위해 죽는 것은 아름답다, 남이 무언가를 위해 죽는 것은 아름답다,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 죽는 것은 아름답다... 귀멸의 칼날이 어느나라 작가에 의해 그려졌는지를 상기한다면 이같은 묘사는 불온하게 느껴지죠. 그것은 꼭 역사적 맥락이 아니라 인본주의를 기본으로 한 거부감이 듭니다.


결사의 각오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나의 삶'을 포기할지라도, 나의 삶만큼이나 중요한 타인의 삶을 지켜내기 위함입니다. 곧 결사의 각오는 삶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귀멸의 칼날은 삶과 무관한 추상적 대의(귀신박멸)로 종종 빠집니다. 삶 대신 계속해서 죽음을 그리고 죽음이 서려있던 과거를 그리면서 죽음이 주박처럼 인물들을 얽어매있는 묘사가 반복됩니다. 결사의 각오가 아닌 필사의 각오로 변하면서 귀멸의 칼날은 삶을 그리지 않습니다. 왜 주마등이어냐 하는가. 귀멸의 칼날이 무의식적으로 계속 죽음에 사로잡혀서 미래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과거로의 끝없는 회귀는 이미 인물들의 정신이 죽었음과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주마등은 삶과의 대화가 아니라 죽음과의 대화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 순간을 담담히 인정하기 위해 과거를 다 정리하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거죠.


이와 같은 이유로 귀멸의 칼날을 보면서 저는 위화감을 느낀 적이 많습니다. 소년만화에 아주 엄밀한 윤리를 요구할 수는 없겠으나, 귀멸의 칼날만이 가지고 있는 과잉과 결핍은 이 만화 자체를 포함해 지금의 시대정신을 가리키는 지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정의와 사회적 책임감에 무관심하고 나태할 수 있는 원펀맨의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지나 이제 모두가 함께 죽는 것이 지독히도 아름답다고 말하는 귀멸의 칼날의 전체주의로 이어지고 있다고요. 생존이 더 힘들어진 이 시기에 귀멸의 칼날이 흥행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바장하게 죽어버리자는 마음은 모두가 한번씩 품어보는 위험한 호기심이니까요.


@ 귀멸의 칼날에서 "추하게" 그려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혈귀들이 목이 잘려도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진화하는 모습들입니다. 무잔은 갓난아기가 되어서까지 햇볕에서 피하려 하고 이 장면은 독자에게 끔찍하단 감흥을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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