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쯤 전에도 비슷한 글을 올렸는데, 작년말 부터 올해 동안 읽은 책들 돌아 보고 다시 올려 봅니다.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는 "어떻게 되는 거야?" "그래서 끝에가서 어떻게 되는데?" 라면서 빠르게
단숨에 읽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꺼운 책이라도 잠깐 사이에 다 읽어 버리게 되는 겁니다.

올해 제가 읽은 책 중에는 경찰 소설 시리즈의 대표작 87분서 시리즈 "살의의 쐐기"나
유행따르는 연애 소설의 날렵한 모습을 보여줬던 소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같은 책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서,
훨썬 더  재미난 책을 읽다보면,
너무너무 재미나서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읽게 되고
완전히 몰입해서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진짜처럼 안타까워하고,
책 속의 세상이 영영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할만큼 책 내용에 푹 빠져서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책을 읽으면서 남은 책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쉽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자꾸 남은 분량을 의식하게 됩니다. 벌써 끝나면 안돼... 하면서 말입니다.

중독성있는 TV프로그램 볼 때에도 TV프로그램 끝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아쉽게 느껴져서
자꾸 시각을 확인하던 경험도 있는데(다른 분들도 있으신지요?), 이것도 비슷한 느낌이지 싶습니다.

작년 말에서 올해 사이에 읽은 책 중에는 이런 것들을 꼽아보자면,



1.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이미 2000년대에 유행했던 책인데, 저는 빌 브라이슨 책 중에서는 비교적 뒤늦게 보게 되었습니다.
빌 브라이슨의 특징인 과장과 농담으로 엮은 수필들은 "발칙한 미국학",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를 재밌게 봤고,
반대로 유명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재미없게 봤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웃긴 글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래도 빌 브라이슨이 웃기게 쓰려고 하는 건 술술 잘 읽히기는 하니까."

하면서 잡았던 것이, 가장 잘 팔린다는 "나를 부르는 숲"이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많이 걸어다니는 여행, 정처 없고 일정 없는 떠돌이 여행이라는 것을
어릴적 부터 워낙 동경하던 터라, 그렇게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읽다보면, 이 책이 처음 나왔던 90년대 후반에는 날카로웠던 풍자, 놀리기였던 것이
이제는 너무 널리 퍼져 유행이 한번 돌아서 좀 피상적이고 맥빠지기만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래도 전반부 같은 경우에는
웃긴 경험, 과장하는 농담 말투, 풍자, 아름다운 풍경 묘사가 잘 어울려서 무척 재미났습니다.

취미로 등산하는 재미를 좋아하는 느낌에 보기에는 정말 즐거운 책이었고,
또 작년부터 몰아 닥친 주위의 캠핑 열풍과 묘하게 어울려서 더 재밌고 즐겁게 읽어서,
계속해서 비슷한 여행, 끝없는 여정이 계속 되기를 바라게 되어 책이 끝나는 것이 참 아까웠습니다.


2.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은 소설 보다는 수필 쓰는 작가 아닌가... 싶어서 유명한 책인데도 안보고 있다가
올해에야 보기 시작한 소설책이었습니다.

책 내용은 평범한 이야기인데 화려한 수사법과 안어울릴법한 온갖 과한 학술용어들을
막 퍼부어서 오히려 재미를 자아 내는 수법이 엮여 있는 것인데...
말하자면 옛날 딴지일보 같은 곳에서 사소한 소재나 별볼일 없는 영화에 대해서
별별 분석 및 잡담들을 길게 서서 재미나게 써 올릴 때 쓰던 수법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요즘 읽으면 이런 식으로 말 늘어 놓는 것이
약간은 철지난 유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게 참 잘되어 있어서, 예리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기까지 이야기의 면면을 늘어 놓는 것의
재미난 부분들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특히나, 평범한 사랑 이야기 - 그렇지만 그만큼 누구에게나 와닿고 애절한 이야기를 가지고
이리저리 주절주절 말 많이 늘어 놓으면서 웃긴 소리 많이하는 것이
워낙에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 거리라서, 더욱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중간에 "삐짐"에 대해서 고찰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고
결말 부분의 "500일의 써머" 같은 영화 끝날 때 분위기 비슷한 감상도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3. 아직은 신이 아니야 (듀나)
듀나님의 최신작으로, 이곳저곳에 저도 이미 따로 감상글을 올린 적 있는 책입니다.

짧게 다시 돌아 보자면,
"면세구역", "태평양 횡단 특급"과 함께
지금까지의 듀나 3대 걸작집으로 누구나 꼽을만한 책입니다.
흡인력으로 따지면 이야기가 연작소설이라서 이어지는데가 있어서
"면세구역"이나 "태평양 횡단 특급"보다도 앞서는 면이 있으니,
조금 낯간지럽지만,
한국 SF 소설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꼽아도 될만한 소설이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중반부 소설들의 몇몇 화통하고 후련한 전개나,
한국적, 내지는 아시아 공업 국가의 신도시적인 지역색이 사는 부분을 감안하면,
세계 SF 소설계에서도 뚜렷한 위치를 새길 수 있는 멋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단편들이 담겨 있는 책이지만, 꾸준하게 같은 세계를 배경으로 이어져 가는 내용이고
등장인물들 중에는 다른 이야기에 반복해서 나오고 있는 경우도 있어서,
한 편, 한 편 이야기 읽어 갈 수록
어느 책 보다도 "끝나 가는 것이 아까운 느낌"이 큰 책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책 읽다가 재미있어서 남은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웠던 경험 있으십니까?
있으시면 무슨 책을 읽을 때였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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