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17 12:45
어릴 때부터 생선가게 아들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생선을 먹어오며 딴 건 몰라도 생선뼈 바르는 데에는 도통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오늘도 갈치의 뼈를 바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자식, 좀 음험한 성격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야 이토록 성가실 리 없어.
뭐 생선뼈란 게 대체적으로 꼼꼼히 바르기 귀찮긴 하지만 그 중에서 갈치는 독보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 이 녀석은, 자기도 시체를 주식으로 삼으면서 지 시체를 먹는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걸까요.
평소 시체 뜯기가 힘들었나. 그래서 성격이 비뚤어져 사리 대신 잔뼈를 생성한 걸까.
하지만 보통 자연계에서는, 먹이를 먹는 방법보다는 먹이를 얻는 방법이 더 고단하기 마련 아닙니까.
그렇다면 죽어 반항도 않고 썩어 남들이 거들떠도 안보는 시체를 먹고 사는 일생이라면 사자나 기타 다른 맹수에 비하면 그 얼마나 편한 삶일까요.
아니면 이것도 동족들이 많아서 레드오션인 걸까요. 평소 '시체나 먹는 인생 편하게 사는 놈'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생각을 고쳐야 할 지도 모르겠군요.
올만에 어머니께서 구워주신 갈치를 바르며 뻘생각을 해봅니다.
참, 같은 잔뼈계의 일인자인 꽁치는 매우 사랑합니다.
바를 필요 없이 뼈째 씹어먹을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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