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1 10:08
플레이스테이션4와 4 프로에서만 플레이 가능하다고 케이스에 자랑스럽게 적혀 있는 이 '블러드본'이라는 게임은 '다크 소울' 시리즈로 유명한 프롬 소프트에서 개발한 작품으로서...
와 같은 설명은 아무래도 필요가 없겠죠. 어차피 듀게에서 제 글의 '게임바낭' 말머리를 보고서도 굳이 클릭하실 분들이라면 이미 다들 잘 알고 계실 테니. ㅋㅋ
혹시라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히만 말씀드리자면 플레이스테이션4 독점 액션 게임이며 더럽게 어려워서 '엔딩 보려면 캐릭터가 아니라 게이머가 레벨업해야 함' 이라는 평가로 유명한 물건... 이라는 정도만 아시면 됩니다.
사실 전 게임을 많이 하는 것에 반해 잘 하지는 못 해서, 그리고 즐겁자고 하는 게임 때문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서 너무 어려운 게임들은 피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얼떨결에 스팀 세일에 낚였지 뭘 구입했던 다크소울 1편도 극초반에서 멈추고 포기해 버렸으며 그래서 후속편들은 아예 구입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새삼스레 이 게임을 구입했던 건 사람들의 입소문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비주얼 컨셉 때문이었습니다.
잭 더 리퍼가 고향에서 괴물들을 썰어 죽이는 듯한 컨셉이잖아요.
이 회사가 원래 그래픽을 잘 뽑고 최적화를 잘 하고 그런 회사는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미술' 측면에선 꽤 괜찮아서 보시다시피 분위기가 아주 그럴싸하게 잘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이보다 더 분위기 좋(?)아요. 몬스터들이 생김새도 생김새이지만 움직임이나 소리까지 아주 실감나게 음침하고 기분 나쁘거든요.
그리고 그 와중에 아주 가끔은 이렇게
역시 음침하지만 뭔가 분위기 좋게 예쁜 그림들이 튀어나오기도 하죠.
제 취향으로 볼거리 측면에선 '언차티드4' 보다도 훨씬 만족스러운 게임이었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제가 이런 쪽으로 로망 같은 게 있었나봐요. 영국풍이라든가(...)
근데...
본격적인 소감은 일단 까면서 시작하겠습니다. ㅋㅋㅋ
제목 그대로 며칠 전 엔딩을 보긴 했는데요.
그게 끝판 왕이고 깨면 엔딩이라는 걸 모르고 깼습니다(...)
게임에 그냥 스토리가 없어요.
스토리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냥 없.어.요. 존재하지 않습니다. 으허허.
떡밥은 엄청 많아요.
npc들이 쌩뚱맞게 던지는 대사 한 두 마디와 단어 한 두 개. 보스전에서 보스들이 영문을 알 수 없이 읊조리는 몇 마디. 그리고 아이템과 장비들에 붙어 있는 간단한 설명들. 게임 속에서 아무 설명 없이 보여지는 몇몇 연출들. 이런 것들을 죽어라고 조합해보면 뭔가 대충 스토리 비슷한 게 나오긴 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구요. 뭣보다도 그냥 게임 플레이에만 집중 하고 있으면 절대로 스토리라는 것을 구경도 해 볼 수가 없습니다. 오죽하면 마지막 보스가 마지막 보스인지도 몰랐겠어요(...)
그리고 난이도 조절이 개판입니다.
일단 거대하고 화려한 보스보다 길바닥 잡몹들이 더 무서운 건 게임 특성상 그러려니 하겠습니다만
(얘나)
(얘보다)
(얘들이 더 무섭습니다 ㅋㅋㅋ)
전체적으로 보스가 열 너댓 마리쯤 나오는데, 순서상 두 번째 만나는 보스 + 서너번째쯤 만나는 보스가 나머지 모든 보스들보다 어려워요.
개스코인 신부와 피에 굶주린 야수라는 놈들인데. 전자를 잡는데 한 3일 걸렸고 후자를 잡는데 또 한 3일 걸렸거든요.
근데 그 이후론 하루에 두 세시간 플레이하면서 매일 보스 두 놈씩 재도전 없이 잡아 죽이며 쭉 달려 엔딩을 봐 버렸을 정도이니 밸런스가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 알 수 있죠.
길거리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에요. 초반엔 정말 어렵고 한 놈 한 놈 다 무서웠는데 중반쯤 들어가니 다들 생긴 것만 무서운 호구들. 갑자기 다시 어려워진다... 싶더니 엔딩.
간단히 말해
처음엔 최최최최최최악의 난이도로 시작해서 조금 넘어가니 그냥 아주 어려움... 정도이다가 갑자기 쉬움쉬움쉬움쉬움위움쉬움... 어라, 어려움? 하고 끝. 이런 느낌이었네요.
그럴 거면 저렇게 어려운 보스들을 좀 뒤에 배치하든가... 심지어 최종 보스(숨은 최종 보스 말고 그냥 보스이긴 하지만)도 한 번에 잡았어요. 이건 뭐.
그리고 이 회사 게임들이 다 그렇듯이 기술적으로도 좀 문제가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보기 좋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퀄리티의 그래픽이 플프 프로 정도 기기에서 30프레임 아래에서만 돌아간다는 건 좀 그렇고.
또 가끔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거슬리기도 해요.
그리고...
그 외엔 뭐 다 좋습니다. ㅋ
콘솔 게임계의 분위기는 전통적인 일본 vs 서양의 구도에서 일본의 쇠락으로 인해 서양쪽으로 완전히 주도권이 넘어간지 오래인데요.
그 와중에도 확실하게 일본쪽의 우세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액션, 특히 검투 액션 게임입니다.
이 장르가 이제 예전과 달리 마이너 장르가 되어 버려서 그런지 서양 쪽에선 영 만들지도 않고 투자도 않고 그러더라구요.
반면에 일본쪽 회사들은 이미 수십년째 만들어 온 경력이 어디 가지 않아서, 이름 알만한 유명 회사들의 경우엔 대충 만들어 내놓았다고 욕 먹는 액션 게임들도 서양 것보단 낫습니다. ㅋㅋ
다양한 무기들, 그리고 무기 선택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게임 플레이, 각 무기들의 개성을 잘 살린 디자인과 타격음, 적들마다 몇 가지씩 존재하는 약점과 파해법, 같은 적을 다시 만나도 조금씩 다르게 상대하도록 유도하는 맵 디자인과 플레이어의 도전과 수련(...)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적당히 빡센 난이도 등등 칼질 액션 게임으로서 이 블러드본은 거의 경지에 달한 수준을 보여줍니다. 처음에 더럽게 어려워서 진입 장벽이 높긴 하지만 그마저도 극복하고 나면 뿌듯한 성취감이 되니까요.
글 시작 부분에서 난이도 조절의 실패를 이야기했는데,
그것도 사실 한 번 이 게임에 꽂히고 나면 큰 단점이 아닙니다.
왜냐면 무기 하나하나가 다 매력적이고 한 번에 모든 걸 겪어볼 수 없도록 맵과 이벤트들이 디자인 되어 있어서 어지간하면 한 번 엔딩 보고도 몇 번은 더 플레이하고 싶게 만들어져 있거든요. 그렇게 돌고 돌고 또 돈다고 생각하면 특정 구역의 난이도가 조금 높고 낮고 한 건 별 문제가 아니게 되죠.
그리고 은근히 자잘한 재미를 주는 숨은 이벤트들이 많습니다.
단 하나의 힌트도 없이 말 그대로 엄청나게 꼭꼭 숨어 있어서 공략 같은 걸 보지 않으면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게 되는 게 대부분이라는 문제가 있긴 한데(...) 그래도 나름 자잘하면서도 짭짤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어서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무기 수련만 하다가 지치고 질리지 않도록 해주는 효과는 충분하더군요.
그렇습니다.
네 뭐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남들에게 추천은 못 해주겠네요. ㅋㅋㅋㅋ
기본적으로 너무 어렵고 특히 시작 부분에서의 진입 장벽이 거의 변태적인 수준이라.
게다가 게임 진행도 외길 진행인 듯 하면서 그 외길이 종종 막혀 있고 어딘가로 갈 길을 찾아내고 뚫어내야 하는데 그게 어디있는지를 아무도 알려주지 않을 뿐더러 결정적으로... 애초에 내가 찾아가야할 '어디'가 어디이고 거길 '왜' 가야 하는지 등등이 전혀 주어지지 않습니다. 스토리가 없는 게임이니까요. ㅋㅋ 불친절도 이 정도면 거의 마스터 클래스라고 해야겠죠;
하지만 어쨌든
수백 수천번 죽어 나가고 간신히 모은 경험치 날려가며 개고생하다가 어찌저찌 이런 놈 하나 때려 잡는 데 성공했을 때의 기쁨과 보람은 비디오 게임 역사상 대략 순위권에 들고도 남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큰 단점 없이 전반적으로 모두 퀄리티가 높으면서 매끈매끈 윤기가 좔좔 흐르는 느낌의 '언차티드' 같은 게임도 있고.
이렇게 대부분이 단점(...)인 가운데 개성 강하고 무엇 하나만 미친 듯이 뛰어난 게임도 있고 그렇습니다만.
전 개인적으로 개성 강하고 뭐라도 하나 특별한 장기가 있는 게임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지금껏 해 본 플스 독점작들 중에선 이 게임을 최고로 꼽을 수밖에 없네요.
하지만 다크 소울 시리즈는 끝까지 접어 두는 걸로. ㅋㅋㅋㅋ 사서 개고생도 가끔 해야죠. 그걸 취미로 만들 생각은 없네요.
2017.07.11 11:46
2017.07.11 11:59
콘솔 현세대 게임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래픽입니다. ㅋㅋ
회사가 조금만 더 능력이 있어서 좀 더 깔끔하거나 프레임이 부드러웠더라면 더 좋았겠지만요.
2017.07.11 13:02
이젠 '전 게임을 많이 하는 것에 반해 잘 하지는 못 해서' 이런 표현 쓰시면 안되는 겁니다 ㅎ
2017.07.11 14:03
2017.07.11 13:12
2017.07.11 14:04
오리 앤 더 블라인드 포레스트 같은 게임은 게임 메뉴에서 그동안 몇 번 죽었는지 알려주는데, 블러드본 같은 게임에도 필요한 기능 같습니다. ㅋㅋㅋ 개스코인이랑 싸울 때 5분에 한 번씩 죽으면서 3일간 합해서 10시간 이상은 도전했으니 그게... 엄...;
2017.07.11 14:30
2017.07.11 15:07
저는 성직자 야수보다 그 앞에 있는 늑대 두 마리에서 하루를 잡아 먹고 야수는 생각보다 쉽게 잡아서 기고만장하다가 개스코인에서 게임 팔아 버릴 뻔 했죠. 정말로 하루만 더 못 잡으면 중고로 팔아 버릴 작정이었습니다. ㅋㅋㅋ
애초에 구입한 게 올드 헌터 에디션이었는데, 1회차 끝낼 때까지 dlc 구역 진입을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어젯밤에 처음 들어가 봤습니다. 제목 그대로 사냥꾼들이 무슨 잡몹마냥 우르르 몰려와서 압박이 좀 있더군요. 얼른 정리하고 2회차엔 진엔딩 한 번 보고 접으려구요.
2017.07.13 10:02
2017.07.11 14:45
몇 안되게 PS4 게임중 확장팩 까지 플래티넘 찍은 게임이에요.
컨셉 아트가 너무 마음에 드니 생전 사본적도 없는 피규어까지 땡기더라고요. ㅎㅎ
2017.07.11 15:09
전 트로피 생긴 이후로 거의 10년을 플스 굴리면서 지금까지 플래티넘 찍은 게임이 아예 없습니다. ㅋㅋㅋ
정말 이 게임은 컨셉 아트의 승리 같아요. 풍경과 크리쳐들이 너무 보기 좋아(?)서 반복 플레이를 해도 잘 안 질리네요. 허허.
2017.07.11 15:54
http://www.djuna.kr/xe/13246294
위 글 댓글에서 Mk-2님이 강력 추천하신 덕분에 [니어:오토마타] 다음 타이틀로 시작해서 한창 죽고 있습니다. 성직자 야수는 16번, 개스코인 신부는 9번만에 잡고 조금 더 가서 옥상에서 기관총을 갈기는 놈한테 죽는 데까지 진행했군요. 무진장 어렵지만 그만큼 재미있고 무엇보다 어렵던 난관(보스 or 몹들의 다구리)을 뚫었을 때의 쾌감이 각별한 것 같습니다. 특유의 호러적인 느낌도 좋아요. 배경음악 없이 음산한 분위기에 끅끅대는 신음소리와 몹들이 도끼를 땅에 끌 때 나는 스르릉 하는 소리에 가슴 졸이는 거라던가 갑자기 사각에서 몹들이 달려들어서 깜짝 놀라게 한다던가.
말씀대로 무진장 어렵고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데---튜토리얼도 없고 미니맵도 없고 2~3번 때리면 죽던 몹들이 갑자기 4~5번 때려도 안죽길래 '이거 뭐야?' 하고 놀랐는데 그게 알고봤더니 무기에 내구도 설정이 있었다는 거 등등등---그게 다 게임의 재미로 승화가 되는 걸 보면 좀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하여튼 전체적으로 봐서 걸작으로 꼽을만하다고 생각해요.
2017.07.11 18:06
2017.07.11 16:29
블러드본을 하고 있으니 구경하던 아내가 시크하게 한마디 툭 던지더군요
"되게 못하네"
좀더 보더니 한마디 더 툭 던지더이다
"길치는 게임에서도 길 헤멘다더니 정말이네"
블러드본을 구동한지 15분 후에 든 생각들은
"이걸 만든xx는 지가 돌려보긴 한건가"
"이걸 사람이 하라고 만든건가"
등이었어요.
무쌍류 게임에 익숙할뿐 소울류(?)게임은 처음이었던 저로서는 2:1상황에서마저 피떡이 되어버리는 게임이라는건 납득하기 어렵드라구요.
근데 이게 꼭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만은 아닌것이,
포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뭔가가 있드라구요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이게 방어력은 종이장인데 공격력은 그리 나쁘지 않더군요.
말인즉,
"조금만 더 신경써서 피하면 깰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도록 셋팅이 되어 있는듯 싶어요.
성검을 얻은 후에는 공격력 빨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던듯...
이런저런 이유로 중후반부 쯤에서 짱박히게 되었는데
다시 잡을 엄두가 잘 나지 않네요.
아무튼간에 말씀하신 것처럼 뭐라 설명하기 힘든 매력이 있는 게임은 확실한것 같습니다.
특히 아트웍(?) 미장센(?)은 분명 특기할 만한 점이 있어요.
그리고 여기저기서 줏어들은 바로는 스토리가 없진 않은것 같아요.
게임상에서 스토리 텔링을 안 해줄 뿐이지--;
2017.07.11 18:12
2017.07.12 12:50
이거 만든 양반이 데몬즈소울 때부터 스토리는 단편적인 대사나 기록, 배경과 상황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전달하고 구체적인 부분은 플레이어가 알아서 상상하라는 식이었죠. 이게 상당히 오묘한 맛이 있는지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요.ㅎ
2017.07.12 13:17
2017.07.12 13:08
2017.07.12 14:02
네. 어렵더라구요. 사냥꾼들이 일반 몹처럼 쏟아져 나오고 동굴 속엔 쌩뚱맞게 피에 굶주린 야수가 일반 몹 신분으로 돌아다녀주시고. ㅋㅋㅋ
그래도 어젯밤에 죽고 죽으며 간신히 루드비히까지 갔다가 대차게 죽고 불꽃 부시깃이라도 장만해서 재도전하려고 일단 접었습니다.
전 그래도 발광 등불은 의외로 금방 통과했어요. 저도 처음엔 몹 하나하나 다 잡으면서 가느라 고생했는데, 좀 하다 보니 옆에 몹 별로 없고 비교적 넓은 샛길이 있어서 그냥 진정제 마시면서 죽어라고 달려 버리면 통과 되는 거더라구요;; 근데 정말 며칠도 아니고 1년만에 클리어하셨으니 그 때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으셨겠습니다. 하하.
하... 근데 이거 '루드비히보다 더한 놈들' 생각을 하니 갑자기 의욕이(...) 한 번 엔딩은 봤으니 걍 스킵해 버리고 싶은 맘도 살짝 드네요. ㅋㅋ;
2017.07.12 13:10
2017.07.12 14:03
에반게리온은 그래도 스토리가 있고 떡밥이 있었잖아요. ㅋㅋ
이 게임은 스토리는 없고 떡밥만 무성해서 그 떡밥을 짜맞춰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하는지라 스스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금방 포기하게 만들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짜맞춰내는 능력자분들 진정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