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여러분은 열심히 살고 있나요? 그야 열심히 살고 있겠죠. 나도 열심히 살고 있고요. 우리 모두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거죠. 우리의 존재가치와 행복은 어디서 오는 걸까...라고 생각해 보곤 해요. 그 답은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겠죠. '이 세상에서 행복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유용성을 갖춘 자들뿐이다.'라는 말이 있듯이요. 


 사실 유용성이라는 건 곧 존엄성과도 같아요. 우리가 얼마나 쓸모있는지에 따라 우리가 사회에게 얻을 수 있는 대접이 달라지니까요. 우리에게 지급되는 돈도, 우리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는거죠.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인지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인지에 따라 소모품이 될지 자산이 될지가 갈리니까요.



 2.이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사회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는 힘은 두가지예요. 노동력과 구매력이죠. 얼마나 대단한 노동력을 갖췄는가...얼마나 대단한 구매력을 갖췄는가...이 두 가지 요소에 의해 사회에서의 위상이 결정되니까요. 그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가적 면모를 가지고 살아가요. 노동자이거나 구매자 둘 다의 면모를 가지고 살아가지 한 쪽의 면만 가지고 살지는 않죠. 노동력만을 발휘하며 사는 건 노예의 생활이고 구매력만을 발휘하며 사는 건 엄청난 부자의 생활이겠죠.


 위에 쓴 '구매력만을 발휘하는'은 반드시 소비로서의 구매만을 말하지는 않아요. 소비는 구매의 일면 중 하나니까요. 값이 몇 배는 뛸 미술품을 사거나 남들의 노동력을 사거나 남들보다 일 주일 먼저 정보를 사는 데 돈을 쓰는 것도 일종의 구매죠. 예전에는 정보란 것도 자산이었겠지만 요즘은 아니거든요. 이제 대개의 정보는 모두에게 공개되는 법이고, 공개되는 타이밍만이 다를 뿐이예요. 



 3.한데 내 생각엔 그래요. 위에는 열심히 산다고 말했지만 '내가' 열심히 살고 있는지 어쩌는지는 행복과 별 관계가 없거든요. 중요한 건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내 돈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가이죠.


 위에 쓴 '노동자이면서 구매자'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더 존중받는 구매자가 되기 위해 더 존중받는 노동자가 되려고 하죠. 우리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노동력-과 인격-을 존중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그들이 얼마나 지불하느냐니까요. 사실 그들이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는가...그렇지 않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의 노동력이 존중할 만한 노동력이라면, 우리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인격도 자연스럽게 존중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는 더 나은 수준의 구매자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없어요. 더 좋은 구매자가 되기 위해 더 좋은 노동자가 되는 노력은 할 수 있겠지만, 더 좋은 노동자가 되기 위해 더 좋은 구매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경우는 없단 말이죠. 



 4.휴.



 5.전에 썼었죠. 나는 돈을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긴다...다음에는 그것에 관해 한번 써보겠다고요. 지금까지 일기를 봐 온 사람이라면 코웃음 칠 수도 있겠지만 진짜로 그래요. 


 진짜로...때로는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이죠. 돈이란 건 정말 잘못 만들어졌다고 말이죠. 물론 화폐는 필요해요. 지나친 복잡성을 띄게 되어버린 세상에서 교환을 위한 수단은 있어야 하죠. 한데 만들어 놓고 관리를 잘못한 거예요. 교환가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 레버리지 그 자체가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리고 문제는, 일정 이상의 돈부터는 노동력보다도 강하다는 거죠. 그냥 노동력이 아닌, 엄청난 전문성을 띈 노동력...고부가가치의 노동자보다 말이죠. 


 사실 그래요. 노동도 신성할 수 있고 돈도 신성할 수 있어요. 모두가 노동을 통해 돈을 얻는다면 그 두가지 사실이 양립할 수 있을거란 말이죠. 그러나...그렇지가 않단 말이죠. 


 

 6.지금까지 지껄여왔던 소리에 비하면 좀 헛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노동이라는 것의 성질 중 하나가 존엄성이라고 생각해요. 진짜로요. 노동이라는 건 한 사람이 펼칠 수 있는 기술과 열정의 결합물이니까요. 하나의 인간이 해당 분야에서 기술자라고 불릴 때까지 줄곧 겪어내야 하는 환경적 압력...그 긴 기간에 걸쳐 무언가로 우화하게 되었을 때에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자부심...무언가에 의해 쓰여지는 데에서 느낄 수 있는 충족감과 소속감...뭐 그런 것들 말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봐도 6~7천만원이라는 돈은 우스운 돈이 아닌 거죠. 7천만원이라는 '액수'가 아닌 7천만원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요. 그건 상당히 숙련된 기술자가 1년 내내 스스로를 녹여내야 챙길 수 있는 금액이니까요.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사람의 노동자가 확실히 제몫을 하는 기간은 10년 안팎이라고들 하죠. 노동자가 지불해야 하는 것이 노동력만이 아닌 시간까지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노동자는 연봉을 얻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만이 아닌, 자신의 전성기의 10분의 1 이상을 지불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정상적으로 생각해보면 절대 우습게 여길 돈이 아닌 거죠. 


 

 7.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이 사람, 전에는 노동을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왜 이렇게 찬양질이야?'라고요. 위에 쓴 건, 가까이서 낭만적으로 보려고 노력을 하면 그렇다는 거고요. 멀리 떨어져서 냉정하게만 바라보면 직업이라는 건 돈을 받지 않는다면 절대로 가지지 않을 것에 불과해요. 거기엔 모티베이션도 열정도 보람도 아주 조금씩은 있긴 하겠죠. 하지만 직업에서 결국 중요한 건 돈이라는 보상이니까요. 


 위에는 7천만원이 우습게 볼 돈이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7천만원은 어느정도의 유동성을 가지고 있다면, 순식간에 뻥튀기시킬 수 있는 돈이기도 해요. 그리고 순식간에 뻥튀겨진 돈일수록, 매우 쓸데없는 걸 구매하는 데 써버리게 되곤 하죠. 사물이 아닌 사상(事狀)을 구매하는 데 쓰이게 된단 말이죠. 수백만원짜리 코트나 수천만원짜리 시계를 사면 몇년간 손에 남지만 수백만원이나 수천만원으로 구매하는 사상은 아무리 길어도 하룻밤이면 끝이 나거든요. 그러니까 가까이서 보면 열심히 일하고 아껴서 모은 7천만원과 한번에 뻥튀기시킨 7천만원은 당연히 가치가 다르죠.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상냥하지 않잖아요. 세상의 시점에서 보면 그 두개의 7천만원은 똑같은 7천만원일 뿐이예요. 그 7천만원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전혀 봐주려 하지를 않아요. 


 한가지 궁금한 건 이거예요. 세상이 상냥하게 봐주려 하지 않는 것을 내가 상냥하게 봐줘야 할까요? 내가 한가지 깨닫게 된 건...세상은 우리의 연약함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가 해낸 것들만을 신경쓰죠. 어떻게 해냈는지, 얼마나 어렵게 해냈는지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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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썼듯이 돈은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요. 돈은 세대가 누적될수록 계급간에 더욱 두껍고 더욱 단단한 차단벽을 만들어내니까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그냥 이대로 간다면, 교환가치로서 만들어진 돈이 레버리지를 더욱 굳히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양상은 점점 더 심해질거예요. 엄청난 매력을 가졌거나 엄청난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선, 도저히 계급간의 벽을 뚫어볼 기회...자신의 위상을 드높일 기회가 없게 되겠죠. 위에 예로 든 노동자로서의 위상과 구매자로서의 위상의 밸런스가 차차 무너져갈 거예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죠. '위상이라니? 그딴 거나 신경쓰고 사냐? 한심하구만.'이라고요.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면서 산다고 할지도요. 하지만 문제는, 당신이 세상에 관심없더라도 세상은 당신에게 꼬리표를 붙이는 데 관심이 있거든요. 그것도 아주 지대한 관심이 있단 말이죠. 


 누군가가 우리에게 꼬리표를 붙이려고 할 때마다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때마다 싸워야 할까요? 아니면 싸울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게 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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