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역지사지..(스타트렉)

2017.05.29 10:35

가라 조회 수:672


스타트렉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TV 최초의 흑백 키스씬이 나왔다던가, 냉전이 한참이고 인종차별이 당연시 되던 60년대에 레귤러 캐릭터로 흑인 여성 장교나 동양인 남성장교, 적국인 러시아 출신 장교들을 배치했다 어쩐다라는 사실로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넷플릭스 한국 서비스에서 스타트렉을 서비스 하기 시작했고, 인기로 치면 60년대 오리지날 시리즈만큼 인기 있고, (시청률로는 TOS를 능가하는) TNG(The Next Generation) 시리즈가 5시즌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1시즌에서 남녀 역전 사회를 대놓고 보여줬던 Angel One 이라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그 행성은 남자는 왜소하고 여성은 키가 크고 늘씬늘씬합니다. (모델 출신 배우들이 게스트로 나온듯) 그래서 여자들이 사회를 리드하고 남자들은 차별 받고 있습니다. 그 행성에 행성연방 우주선이 추락했고 처음에는 생존자들을 잘 대해줬는데 이 '남자 외계인'들이 자기네 사회의 여존남비 시스템에 대해 자꾸 딴지를 걸다 보니..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어 도망자가 되어 몰래 숨어 살고 있고.. 엔터프라이즈가 몇년후에 우주선이 추락한 사실을 알게 되어 생존자가 있나 그 행성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87년 방영된 에피소드인데, 성차별에 대해 남녀를 뒤집어서 생각해봐라.. 라고 대놓고 들이대는 에피소드 였는데 너무 대놓고 드러내려다 보니 도리어 평점은 낮았고 스토리 개연성도 좀 부족했습니다. 



5시즌에서 비슷한 역지사지 에피소드인 Outcast 를 며칠전에 다시 봤습니다. 확실히 어렸을때 영문 자막으로 힘겹게 볼때랑 한글 자막으로 편안히 볼때랑 느껴지는게 다르더라고요. 그만큼 제가 나이도 먹었고요. 이번에는 '성소수자 차별'을 역지사지로 접근합니다. 성을 드러내는 것, 사랑하는 것을 터부시 하는 행성을 방문한 엔터프라이즈의 부선장 라이커는 그 행성의 과학자와 함께 일하면서 사랑을 느낍니다. (그 행성인들을 연기하는 배우는 모두 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과학자는 '사실 나는 태어났을때부터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행성에서 이런 정체성은 금기다.' 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고 라이커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당연히 과학자는 체포되고요. 법정에서 '내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건 범죄가 아니다, 왜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느냐. 난 도움도 필요없고 치료도 필요없고 그냥 이대로 살게 놔둬라. 누구도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피해 입는 것이 없지 않느냐' 라고 하지만 판사는 냉혹하게 '너희 같은 병자들이 많이 하는 소리인데, 그렇게 스스로 인정했으니 너 유죄. 치료형에 처함' 이라고 합니다. (....) 법정에 있던 라이커는 '최소한 엔터프라이즈로 망명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 라고 하지만 판사는 '우리는 이런 환자들을 치료해온 경험이 많고 성공적인 결과를 얻고 있다. 환자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도 아픈 사람은 치료해 줘야 하는 거 아님?' 이라고 하지요.

라이커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출해서 망명시키기 위해 몰래 치료시설에 잠입하지만, 과학자는 이미 치료를 받았다며 '내가 지금까지 아팠던거 였음. 치료 되었으니 괜찮음' 이라면서 라이커와 함께 떠나는 것을 거부하고, 라이커는 망연자실합니다. (정신병자를 잡아다놓고 로보토미 시술을 하는 것이나, 동성애자로서 화학적 거세를 강제 당했던 튜링이 떠오르더군요.)


이 에피소드도 대놓고 '남녀가 사랑하는데 남녀간의 사랑을 금기시하는 사회가 그걸 못하게 하면 정상이겠음?' 이라고 하지만, 1시즌의 Angel One 에 비해서는 좀 더 세련되게 접근합니다. 역지사지의 논리적 설득 보다는 사회가 강제로 찢어놓는 안타까운 로맨스로 그려갑니다. 하지만 45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으로 메세지를 전달하려다 보니 스토리나 캐릭터의 개연성이 좀 떨어졌습니다. 그냥 91년에 시청률 탑을 찍고 있는 공중파 드라마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정도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몇년전 스브스 주말 드라마에서 주인공 부부의 아들이 게이로 나와 나름 긍정적으로 그려졌던 것이 떠오르긴 합니다.)


이 얘기를 쓰기 시작한건.. 해당 에피소드의 리뷰를 보다보니..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잘못된 것이지만, 정체성을 고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개인이 소수자로서 차별을 받으며 살게 하기 보다는 정체성을 바꿔주는게 낫지 않을까' 라는 글을 보고나서였어요.

아아.. 이 에피소드를 보고 이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구나.. 아니, 이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25년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참 천천히 바뀌는구나 싶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1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7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68
121561 지도보고 나라 맞히기, "월들" 한번 하시죠 [6] Lunagazer 2022.11.16 546
121560 프레임드 #250 [5] Lunagazer 2022.11.16 108
121559 아르테미스 발사 카운트! [4] 폴라포 2022.11.16 282
121558 [왓챠바낭] 내친 김(?)에 '타인의 취향'도 봤지요 [6] 로이배티 2022.11.16 479
121557 다 이정도는 모른체 살아가는걸까 가끔영화 2022.11.16 423
121556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3] 조성용 2022.11.16 577
121555 Chage & Aska - YAH YAH YAH catgotmy 2022.11.16 137
121554 콘서트 티켓팅의 고수를 찾아서 [1] skelington 2022.11.15 316
121553 디즈니 플러스 잡담 [12] daviddain 2022.11.15 807
121552 닮아가는 사람들 [8] Kaffesaurus 2022.11.15 592
121551 에피소드 #11 [2] Lunagazer 2022.11.15 110
121550 프레임드 #249 [3] Lunagazer 2022.11.15 124
121549 아부지의 응원 말씀 [4] 어디로갈까 2022.11.15 584
121548 마츠다 세이코 - 푸른 산호초 [2] catgotmy 2022.11.15 551
121547 이거 무슨 광고게요 [2] 가끔영화 2022.11.15 292
121546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2022 [2] 예상수 2022.11.15 408
121545 [왓챠바낭] 가끔은 이런 영화도 봅니다. '타인의 삶' 잡담 [10] 로이배티 2022.11.15 564
121544 [OCN Movies] 갱스 오브 뉴욕 [4] underground 2022.11.14 282
121543 [영화바낭] 예상이랑 너무 달랐던 영화, '마견' 잡담입니다 [15] 로이배티 2022.11.14 620
121542 '이마베프' 2021 [6] thoma 2022.11.14 41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