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죠. 말 그대로 좋은 재료들을 가지고 있어봐야 이으고 꿰어서 완성품으로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거죠. 


 하지만 이 속담은 조금 다르게 해석해볼 수도 있어요. 왜냐면 좋은 구슬들을 손에 넣기도 전에 꿰는 작업을 시작해버리면 최종적으로는 완성도가 하락하게 되잖아요. 관점을 달리하면 이 말은, 보배를 만들고 싶다면 구슬 서 말 쯤은 손에 넣은 뒤에야 비로소 꿰는 작업을 시작하라는 가르침일 수도 있죠. 



 2.이건 이야기나 논문이나 마찬가지예요. 그야 논문은 써본 적 없으니까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는 그렇거든요. '구슬을 꿰는' 작업을 일단 시작해버리면 더 좋은 구슬이 마련되어도 써먹을 수 없곤 하단 말이죠. 왜냐면 이야기라는 건 이전의 구슬과 이후의 구슬간의 연결성이 있어야 한단 말이예요. 아무리 좋은 캐릭터나 좋은 시퀀스나 좋은 전개가 떠올라도 이미 구슬들이 꿰어진 상태이고 거기에 추가할 수 없는 종류의 구슬이라면 첨가할 수가 없게 되거든요. 그게 아무리 좋은 구슬이라도요.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의 구슬'을 꿰는 경우에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구슬들을 꿰지 않고 계속 구슬들을 모으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3.물론 이야기의 구슬을 꿰는 데 필요한 시간은 남겨둬야 하죠. 어떤 이야기를 꿰는 떼는 물리적인 시간이 걸리니까요. 이야기를 맛깔나게 만드는 것은 어떤 구슬들인가만이 아니거든요. 구슬이 배치된 순서, 구슬들간의 간격, 구슬들을 이어낸 재봉 기술의 섬세함 같은 것들 또한 중요해요. 아무리 좋은 구슬들을 모아놨어도 그걸 꿰는 솜씨가 어설프면 좋은 목걸이가 완성되지 않는 거죠. 


 영화로 치면 똑같이 찍어 놓은 필름도 편집에 따라 얼마든지 완성도가 바뀌는 것처럼 말이죠.



 4.휴.



 5.이렇게 쓰면 누군가는 이럴지도 모르죠. '전엔 귀찮아서 마감을 최대한 늦춘다더니, 더 좋은 이야기를 쓰려고 그런거였구나? 믿고있었다고!'라고요. 뭐 그렇게 잘 봐 주면 좋고요. 하지만 반반이라고 해 두죠.


 뭐 어찌됐든 통조림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나 자신을 가둬놓고 계속해서 작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 말이죠. 내 계산엔 모아둔 구슬들을 물리적으로 다 꿰내려면 어쨌든 이번주 프듀파티가 끝나고...토요일부터는 미친듯이 작업해야만 해요. 여기서 말하는 '미친듯이'는 한 점의 과장도 없어요. 진짜 미친듯이 해야만 해요.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해요.



 6.그래서 놀랍게도 오늘도 술을 마시고 돌아왔어요. 아니 나도 3일 연속 술집에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진짜 술집에 가서 놀 수 있는 확실한 날이 수요일밖에 남지 않았더란 말이죠. 금요일은 약속이 있으니까 금요일은 나가리고, 목요일은 확실하게 빈 게 아니라서요.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별로 술집에 가고 싶지 않더라도 이제 어딘가에 갇혀서 오랫동안 고생해야 하고, 그 전에 술집에 가서 놀 수 있는 날이라곤 오늘뿐일지도 모른다...라는 공포를 말이죠. 그러면 당신도 술집에 가게 될걸요?

 


 7.이렇게 말하면 또 누군가는 이럴지도 모르죠. '그렇게 스트레스 받을 만한 일이면 그만두지그래?'라고요. 뭐 그렇죠...그만둬도 좋겠죠. 사실 뭐 이걸 해내서 아주 잘 된다고 쳐도 엄청 큰돈을 쓸어담는 것도 아니고...안 한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생각해보면 안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단 말이죠. '이까짓 거 안해도 1도 손해없잖아.'라면서 쉽게 그만둘 수도 있겠죠. 이렇게 전전긍긍할 필요 없이요.


 하지만 역시 아니예요. 이것마저 바보 취급해 버리면, 내 인생에 더이상 바보 취급할 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거든요. 그래도...인생에 바보 취급할 수 없는 것이 한가지는 있어야 하니까요. 인간에게는요.


 가끔 내가 '아? 작가? 그딴거 별거 아니잖아. 존나 돈도 안되는거잖아. 한심해.'라고 가끔 말해도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곤란해요. 그냥 잠깐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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