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호칭)

2017.10.21 19:36

여은성 조회 수:632


 #.여러분은 알고 있나요? 자신이 사람들에게 뭘로 불리고 있는지요. 실제로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들이 나를 뒤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모임 내의 끄나풀을 이용해 알아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가깝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뭐라고 불리고 있을지 궁금해할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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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술집에 가서 술을 깔끔히 비우는 날은 거의 없어요. 두번째 바틀이나 세번째 바틀쯤에서 남기게 되고 킾술로 남겨지죠. 


 그러나 그 가게에 다시 가도 킾술을 먹는 일 따윈 없어요. 나는 킾술을 안 먹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버렸거든요. 어째서인지 그냥 그렇게 분류되어 버린거예요. 킾술은 안 먹는 사람으로 분류된 내가 술집에 가서 킾술을 달라고 하면 직원은 킾술을 가져오는 대신 사장에게 보고하러 가요. 그리고 사장들은 와서 이렇게 말하는거죠.


 '이제 우리 가게 안올려고 이러는구나.'라거나 '와, 이제 사랑이 식었나보네?'라거나 'XX이네 가게에선 킾술 안먹는다면서요? 우리 가게는 킾술먹는 가게고 XX이네 가게는 아닌 건가요?'


 뭐 이딴 말들이요. 그야 말도 안 되는 타박이지만, 그들이 보기엔 그런 거예요. 킾술을 안 먹다가 어느날 킾술을 가져오라고 하면 그들은 내가 이곳을 소홀히 대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는 거죠.



 2.하지만 요즘은 킾술을 놔둔 걸 꽤 써먹었어요. 생일파티를 할 때 술은 필요하니까요. 삼성역이면 삼성역...중구면 중구...어딘가의 장소를 잡아서 생일파티를 할 때마다 마침 근처에 있는 가게에 가서 파티에 쓸 술을 조달해오곤 했어요.



 3.이런저런 곳에서 킾술을 꺼내보다 보니 재미있는 걸 발견했어요. 킾핑된 위스키는 누구의 술인지 구분할 수 있게 네임택이나 포스트잇을 달아 놓거든요.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본명을 쓰던데 이상하게도 내 경우에는 택에 본명이 써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요. 대신에 그들이 내게 붙인 별명이 써 있었어요. 이름을 줄여서 '은성'같이 써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X돌이' 'XX이'라는 식으로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 알 만한 별명이 주로 써 있었죠. 전에 쓴, 올해 초중순부터 다니기 시작한 광화문에 있는 가게의 네임택에는 '꽃무늬 남방'이라고 써 있었어요. 나는 4월경부터 반팔을 입고 다니니 요 반년간 그들은 반팔을 입은 나만 본 거니까요. 어떤 가게는 포스트잇에 낙서한 그림을 버리지 않고 그걸 위스키 병에 붙여놓고 있기도 했어요. 다행히도 부정적으로 묘사된 네임택은 없는 것 같았어요.


 하여간 킾술을 시킨다면 네임택을 떼고 테이블로 가져오기 때문에 네임택을 볼 일은 원래 없으니까요. 술병에 붙여진 네임택을 보는 게 일종의 재미가 됐어요.



 4.휴.



 5.최근에 삼성역에 있는 곳을 잡아서 생일파티를 하게 됐어요. 그야 생일파티는 사실 핑계예요. 사람들을 불러내서 그 날을 때워보려는 핑계인거죠. 노벨 문학상을 탈 수 없게 되어서 도전할 일이 없어져버린 나는 남아있는 수많은 하루하루를 때워야만 하니까요.


 뭐 어쨌든 오픈 시간에 삼성역에 있는 가게에 갔어요. 술을 조달하러요. 내심 네임택에 뭐라고 써 있을지 기대됐어요. 왜냐면 '사장끼리 친분이 있는 가게'는 별명이 공유되거든요. 이 가게에서 X돌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면 저 가게에서도 X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거죠. 하지만 이 가게의 사장은 내가 다니는 다른 가게의 어떤 사장과도 친분이 없었어요. 다른 가게와 별명을 공유하지 않는 곳에서는 뭐라고 불리고 있을까...아니면 본명이 적혀 있을려나...라고 생각하며 갔어요.


 가게에 가서 킾술을 전부 꺼내달라고 하자 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근처의 어떤 곳을 빌려서 생일파티를 하는데, 킾술을 가지러 온 거라고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였어요. 


 '어차피 안 먹을 킾술이니까 가져갈께.'라고 하자 사장은 '어차피 안 먹어?'라고 되물었어요. 되짚어 보니 이 가게에서는 딱히 새 바틀을 팔아 달라거나 한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어차피 모든 가게가 킾술을 먹는 걸 싫어하니까 지레짐작으로 이곳도 그럴 거라고 여기고 있던 거예요.


 

 6.사장이 술 세 병을 가져다 놓고 담아갈 쇼핑백을 찾아보겠다고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줄 때 바틀에 붙은 포스트잇을 떼버리고 주지 않을까 싶어서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어요. 뭐라고 써 있는지 보고 싶어서요.


 포스트잇에는 '혼자 오는 오빠.'라고 써있었어요. 별명이라기엔 좀 아닌 것 같았어요. 이건 아마도 별명을 적은 게 아니라 그냥 이름을 몰라서 이렇게 적어놓은 거라고 추측됐어요. 


 직원이 더우니 아이스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고 가져왔어요. '너나 먹어. 빚지기 싫어.'라고 말하자 직원은 '이게 무슨 빚이야.'라고 어이없어했어요. 원가 몇백원도 안 하니 마시고 가라는 직원에게 대답했어요. '나한텐 그래. 어디서든 커피 한 잔이라도 얻어먹으면 거기 한번 더 가줘야만 하는 거야.'라고 하자 듣고 있던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7.휴...뭐 그래요. 호텔은 별로란 말이죠. 별로인 것들 중에선 낫지만 역시 별로예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와서...아무래도 눈치가 보여서 투숙객을 3명으로 설정해 놨어요. 


 생일 파티를 하고...1시가 좀 넘자 다들 가버렸어요. 그렇게 멀지 않은 곳으로 출근하는 사람 둘에게 여기서 자고 아침을 먹고 가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며 그들도 가버렸어요.


 사실 호텔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뭐...없단 말이죠.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도 없고 게임기도 없어요. 약간 큰 호텔방에 있는 거라곤 약간 큰 침대와 약간 큰 TV뿐인거죠. 아무리 좋은 호텔도 좋은 사람과 오지 않는다면 감옥일 뿐이예요. 지나가는 차들을 멍하니 보다가...몸이라도 움직여 볼까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일단 그곳은 24시간 피트니스가 아니어서 운동은 무리였어요. 자전거라도 빌려서 근처를 쏘다닐 수 없을까 하고 자전거 대여 서비스는 없냐고 묻자 그런 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그래서 그냥 체크아웃하려다가 좀 전의 사장에게 연락을 해봤어요. 



 8.사장에게 가게를 마치고 와서 조식이라도 먹지 않겠냐고 물었어요. 사장이 망설이는 것 같아서 재빨리 선수를 쳤어요. 3명으로 예약해서 조식을 한명 더 먹을 수 있으니 네 동생(직원)도 데려와도 좋다고요. '내가 못된 짓을 할 수 없게 걔한테 감시하러 오라고 해.'라고 말하자 사장은 깔깔 웃었어요. 가게를 정리중이니 이따 동생에게 물어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전화를 끊자...한가지 걱정이 됐어요. 삼성역엔 똑같은 이름의 호텔이 2개가 있거든요. 그래서 올 거라면 정확히 XXXX이름이 붙은 곳으로 오라고 카톡을 보냈어요. 1이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잠깐 눈을 붙였어요. 턴다운을 한번 시켜야 할까...라고 생각했다가 굳이 그러는 것도 미안한 일 같아서 그만뒀어요.


 

 9.로비에 왔다는 문자가 와서 마중을 나갔어요. 직원은 따라오지 않았어요. 방에 올라가자 방이 너무 어질러져 있다며 사장이 툴툴거렸어요. '이 정도면 얌전하게 논 거야.'라고 말해줬어요. 웬만한 녀석들이 호텔에 놀러오면 이보다 훨씬 더 엉망이 되거든요. 침실은 어지를 수 없도록 미리 격리해 둬서 깔끔했어요.


 침실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어요. 20분쯤 지나자 대화의 흐름으로 보아...슬슬 '그것'이 시작될 것 같았어요. 사람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내게 조언을 시작하곤 하거든요.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는 둥...그렇게 살면 행복하냐는 둥...뭐 그런 말들 말이죠. 이 녀석은 무슨 조언을 해올까 궁금했어요. 그야 조언 자체가 도움이 되지는 않아요. 말이나 생각따위가 내게 도움이 될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조언을 듣는다는 건 나에게 하는 조언을 통해 상대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기회니까요. 위에 쓴 네임택처럼.



 10.뭐 조언은 별 거 아니었어요. 그걸 아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오빠는 정말 착한 사람이다...그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알려야 한다...오빠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은 오빠가 착한 사람인지 재수없는 사람인지 헷갈려한다...뭐 이런 소리였어요. 그래서 대답해 줬어요.


 '어차피 내가 오면 니들은 강제로 날 봐야만 하잖아.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겠지.'


 그러자 사장은 투덜거렸어요. 네가 꼭 그딴 식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사람들이 긴가민가 하는 거라고요. '니가 계속 그러면 사람들이 니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아는 데 시간만 더 오래 걸려.'라고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왜 갑자기 너라고 부르냐고요. 그러자 사장은 '너는 마음이 너무 어리다.'라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다시 대답했어요.


 '모든 남자는 어린애가 맞아. 다른 놈들은 어른이 된 척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보니까 어른인 척 하는 거고. 난 혼자 사니까 다른 사람인 척 할 필요가 없지. 어른이 된 척 하는 남자 놈들한테 속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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