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2049 후기(스포)

2017.10.19 12:10

샌드맨 조회 수:1793

어제 보고 왔습니다. A 영화관에 예매해놓곤 정작 B영화관으로 가는 바람에, 게다가 이걸 상영시간 맞춰 들어가다 알아서 예매취소도 못하는 바람에 졸지에 두 편 값 내고 B 영화관에서 한시간 기다리다 봤다는 건 안 자랑...=_=;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작의 팬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긴 한데... 그다지 마음에 드는 영화는 아닙니다. 


일단 음악은 최악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원작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음악이었어요. 반젤리스, 그것도 클래식에 경도되기 전 신디사이저 음악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되던 전성기의 반젤리스가 작곡한 음악이죠. 장엄한 분위기의 오프닝 테마부터 Rachel's Song, Love Theme, One more kiss Dear, Tears in Rain, 긴박한 분위기의 엔딩타이틀까지 도무지 쉬어갈 틈이 없는 명곡들의 향연입니다. 시종일관 어둡고 비내리는 축축한 날씨와 현란한 네온사인의 야경, 그리고 반젤리스의 음악이 만났을 때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가 완성되는 거죠. 


하지만 2049는... 음악이란 게 있긴 했나요? 한스 짐머가 크레딧에 있긴 했던 것 같은데 뭘 한거죠? 2049에는 신경질적인 효과음만 있을 뿐 도무지 음악이란 게 없습니다. 가뜩이나 시종일관 잔뜩 물먹은 듯 둔중하고 모래 뒤집어쓴 듯 텁텁한 영화인데, 음악마저 없으니 더 지루합니다. 전작은 불친절할지언정 분위기가 끝내주는 작품이었고,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였습니다. 2049는... 눈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귀가 괴로운 영화란 걸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불만입니다. 영화속 시간대로도 30년, 개봉일 기준으로는 35년이 지난 영화잖아요. 전작에서 조그만 CRT 화면에 음성으로 명령하는 설정은 당시 기술의 한계였고, 또 그것도 82년 기준으로는 충분히 미래세계라 상상할만한 상당히 진보된 테크놀로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2017년이에요. 심지어 영화 속 세계에서도 리모컨만한 휴대기기 하나 들고 다니면서 인간과 전혀 구분이 불가능한 수준의 3D 그래픽 캐릭터를 불러올 수 있는데 왜 여전히 사무실과 자동차에 설치된 컴퓨터는 90년대 수준의 CRT 모니터인 거죠? LAPD는 새 건물 세우고 비행자동차 사느라 예산을 다 써서 전자기기 업그레이드는 30년 동안 못한 건가요? 원작의 세계는 지저분하고 축축할지언정 꽤나 화려한 세계였습니다. 하지만 2049는 그저 어둡고 답답하고 텁텁합니다. 


이야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후속작이 아닌 외전 형식으로 데커드 및 레이첼의 재출연 같은 전작 팬들을 위한 서비스를 집어치우고,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더 인간다웠던 두 존재 - 레플리컨트(케이)와 인공지능(조이)의 관계에 더 집중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요. 이야기가 불친절하고 많은 면이 모호하지만, 이건 전작도 마찬가지에요. 다만 전작은 그 모호함마저 매력적으로 만들고, 세계관의 일부라고 이해하게 만들만한 압도적인 스타일리시함이 있었던 반면 2049는 그렇지 못했죠.  


전작 블레이드 러너는 엄청나게 철학적인 명작이 아닙니다. 그냥 무거운 주제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상업영화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전설로 추앙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주제가 당시로선 참신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음울한 풍경 + 반젤리스의 음악이 만들어낸 '후까시'가 너무나도 섹시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2049는... 글쎄요... 후속작이다보니 35년 전엔 참신했지만 지금은 다소 식상해진 주제를 벗어날 수 없었다는 걸 차치하고서라도 전작의 매력이었던 그 '후까시'의 아우라가 너무나도 부족해요. 텁텁하고 무거운 색감, 툭하면 클로즈업, 신경질적이고 효과음에 가까운 배경음악 등으로 뭔가 '있어보이는' 척 하지만, 더 파고 싶다는 생각보다 그냥 무겁기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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