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성에 대한 묘사로 치면, 잠시나마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 생각해 삶의 새 의미를 찾던 주인공이 사실은 정말로 개뿔 아닌 인물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에 맞춰 '네가 사랑이라 여기던 게 사실은 뇌내망상으로 자위하는 남자들 판타지에 맞춰 프로그래밍된 걸지도 모르지롱~' 하는 이 영화보단, 뭔가 똑 부러지고 제 몫 다 할 것 같은 여성 캐릭터를 내세우는 듯하더니 상남자들의 세계에서 내내 쪽도 못 쓰고 시달리는 모습으로만 그리다 아예 클라이맥스에선 이야기 밖으로 치워버렸던 <시카리오> 쪽이 훨씬 문제가 있다고 보는지라(물론 영화 내의 핑계거리야 있지만 제가 보기엔 여성성을 서사적으로 편리하게 이용해 먹기에 좋은 핑계에 불과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론 시카리오라는 영화 자체가 여러 모로 관객을 많이 낮추어 보고 타협점을 심하게 아래로 잡다가 조금은 비겁해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훨씬 격한 반응이 나온 게 개인적으론 좀 신기했습니다.

그걸 떠나서 영화 자체는 드니 빌뇌브의 필모를 통틀어 가장 수작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너무 비디오게임 퀘스트 깨듯 단계를 착착 밟아가며 진행되어서 전작이 고유하게 가졌던 그 들큰하게 취해들어가는 맛이 없습니다. 느리고 둔중하게 진행되는 흐름 자체는 좋지만, 작위적이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각 맞춰가며 조립한 느낌이 개인적으론 조금 거슬리더라고요. 그렇게 깔끔하게 똑 떨어지게 만들다 보니 살짝 핀트가 어긋날 때 확 튀어버리는 것도 신경쓰입니다. 특히 K에게 데커드 살해 미션이 주어지는 과정은 너무 어거지로 맞춰놓은 인상입니다.

전작의 주제의식을 계승하되 K와 조이의 관계, 월레스와 러브의 관계, 데커드와 레이첼의 관계를 겹쳐놓고 조금 더 다양한 각도에서 그 문제를 조명하며 심화시켜 보려는 시도 자체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비디오게임스러운 진행 하에서, 주제의식도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기보단 이미 어디선가 봐온 조각들을 비디오게임에서 퀘스트 아이템 던져주듯 대놓고 턱턱 보여주는 식이라, 개인적으론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텐션이 뚝 떨어져 버렸던 <프리즈너스>, 텅 빈 알맹이 위에 포장에만 과하게 공을 들였던 <에너미>, 막판에 복수혈전으로 변하면서 영화 자체가 망가졌던 <시카리오>, 원작을 굳이 영화화한 이유를 전혀 설득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컨택트>에 비하면, 훨씬 나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로저 디킨스와 함께 구현한 놀라운 비주얼만으로도 만족감이 있고, 비록 전작의 아우라에는 미치기 힘드나 나름의 호흡으로 꽤 그럴 듯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을린 사랑> 이후 정말 오랜만에 드니 빌뇌브의 차기작을 기대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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