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우리 안의 일본 귀신

2019.03.10 17:00

흙파먹어요 조회 수:1542

심심하여, 듀게의 격을 팍팍 떨어뜨리는 휴일의 그로테스크 썰...

1. 처녀귀신

모쏠의 한이 이렇게나 무섭다!
월하에 무덤을 반으로 쩍하니 가르고 나타나 지나가는 보부상이나, 애기들을 홀렸다는 처녀귀신.
순우리말로다가 손각시. 귀신 중의 귀신, 귀신의 대명사, 몸에 싣는 무당을 떨게 한다는 그녀들.
하지만, 처녀귀신의 이미지는 일본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처녀든, 애기든, 할배든 사람이 죽으면 베로 만든 옷을 입히거나,
고인이 입었던 평상복을 겹겹이 입히고 머리를 곱게 빗어 묶어주곤 장신구도 하나 넣어 줍니다.
그래서 멀쩡히 발굴된 무덤은 복식연구자들의 원피스.
흰 소복에 머리를 풀어 길게 늘어뜨리는 것은 일본의 장례풍습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개화기 쯤에 일본에서 폐결핵이 엄청 돌았다는 군요.
입가에 피를 흘리는 창백한 얼굴은 폐결핵으로 죽은 자의 이미지.

2. 도깨비.

설명불필요. 일본의 오니가 현해탄을 건너 정착.
오니는 본래 저승의 지옥에서 죄인들을 괴롭히는 옥졸이었습니다. 나름 공무원.
징이 박힌 방망이는 이를테면 교정직 공무원들이 휴대하는 삼단봉으로,
죄인들을 잡아 뚝배기를... 여튼, 그게 목적입니다.
재밌는 건, 일부 지역에선 지진을 땅속에서 잠자던 오니들이 깨어나느라 몸부림치다 생긴 재해로 봤는데요.
혼란했던 전국시대, 여행자들이나 난민들을 습격하는 야적들의 이미지가 오니화 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오니가 출몰하는 지역에 탑을 세워 제압한다는군요.
한편, 우리의 진짜 도깨비는 윤정수처럼 생겼다고 합니다.
삶은 콩과 막걸리를 주면 복을 가져다 주는데, 도깨비가 가져다 준 복을 받았으면 베풀고 살아야지 욕심을 내면 망하게 한답니다.

3. 빨간 종이와 파란 종이

유서 깊은 일본의 화장실 괴담.
한밤 중에 응가가 마려워 화장실에 가면 불쑥 손 하나가 올라와 엉덩이를 쿡쿡 찌르고 말을 합니다.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현대식 비데를 만든 나라다운 유저 친화적 질문.
일본의 장례 풍습에는 얼굴을 흰 천이나 종이로 덮어두는 게 있는데,
귀신이 제시하는 종이는 얼굴을 뜻하고,
빨간 종이는 피로 범벅이 된 얼굴, 파란 종이는 피가 완전히 빠져나가 파랗게 된 얼굴을 뜻한다고 합니다.
질문은 이미 답이며, 그것은 "너는 이미 죽어 있다"
모범 답안으로는 "엠보싱" 등이 있다고 합니다.

4. 빨간 마스크.

도쿄의 초딩들 사이에서 유행한 이 괴담은 귀신이라기 보다는
한창 DV라는 용어와 함께 사회문제가 된 온갖 폭력을 경계하는 설화.
한 여자가 매일 같이 파칭코를 전전하며 술에 절어 어머니를 괴롭히는 아버지에게 맞고 삽니다.
그날도 돈도 주지 않고 어머니를 때리며 술심부름을 시키는 아버지.
보다 못한 여자가 그를 막아서며, 술 같은 건 사다줄 수 없어요. 라고 말 하자,
아버지는, 좋아, 평생 집밖으로 못 나가도록 해주지.라며 딸의 얼굴을 그어버립니다.
여자는 찢어진 얼굴을 감싸 쥐고 도망을 치는데요.
그 후로 도쿄도의 남자 초딩들 사이에선 이상한 소문이 돕니다.
웬 빨간 마스크를 쓴 아리따운 여자가 나타나 길을 물어보곤, 마스크를 벗은 뒤
내가 예뻐? 라고 물어보는데 그 얼굴이 길게 찢어져 있어,
예쁘다고 말 하면 칼로 얼굴을 난도질 당하며, 조금이라도 찡그리거나 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
너는 이미 죽어있다와, 너는 이미 죽어있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초딩들.
정답은 힘차게 포마드 포마드 포마드라고 외치는 겁니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 소리를 들으면 그녀가 달아난다고 합니다.

5. 날으는 머리

처형장 근처나 산에서 머리가 자율비행을 하며 날아와 여행객이나, 처녀들을 죽인다는 귀신.
그닥 유명하진 않고, 공포스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무사나 스님들에게 쉽게 제압 당하는 쪼랩입니다.
일본은 중죄인을 사형할 때 주로 효수를 하였는데요.
그 머리를 줄에 달아 높이 매달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밤 중에 처형장 근처를 지나다보면 공중에 달린 머리가 바람에 대롱대롱 진자운동 하는 걸 보게 되어 생긴 괴담인 듯.
일단 우리는 그냥 효수 자체를 잘 안 했습니다.
아무리 중죄인이라도 신체를 절단하는 처형은 반란을 일으키는 정도가 아니면 시행하지 않았고,
조선시대로 가면 사형자체가 워낙 센 형벌이어서 왕이 신료들과 직접 논의했을 정돕니다.
다만, 대역죄인은 효수를 했는데, 일본처럼 공중에 매단 게 아니라 삼각대 위에 사람 눈높이쯤 해서 담아놨다고 합니다.

특징.

우리 귀신의 경우 설화에 나타나는 이유는 주로 한을 풀기 위해서입니다.
장화 홍련으로 유명한 아랑 전설에서 귀신들은 원한을 풀기 위해 사또를 찾아 갑니다.
사법, 행정, 예비군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관리를 찾아가 민원을 제기할 뿐, 엄한 사람 잡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이 풀리면 곱게 차려입고 나타나 절을 하고 사라지지요.

반면, 일본 귀신들은 이유가 없습니다.
에로영화에 스토리가 없듯, 이들은 순수한 원념 그 자체로 괴롭히거나, 죽이는 게 존재의 이유.
그래서 일본 귀신이 무섭기로는 전 세계 제일인듯. 당췌 쟤들이 왜 저러는지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 혹시 김민지 괴담 만원권 이야기 아시는 분 계십니까?
제 주변엔 없습니다. 오천원권도 불명확.
제 생각인데, 아마도 괴담의 생산 유통자인 당대 초딩들이 평소 만원권 볼 일이 없어서였던듯.
엄마에게 500원짜리 하나만 융통해내도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던 시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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