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간은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뭘 하면서 살아야 재밌을까? 라고 곰곰히 생각해보곤 해요. 그야 젊고 건강하다면, 기본적인 욕구들을 해소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꽤 즐겁게 보낼 수 있어요. 점심에 일어나서 맛집 가고 오후의 여자를 만나고, 저녁에 맛집 가고, 밤의 여자를 만나고...뭐 그러면서 살면요. 


 어떤 인간이 식욕도 강하고 성욕도 강하다면, 그리고 그가 욕구를 해소해자마자 또다시 욕구가 빠른 주기로 계속해서 리필된다면 인생은 그냥저냥 즐겁게 살 수 있죠. 계속해서 욕구를 해결하면서 살면 되니까요.



 2.하지만 역시 아닌 거예요. 왜냐면 인간은 변덕이 심하거든요. 저런 기본적인 욕구들을 채우다 보면 또다른 욕구에 굶주리게 된단 말이죠. 그야 어떤 욕망은 우월하고 어떤 욕망은 저급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예요. 이건 열탕과 냉탕의 관계와도 비슷해요. 


 변덕이 심한 인간은 열탕에 가서 몸을 담그면 30초동안 기분좋아하다가 30초가 지나면 냉탕을 가고 싶어하거든요. 그리고 냉탕에 가서 몸을 담그면 30초동안 기뻐하다가 다시 열탕으로 떠나고요. 


 그런 종류의 인간은 딱히 뭔가의 목표를 일평생 강하게 쫓는 게 아니예요. 그냥 열탕에 갔다가 열탕이 지겨우면 냉탕으로, 냉탕에 갔다가 냉탕이 지겨워지면 다시 열탕으로. 이걸 반복하며 사는 거지 정말로 뭔가가 하고싶어서 한다...라는 건 없어요. 어떤 일정한 상태가 이어지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계속 롤러코스터에 탄 상태를 원하는 거니까요.


 

 3.그런 사람들은 뭔가...주색잡기에 빠져 살다가 어느날 정신차린 척 하면서 이렇게 지껄이는거죠. '내가 이제부터는 열심히 이야기를 써야겠어.'라고요. 자아 실현의 욕구에 눈을 뜨기라도 한 것처럼요. 하지만 실제로는, 만화 몇 컷을 그리거나 소설 몇 줄을 쓰고 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되어 있죠. 왜냐면 걔네들의 회로는 그렇게 되어버렸거든요. 만화 몇 컷을 그리거나 소설 몇 줄을 쓴 것 만으로도 충분히 열심히 살았다는 기분을 느끼게 되니까요.


 그런 놈들에게 정말로 소설을 쓰거나 만화를 그리도록 만들고 싶다면, 그 놈들의 돈부터 몽땅 빼앗아야만 해요. 그런 종류의 인간들은 오직 돈을 위해서만 창작 노동을 하거든요.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던 것처럼요.


 

 4.휴.



 5.음식도 그래서 매번 테마를 바꿔서 먹어요. 의식적으로 말이죠. 한번 양식을 먹었으면 다음 끼니는 한식. 한식을 먹었으면 다음 끼니는 중식. 중식을 먹었으면 다음 끼니는 일식. 일식을 먹었으면 다음번엔 디저트류. 이런 식으로 빙빙 도는 거죠. 물론 좋아하는 음식은 있지만, 식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이전 끼니에 먹었던 것과 다른 식사를 한다...는 거예요.



 6.전에 썼듯이 사람들간의 관계도 그래요. 미친놈들과 놀고 나면 완벽하게 보통...완벽하게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꽁냥거리고 싶어져요. 소주도 먹고 맥주도 먹고...삼겹살도 먹고. '은성이형 밥좀 사주세요.'라는 말도 듣고. 비어킹에 가서 오뎅탕도 먹고요.


 왜냐면 그렇게 하루 지내고 나면 감사하게 되거든요. 미친놈들이 얼마나 고마운 놈들인지 말예요. 그리고 미친놈들과 하루 지내고 나면? 미치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지 상기하게 되고요. 사실 미친년들이라고 쓰고 싶지만 그건 너무 여혐적인 단어니까, 안 쓰기로 해요. 



 7.여자도 비슷한 거예요. 어둠의 여자를 만났다면 다음 주에는 빛의 여자를 만나고 싶어지는 법이죠. 똑똑함을 드러내는 여자를 만났다면 다음 주에는 똑똑함을 숨기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져요. 사회적인 여자를 만나면 다음 주에는 반사회적인 여자를 만나고 싶어지죠. 낮에 지하로 뚫고 들어가는 듯한 암흑물질 같은 여자를 만나면 밤에는 햇빛을 향하는 해바라기처럼 밝고 올곧은 여자를 만나고 싶어지고요.


 그리고 연락을 먼저 하지 않는 여자를 한번 만나면 다음에는 연락을 먼저 해오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지는 거죠. 나를 꿀빨게 해주고 싶어하는 여자를 한번 만나면 다음엔 내가 꿀빨게 해주고 싶은 여자를 만나게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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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나를 꿀빨게 해주고 싶어하는 여자를 만났다가 내가 꿀빨게 해주고 싶은 여자를 만나고...다시 나를 꿀빨게 해주고 싶어하는 여자가 얼마나 고마운 여자인지 깨닫고 다시 돌아가려고 하면, 내게 잘해주려고 내 주위를 맴돌던 그 여자는 이미 떠나 버렸다는 거지만요. 눈물이 핑 도는 일이지만 뭐 어쩔 수 없죠.


 그러면 한가지는 깨닫게 돼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소외는 나에게 잘해줬던 사람에게 나도 잘해줄 기회를 얻을 수 없게 되는 거란 걸 말이죠. 가장 서운하고 안타까운 일은 준 걸 돌려받지 못하는 게 아니라 받은 걸 돌려주지 못하는 것이라는 걸요. 은혜를 갚고 싶은 상대에게 그럴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소외...따돌림을 겪는 거라는 걸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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