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 소프트는 현대 게임판에서 굉장히 독특한 위치를 잡고 있는 회사입니다. 간단히 말해 킹왕짱 하드코어 엽기 난이도 칼질 액션 게임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내고 그걸로 먹고 살고 있죠. 한동안 다른 회사들은 흉내낼 생각도 못 했었고 요즘엔 나름 아류작들이 이것저것 나오긴 합니다만 완성도 측면에선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니 여전히 프롬의 장르 독재이자 독점 상태는 계속되고 있는 중이구요.

 

중세 환타지 다크소울 시리즈를 거쳐 영국뽕 가득한 블러드본을 내놓은 후 이번에 프롬이 선택한 것은 일뽕 닌자 & 사무라이 액션입니다. 원래는 플스2 시절 악명을 (역시 어려워서) 떨쳤던 천주시리즈의 후속작으로 기획됐으나 만드는 과정에서 걍 하던 거 함 더 하지 뭐라는 방향으로 선회해서 지금의 모양새가 되었다고.

 

뭐 암튼.

 

기본적으론 소울라이크라고 불리는 다크소울시리즈 게임의 일본색 스킨 버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잡졸들까지도 어마무시하게 세서 언제 어디서든 잠시만 방심하면 바로 골로 가는 게임 시스템. 끝없는 사망과 끝없는 재도전으로 캐릭터가 아닌 게이머를 렙업시키는 게임. 기존의 프롬 게임들을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싫어할 수가 없는 게임이죠.

 

다만 아예 새로운 이름을 달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진행되는 게임이니만큼 변경점들이 은근히 많습니다. 특히 (놀랍게도!) 일단 라이트 유저 친화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일단 위에서 언급한 게임들 중 유일무이하게 그냥 봐도 이해가 되는 분명한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주인공의 출신, 성격 그리고 게임 속 목적까지도 정말 단순 명확해서 나름 동기 부여가 됩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디고 난 무엇을 위해 이 곳에 와서 무엇을 하러 전진하는 것인가... 수준이었던 블러드본에 비하면 정말 천지개벽 수준.

 

게임 플레이면에서도 적절한 타이밍에 가드를 해서 발동 시키는 패링의 판정이 아주 관대해졌고 닌자니까 암살이라는 이유로 적병들의 뒤에서 접근하면 어지간한 잡졸들은 다 한방에 삭제할 수 있습니다. 이걸 세이브 포인트 휴식 시스템과 연결하면 레벨 노가다도 아주 쾌적하게 할 수 있지요.

 

회복약은 (한 번 죽거나 휴식하고 나면) 무려 공짜 무한 리필이 되구요. 전작들에 비해 세이브 포인트들을 아주 적절하게 (거의 다 보스 코앞.) 놓아 줘서 사망의 부담감도 덜해요. 체력과 별도로 돌아가는 체간(그냥 스턴 게이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시스템의 도입으로 굳이 보스들 체력을 다 깎지 않아도 이길 수 있도록 해 놓은 것도 조금 게임에 익숙해지고 나면 되게 쾌적하게 진행할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입니다.

 

심지어 게임 스타트 지점 부근에 스킬 연습장까지 만들어줘서 패링, 회피, 간파 같은 필수 스킬들을 원하는 만큼 연습해볼 수도 있게 해줬어요. ‘엿듣기같은 기능을 통해 좀 빡센 보스전 직전에 공략 힌트를 던져 주기도 하구요.

 

이렇게 여러모로 초심자들에게 친절한 프롬게임이에요. 예전 프롬 게임들을 시작했을 때 같은 막막함은 별로 느끼질 못 했습니다.

 

근데 그 와중에 또 오히려 빡세진 부분들이 함께 존재합니다.

 

적들의 공격이 평타, 하단, 찌르기, 잡기의 네 가지가 존재하고 각각 대처법이 다르다는 게 대표적이죠. 평타는 타이밍 맞춰 가드, 하단은 점프, 찌르기는 회피, 잡기는 그냥 아예 도망(...)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당연히 다 배정 버튼이 다르고 버튼 누르는 타이밍도 적마다 조금씩 달라서 처음엔 적응하느라 되게 힘들어요. 난이도를 최대로 높여 놓고 cpu 상대로 대전 격투 게임 하는 기분.

그리고 긴급 회피로 쓰이는 대시가 거리도 짧고 연속 사용이 미묘한 딜레이가 있는 데다가 무적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이전 프롬 게임들 하던 감각과 전혀 다른 것도 적응이 피곤하구요.

또 보스 or 보스급 몹이 너무 많아요. 이 게임의 보스들은 대부분이 일격에 사망 직전까지 몰아가는 (물론 직전이 아니라 그냥 사망하는 경우도 많지요) 기술들을 갖고 있고 워낙 움직임들이 정신이 없어서 가드, 패링 타이밍 잡으려면 대부분 몇 번씩은 죽어봐야 하거든요. 근데 그런 보스들이 나오고 또 나오고 다시 나오고 하니 한 번 막히면 스트레스가 빗물처럼 쏟아집니다.

 

물론 프롬 게임들이 다 그렇듯 그런 개고생을 극복하고 나면 성취감과 같잖은(...) 자부심 같은 게 좀 솟아나긴 하지만. 뭔가 예전 게임들에 비해서도 난이도가 좀 불합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하지만 뭐...

평소의 프롬 게임답게 미술 디자인은 기가 막히게 잘 되어 있어서 일뽕 스타일 싫어하는 저인데도 게임하는 내내 눈은 즐거웠구요. 아이템과 장비, 스킬들을 많이 준비해둬서 적에 따라 골라 써보는 재미 같은 것도 좋았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쌩뚱맞은 퀘스트들을 아무 힌트 없이 수행하다 보면 그게 이거랑 연결되고 이게 저거랑 연결되면서 큰 그림이 완성되는 식의 서브퀘스트 구성도 여전히 발견의 재미 같은 게 있었고. 마지막으로 이걸 어떻게 깨라고!!!’ 싶은 적들에게 죽고 또 죽으면서 결국 파훼법을 찾아내는 평소 프롬 게임의 재미도 충분히 살아 있어서 욕하고 또 욕하면서도 결국 80시간여만에 엔딩은 보고야 말았네요.

 

다만 개인적으론 게임 시스템은 물론 시각적 면에서도 영국&호러뽕이 가득했던 블러드본이 훨씬 재밌었던 게임으로 남았습니다. 엔딩 내용을 보면 언젠가 속편이 나올 가능성이 높겠다 싶은데, 아마 그건 구입 안 할 것 같아요. ㅋㅋㅋ

 

 

+ 프롬 게임들 중에서도 유난히 적들을 상대하는 꼼수들이 많이 등장하는 편입니다. 프롬 게임들은 정말 여러 의미에서 80년대 오락실 게임 같은 느낌이 있어요.

 

++ 이 게임 즐기는 사람들의 대화를 보면 유난히 나이 한탄이 많습니다. 저도 격투 게임이나 프롬 게임들 하다 보면 늘 느끼는데 확실히 나이를 먹으면 동체시력, 반사신경은 물론 판단 속도까지 떨어져서 게임 실력이...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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