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체적 스포일러는 없지만 대략의 이야기 흐름이나 분위기 정도는 예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넷플릭스에 돈을 갖다 바치기 시작한지 이제 대략 1년쯤 된 것 같은데요.

뭐 다들 아시다시피 넷플릭스가 자체 컨텐츠 제작에 되게 투자를 하고 있고 그 와중에 수작들도 여럿 배출하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넷플릭스 자체 컨텐츠의 주력은 폭력과 섹스입니다. 그동안 지켜본 제 개인적인 결론이 그래요(...)

만화가들에게 제대로 된 수익 플랫폼을 제공한다고 칭찬받았던 레진 코믹스의 실제 주수입원이 야한 만화였던 거랑 좀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뭐 다짜고짜 그냥 야하고 잔인한 것만 들이붇는 건 아니고, 각잡고 감상해 보면 야함과 잔인함을 살짝 토핑한 멀쩡 무난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암튼 뭐.



그런 맥락에서 이 '데빌맨: 크라이 베이비'의 기획은 꽤 칭찬할만하다 하겠습니다.

일단 전설의 레전드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 리메이크 기획이니 인지도 면에서 먹고 들어가고.

또 그 원작이 검증된 작품성에 덧붙여서 시대를 초월한(?) 야함과 잔인함으로 유명한 물건이란 말이죠.

게다가 원작이 몇 권 안 되는 작은 분량의 작품이어서 한 시즌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기까지.

그야말로 모범적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ㅋㅋㅋ



암튼 뭐.


일단 이 애니의 장점부터 말하자면 나름 원작에 충실한 각색입니다.

21세기 현대 일본 고딩 라이프에 맞추기 위해 이것저것 추가된 게 많긴 하지만 원작의 유명한 장면들은 대부분 그대로 나와요.

특히 중요한 전투씬들 같은 경우엔 원작 코믹스의 배치나 그림체까지 그대로 살려서 연출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디테일들이 많이 바뀌고 추가되긴 했어도 기둥 줄거리는 거의 그대로구요.

이미 40년을 넘어 50주년을 향해 가는 작품이지만 에반게리온, 기생수 같은 당대의 화제작들에게 영향을 끼친 오리지널의 포스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시절에 이런 만화를 그려낸 나가이 고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ㅋㅋ


그리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답게 저예산 티가 풀풀 나서 심할 때는 중소 기업에서 만든 플래시 애니메이션 느낌이 날 때도 있지만 또 나름 힘줘서 연출한 부분들의 작화는 꽤 준수한 편입니다. 예산의 한정 속에서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면서 나름 고민한 티가 나요.


음악도 뭐 그럭저럭 (중간중간 들어가는 극중 인물들의 랩이 종종 깨긴 하지만;) 분위기를 잘 살려주는 편이구요.


아마도 원작 코믹스를 안 읽어봤고 앞으로 읽을 생각이 없는, 그런데 습관적으로 넷플릭스를 켜고 뭔가 자극적인 볼거리를 찾아 헤매는 분들에겐 나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어쨌든 원작의 아우라는 남아 있거든요.



좋게 평할 수 있을 부분은 딱 이 정도까지이고. 그 외의 나머지는 대체로... 흠...;;



일단 '원작 팬의 입장에선' 원작의 이야기를 21세기 버전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추가된 거의 모든 부분들이 다 구립니다.

주인공 여자친구에게 굳이 그라비아 일을 시키는 설정부터가 사족이구요.

육상부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주제를 도입하며 원작과는 다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뭐 나름 감수성 충만한 분들에겐 좋을 수도 있겠으나 전 역시 별로였습니다.

추가된 캐릭터들은 대체로 그냥 야한 장면 한 번 더 넣는 데 쓰이고 버려지거나, 아님 의도대로 잘 쓰이긴 하는데 그 결과물이 신통치 않거나 그래요.

간단히 말해서 이 물건의 막판에는 원작에는 없는 감수성 터지는 감동 코드가 꽃을 피우는데... 그게 넘나 전형적인 21세기 일본 애니들 스타일이라 원작의 거친 에너지를 상당히 깎아 먹습니다. 원작에 비교적 충실한 결말과도 좀 어색하게 연결되는 느낌이구요.

원작에서 영향을 받아 나온 물건인 '기생수'의 영향을 받아 들어간 듯한 장면이 종종 있는데 별 쓸모도 없으면서 분위기만 깎아 먹습니다.

결정적으로 주인공의 안티 테제인 모 캐릭터의 묘사가... 원작의 '그냥 그런 셈치자!'라는 식의 묘사를 빈칸 채우기 하면서 보완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결과적으로 캐릭터의 매력을 많이 깎아 먹습니다.


애초에 그래서 거칠거칠한 만듦새가 매력인 물건을 리메이크하면서 매끈하게 다듬어낼 생각 같은 건 안 하는 게 좋아요.

어찌보면 원작자보다 더 품을 많이 팔아 놓고도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ㅋㅋ


그리고 위에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작화가 '기본적으로' 구립니다.

디테일이란 게 거의 보이지 않는 그림들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전체 런닝타임의 거의 절반은 되는 느낌이고 기본적인 신체 비례조차 건사 못 하는 장면이 참 많아요.

그래도 내용상 가장 큰 스케일, 화려한 연출로 도배되는 마지막화의 작화는 대체로 준수했습니다만. 1, 2화정도 보는 도중에는 몇 번이나 그만 둬버릴까... 하는 마음이.



뭐 이쯤에서 정리하자면.


원작을 안 보신 분들, 혹은 봤지만 싫어하는 분들이라면 제가 단점이라고 지적한 내용들에 전혀 공감 못 하시면서 재밌게 보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장된 잔혹함과 야하다 못해 좀 더러운(...) 느낌까지 드는 야한 장면들에 거부감이 없으시다면 한 번 시도해보실만도 합니다.

저 같은 원작팬에겐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름 원작의 결말 장면까지 열심히 재현해 놓았다는 기특함에서 또 보지 말고 그냥 넘기시라고 이야기하기는 애매한 물건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뭐, 관심 가시면 한 번 시험삼아 한 두 회 보시고 각자 결정하시면 되겠다... 는 무책임한 결론입니다. ㅋㅋㅋ

어차피 넷플릭스 구독 중이시라면 추가로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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