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드러머 걸 by 박찬욱

2019.05.05 16:52

Sonny 조회 수:1368

스포있어용... 스포 아주 크게 있어용...

매우 아름다운 드라마였습니다. 저는 아름답게 꾸미는 것, 미술이나 패션에 좀 끌리는 게 있어요. 그리고 박찬욱의 작품을 볼 때마다 김지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때깔에 환장한 느낌을 받는데, 이번 작품은 박찬욱의 그런 탐미적인 느낌이 티비라는 매체의 잠재적 소비자를 향해서 있는 힘껏 발휘된 모양새였습니다. 정말정말 팬시한 느낌이랄까요. <리틀 드러머 걸>의 미쟝센에 대해서는 아무도 딴지를 걸지 못할 것입니다. 과하면 과했지 심심하진 않으니까요.... (특히 그리스의 그 신전...!! 파르테논이 맞는지 깅가밍가)

다만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은 들었습니다. 찰리는 모든 여정을 마치고 칼릴의 조직도 완전히 쑥대밭을 만든 다음에 여유롭게 휴양을 즐깁니다. 마지막에는 작전 때 보고 못봤던 가디와 재회하면서 드라마가 끝이 나죠. 찰리와 가디, 두 사람의 연애가 재회로 완성됩니다. 두 사람은 이제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살아갈 겁니다.

그런데, 이 엔딩부터 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잠깐 끼었던 투어리스트가 되어버립니다. 드라마 후반부로 가면 찰리는 본인의 선택으로 칼릴의 본거지에 가서 훈련을 받고 사상개조도 받고 팔레스타인 기지의 실상과 필요악으로서의 폭력도 이해를 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그가 종국에 하는 것은 칼릴의 암살입니다. 이 부분에서 드라마의 설명이 조금 생략된 것 같아서 의아했어요. 찰리가 일방적으로 유대인을 편드는 선택을 한 것인데도 거기에 대해서 본인은 어떤 성찰이나 책임감도 없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물론 찰리 본인은 이후 칼릴의 본거지부터 모든 조직원들이 살해되는 정황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주도한 칼릴암살작전에서 칼릴은 아주 잔인하게 살해당합니다. 찰리도 그걸 원한 건 아니었기에 계속 갈등했구요. (재미있게도 여기서 칼릴의 신사다움과 가디의 비열함이 대조되기도 합니다) 칼릴이 배신감을 느끼고 왜 그랬냐고 찰리의 정체와 동기를 물을 때 찰리는 정말로 공허한 대답을 합니다. "전 배우니까요..." 이것은 대답이 아닙니다. 사람은 아무 동기도 없이 선택을 하지 않고 찰리는 그 쌩고생을 하면서까지 본인의 가치관과 대립하는 두 세계를 이해하려고 했으니까요. 가디의 몸에 난 상처를 통해, 칼릴의 몸에 난 상처를 통해 찰리는 두 세계의 상처를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칼릴의 암살은 실질적으로 찰리의 선택이며 그는 자신의 가치관을 대답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못했어요.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의아했습니다. 그렇게나 레디컬하고 뭔가를 하려했던 인물이, 정작 그 중요한 순간에서는 어떤 도덕적 논리도 펼치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우라서 이 일을 했다면, 배우로서의 어떤 가치관이나 배우이자 또 다른 정체성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이 있지 않았을까요? 저는 칼릴이 물어봤을 때 찰리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어느 쪽이 옳은지는 결정할 수 없으니 영국인으로서 내가 사는 주변사람들을 지키고 싶을 뿐이라는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대답을 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배우라서... 이것은 정확한 대답은 아닌 것처럼 보여요.

휴양지에서 마티가 찰리와 아직도 연쇄되는 팔레스타인의 테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찰리는 악수를 청하는 마티를 경멸하죠. 그렇지만 저는 여기서 다시 한번 의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도, 그 어느 쪽도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지지하지 못했단 찰리가 어느 누구를 경멸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보면 그 연쇄의 고리는 찰리가 제공한 것도 있을텐데? 그리고 가디를 만나 총총... 두 세계를 탐색하고 질문은 했지만 대답까지는 얻어내지 못한 결론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죄책감의 표현이나 마티를 아주 자신있게 경멸하지만 않았다면 찰리와 가디의 이후 로맨스가 조금은 더 공평하게 보였을 것 같아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398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10698
109825 오늘의 일본 만화잡지(8)(스압) [1] 파워오브스누피커피 2019.08.02 203
109824 요즘분들 [6] singlefacer 2019.08.02 869
109823 휴가철 이에요 [2] N.D. 2019.08.02 367
109822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드디어 100번째! [14] 샌드맨 2019.08.01 374
109821 "사자"를 보고 [1] 라인하르트012 2019.08.01 830
109820 이런저런 일기...(테트리스, 책임) [2] 안유미 2019.08.01 439
109819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1] 메피스토 2019.07.31 460
109818 엑시트를 보고(스포없음) [9] 연등 2019.07.31 1219
109817 [드라마바낭] 필립 K 딕의 '일렉트릭 드림즈'를 다 봤습니다 [8] 로이배티 2019.07.31 1322
109816 제목 없음 (정하기 매번 싫었음) [10] 어디로갈까 2019.07.31 862
109815 지구멸망 10가지 상황 중 3번째 악당 떠돌이별과의 조우 [1] 가끔영화 2019.07.30 480
109814 [회사바낭] 불사조... [3] 가라 2019.07.30 1468
109813 넷플릭스 '액션 피겨 2' [4] 샌드맨 2019.07.30 768
109812 [드라마바낭] 드디어 '멋진 징조들(Good Omens)'을 봤습니다 [13] 로이배티 2019.07.29 1178
109811 이런저런 일기...(도발과 음주, 운동) [1] 안유미 2019.07.29 611
109810 있지(ITZY) - ICY 뮤비 [11] 연등 2019.07.29 1026
109809 갈수록 미치겠습니다..."왓쳐" [1] 라인하르트012 2019.07.28 1158
109808 아마존 비디오에서 나온 더 보이즈 1시즌을 보고 [1] 라인하르트012 2019.07.28 504
109807 [바낭]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뭐 이런가요. ㅋㅋ [4] 로이배티 2019.07.28 1379
109806 [KBS1 특선 다큐] 프리 솔로 [4] underground 2019.07.27 82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