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넷플릭스 최신 업데이트에 3년 묵은 국산 호러 영화 '해빙'이 올라온 걸 보고 예전에 좀 궁금했던 영화였다는 게 생각나서 그냥 한 번 틀어봤습니다만. 뭐 불운했던 명작까진 아니고 충분히 시간 죽일만큼 재밌는 영화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 기본 설정이 아주 매력적이고 그래서 도입부가 아주 그럴싸합니다. 신도시인지 뉴타운인지 암튼 아파트촌이 들어서고 있는 칙칙한 동네의 겨울 풍경을 비춰주다가 한강물의 얼음이 녹으면서 몸통만 남은 시체를 보여줍니다. 그러고나선 강남에서 병원을 하다가 다 말아 먹고 아내에겐 이혼 당한 채로 이 동네 정육점 3층 원룸에 혼자 살면서 지인이 하는 병원에서 내시경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의 일상을 비춰주는데, 수면 내시경을 받으면서 약에 취한 정육점 신구 할배가 사람 죽이고 시체 처리 하는 요령에 대해 중얼거리는 걸 듣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 동네엔 15년 전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살해당한 미해결 사건이 있었단 말입니다...



- 비록 주인공이 추리소설 덕후로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이야기가 아마추어 탐정의 모험담으로 흐르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엔 주인공은 너무 심약하고 겁이 많아요. 게다가 세상 살 날 얼마 안 남은 할배가 약에 취해 중얼거린 얘기로 경찰서에 달려가기도 좀 그렇구요. 그냥 주인공은 바싹 쫄아버린 상태로 정육점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고 다니는데 당연히도 이 사람들은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고. 주인공은 점점 겁에 질리는 가운데 반복해서 꿈인지 현실인지 불분명한 악몽을 꾸고 그 와중에 이혼한 아내, 병원 간호조무사, 그리고 그 집 식구들과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히면서 멘탈이 무너져내립니다.


 이렇게 주인공의 멘탈 붕괴를 실시간으로 구경하는 게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영화라서 살짝 늘어지는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계속해서 소소하게 무슨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지루한 느낌까진 들지 않았구요. 또 그렇게 꿈, 환상 그리고 착각만 헤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장르물로서 할 일은 성실하게 다 해주고 결말도 깔끔한 설명과 함께 제시되구요.


 도입부의 매력에 비해 이야기의 힘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팔딱팔딱 힘이 넘치는 한국 스릴러 영화들 대부분에 비해 이야기의 무리수나 구멍은 오히려 적은 편이고. 자극을 위한 억지 액션 같은 것도 없어서 깔끔한 느낌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뭐 대단한 신선함이나 완벽한 완성도 같은 걸 기대하지만 않으면 꽤 괜찮아요.



- 하지만 흥행이 안 된 이유는 알 것도 같더라구요. 위에서도 말 했듯이 전반적으로 자극이 약하면서 중반부의 전개는 살짝 과하게 느긋한 감이 있구요.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상도 뭐 깔끔하긴 해도 그렇게 깔끔한 만큼 사람들 입으로 회자될만큼 재밌는 것은 아닙니다. 초반 30분 정도 보고 나면 딱 떠오르는 1, 2, 3번 결말들 중 하나... 라는 정도?



- 암튼 뭐 그렇게 큰 기대 없이 느긋하고 편안하게(??) 감상할만한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어떻게든 튀려고 몸부림치느라 숱한 무리수 전개와 억지 반전, 쓸 데 없이 많은 피바다가 펼쳐지는 가운데 주인공들이 내내 눈을 부릅뜨고 고함지르는 것만 보여주는 류의 스릴러 영화 말고 좀 다른 분위기의 스릴러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아주 소심하게 추천해요. 정말 큰 기대는 마시구요. ㅋㅋㅋ



- 윤세아가 스토리상 비중은 크지만 분량은 짧은 역할로, 이청아가 비중은 적지 않으면서 분량도 꽤 많은 역할로 등장합니다. 근데 생각해보니 전 이 분들 출연작을 본 게 없어서 거의 처음 보는 거나 마찬가지더라구요. 연기 경력이 꽤 길고 출연작도 많은 분들인데 그 출연작들이 그 오랜 세월 동안 거의 완벽하게 제 취향을 비껴가고 있었던 거죠. 좀 신기했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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