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자의 목을 베라!

2017.05.21 22:23

Bigcat 조회 수:4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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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의 프랑스 혁명 이미지입니다. 저는 원래 게임을 안하기 때문에 이 이미지는 제가 혁명사 강의 때 사용하려고 스킵해 두었었죠. 컴퓨터의 작은 화면으로 보면 그냥 섬뜩한 정도인데 PPT로 만들어서 크게 띄우면 진짜...대박입니다. 제가 강연 때 이 이미지를 띄우면 다들 비명을...-_-;;


여하간 대혁명 당시 혁명정부는 인권선언에 따라 고문과 신체형을 모두 폐지하고 모든 남녀시민에게 참수형을 당할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이건 따져보면 로마법에서부터 기원하는 겁니다. 고대 로마 제국에서는 시민권을 가진 자에 한하여 고문을 당하지 않을 권리와 사형 집행시 참수형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는데 그 동안 이런 특권....은 유럽에서는 오직 '귀족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거든요. 






최진기 전쟁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언젠가 최진기 선생의 <혁명사> 강의를 듣는데 예의 그 공포정치와 길로틴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길로틴하면 꼭 따라오는 얘기가 있죠. '국민의 면도칼' '자비로운 죽음'...그런데 최진기 선생은 그런 설명들이 좀 짜증이 났었던지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우리가 그걸 인권적이라고 말할 군번인가...에이~그건 아니지..." 대충 이런 얘기였던것 같은데 순간 이 양반이 길로틴이 누구에게나 평등한 죽음 어쩌구 하는 해설에 좀 부정적인 입장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최진기 전쟁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사실 21세기의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바로 2백 몇십년전의 전통사회의 사형집행이나 기타 이런 저런 형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안닿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그런 신체에 가해지는 가혹한 형벌이 없어진지는 - 특히 여기 동아시아에서는 - 수 십년에 불과하다는 걸 상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능지처참같은 형벌도 19세기 말까지 집행이 됐었고(고종의 영남만인소 주동자 처형, 1881년) 시신이나마 김옥균의 사체도 사지절단해서 종로 한 가운데 걸어둔 적(1894년)이 있었으니까...이런 형벌이 사라진지 진짜 얼마 안됐었네요.



일단 참수형은 일본은 태평양전쟁 때까지(1945년) 중국은 국공내전 때까지(1949년) 우리는 한국전쟁까지...(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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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두대로 향하는 루이 16세, 찰스 베나제크, 1793년, 캔버스에 유채, 베르사이유 박물관 소장





언젠가 모게시판에서 대혁명 당시 길로틴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이런 얘기가 나왔었죠.....맙소사...어디 상상들이나 되나요? 내가 만약에 저 길로틴 위를 오른다면 말입니다. 세상에...저 계단을 오를 수나 있을까요?...난 절대로 못 올라갈것 같은데...저두요...그냥 기절해 버릴 듯...이런 저런 얘기들이 오가는 것을 보니 문득 호기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자료들을 뒤적여 보았죠. 사실 저 계단을 제 발로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대혁명 때 자료들을 보면 혁명가들도 형리가 다 끌고 올라가던데 말입니다. 그런데 저 계단을 제발로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귀족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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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자들은 서양의 귀족들의 삶을 '연극적인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격식에 맞춰 살았고 언제나 서로 보여주기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죠. 바로 자신들의 신분적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는데, 언제나 화려하게 꾸며서 타인에게 '나는 너희와는 다르다'라는 걸 항상 각인시켰다는 겁니다. 여기서 '너희'란 다른 신분의 사람들 - 바로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이에 관련해서 프랑스의 르네상스 군주(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후원자로 유명한) 프랑수아 1세(1494~1547)는 대단한 명언을 남겼죠. ....귀족들이여, 최대한 화려하게 꾸미고 아름다운 옷과 번쩍이는 보석으로 치장하고 백성들에게 그대의 모습을 보여주길! 그대들의 그 화려한 옷과 번쩍이는 보석은 모두 저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마련한 것이니까! 그러니 최대한 아름답고 근사하게 꾸며서 그들에게 세금낸 보람을 느끼게 해 줘!




......-_-;;.........





elizabeth 1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여러분 세금낸 보람이 느껴지시는지...?




제가 강연 중 이 일화 얘기하면 다들 웃고 난리.....진짜 어이없는 소리긴 한데 이런 이야기가 나온 배경을 좀 이해해야 16세기~18세기 유럽 궁정의 분위기를 좀 이해할 수 있을듯 합니다. 이건 뭔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이야기와도 통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때와 장소에 맞는 격식와 예를 엄격히 준수할 것을 언제나 강조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신분제 사회의 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다양한 방편 중에 이 '예의와 격식' 또한 주요한 기제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때 제 교수님 중 한 분은 이런 얘길 하셨죠. "...한국에서 젤 예의범절 따지는 동네가 있지. 바로 조폭들..."-_-;;흔히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저 사람은 진짜 품위가 있어. 저 귀티가 흐르는 아이 좀 봐! 그러니까 바로 이 소리를 듣고 싶어서 서양의 귀족들은 진짜 화려하게 꾸미고 다녔던겁니다. 학자들 표현을 빌리면 무슨 사람이 '걸어다니는 보석함'같았다고....그리고 그 보석함에 걸맞는 표정과 제스추어를 장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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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 대례복을 입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 작자 미상, 템페라에 유채, 런던 국립 초상화 박물관 소장





대관식 당시의 엘리자베스 1세의 모습입니다. 25세 젊은 여인의 생기발랄함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즉위 당시 여왕이 얼마나 기쁨에 차 있었는지 아주 눈빛에서 생생하군요. 초상화가 저 정도인걸 보니 대관식 장에서는 표정 관리하기도 힘들었을... (긴 머리를 풀어서 늘어뜨렸는데 이건 아직 여왕이 미혼이라는 표시입니다. 초상화 볼 때마다 저 머리카락이 무슨 라푼젤도 아니고 좀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영화에서도 영~ 어색하기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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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리자베스, 2002년>의 한 장면, 메리 1세와 공주 시절의 엘리자베스 1세





각설하고....그런데 그런 특권 - 참수형 - 도 정작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여튼 이와 관련해서 엘리자베스 1세에게는 좀 아득한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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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의 젊은 나이에 나라의 최고 지위에 올랐으니 마냥 얼마나 기뻤겠습니까만은...문득 그녀에게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상기시켜 주는 존재들이 눈이 띄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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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프랑스의 대사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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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사들, 한스 홀바인, 템페라에 유채, 1533년, 206*209,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1558년 즉위식 당시의 프랑스의 대사들은 아니고...훨씬 이전 여왕이 태어나기 전의 신성로마제국 - 합스부르크 제국의 대사들 초상화를 대신 가져와봤습니다. 이 당시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 외에도 스페인까지 차지하여 명실공히 유럽의 중심세력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었는데, 이 대사들은 칼 5세의 신하들로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를 해결하러 - 그러니까 왕이 이혼 못하게 하려고 - 여기 영국 땅에 와있던 참이었습니다. 헨리 8세의 첫번째 왕비 캐서린 - 아라곤의 카타리나는 카를 5세의 이모였거든요. 착한 조카가 이모를 도와주러 - 그 보다는 바다 밖의 동맹세력 하나가 이탈하는걸 방지하려고 - 보낸 사자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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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튼 그 프랑스 대사들을 보자 여왕은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 공주 시절에 자신이 겪었던 악몽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바로 런던탑에서의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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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복왕 윌리엄이 1066년에 지은 이 성은 원래 요새 기능을 가진 왕실의 별궁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국사범을 투옥하고 처형하는 무시무시한 건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깨는 건 건물 용도가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원래 왕실의 별궁이었다는 기능이 여전히 남아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관례에 따라 영국의 왕들은 대관식을 치르기 전에 여기서 머무르면서 대관식 준비를 해야 했고...









File:Tower of london.jpg

그런데 참 딱한 것이 관례가 이러니 여왕 역시 여기 런던탑에 머무르면서 대관식 준비를 해야 했던 겁니다....그런데 여왕의 공주 시절에 있었던 일을 상기해 보면 여길 대체 어떻게! 다시 올 수 있을까 싶습니다. 여왕은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씩이나 런던탑에 투옥된 전력이 있었거든요. 그것도 두 번 다 반역죄...유죄가 확정되면 짤없이 목이...여튼 여왕은 꼭 대관식 준비를 여기서 해야 하느냐...난 정말 거기 두 번 다시 가기 싫다...고 투덜대다가...그래도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관례를 무시할 수가 없어서(왕권에 대역하는 국사범을 다스리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건물이라 꼭 여기서 대관식 준비를 해야 했죠) 꾹 참고 할 수 없이 며칠 머무르면서 의전 연습을 해야했죠. 물론 임금이 된 이후에는 서거할 때까지 이 건물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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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탑의 반역자의 문. 지금은 이렇게 물이 빠져있는데 당시 기록들을 보니 배를 타고 수형자들을 싣고 건넜더군요. 여기 다녀오신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으시으시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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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짤로만 봐도 으시시...여튼 여왕은 의붓 외삼촌(토머스 시모어 경)이 저질렀던 반역사건 때 열 서너살의 나이로 조사받으러 여기 온 이래로 스무 살 성인이 된 해에 또 투옥이 된 적이 있습니다.(1554년 토머스 와어어트의 난 ) 당시는 메리 1세의 집권이 막 시작된 참이었고 메리 여왕의 카톨릭 회귀 정책과 영국내의 신교도 세력이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었죠. 그러다 보니 엘리자베스 공주는 본의 아니게 신교도들이 미는 중심세력이 되어있었는데,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일부 과격한 신교도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로 무장봉기하는 일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나...하고 노심초사 하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그녀는 프랑스 측에 서신을 보냅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도저히 영국 땅에 있지 못하겠다. 프랑스로 망명을 가고 싶은데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프랑스는 단칼에 거절합니다. 영국 땅을 떠나면 여왕이 될 수 없으니 그냥 상황을 관망하면서 있으라고요...아니 엘리자베스의 조부 헨리 7세 때는 리치먼드 백작(왕위에 오르기 전의 헨리 7세 작위 명)이 내전(장미전쟁)에서 밀릴 때마다 받아주던 프랑스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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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ss Elizabeth brought as a prisoner to the Tower of London, 1554 (1840)



여튼 프랑스가 이렇게 무정하게 군 직후 엘리자베스의 우려대로 신교도의 무장 봉기가 터졌고 그들은 왕위 계승권을 가진 신교도 공주들 - 제인 그레이나 엘리자베스 튜더를 새 임금으로 옹립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덕분에 엘리자베스도 이렇게 체포되어 런던탑으로 압송되었죠. 반역자 문앞의 엘리자베스 공주의 모습입니다. 저 문을 통과하려는 찰나 공주는 순간 자제심을 잃었던지 계단에 앉아 배를 타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절대로 못가!!!! 별안간 공주가 바닥에 앉아 고집을 부리자 관리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평소 같으면 그냥 죄수라서 끌고 들어가면 그만인데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 봉기가 아직 진압이 안되고 있었거든요 - 솔직히 누가 영국의 여왕이 될지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내일이라도 신교도 봉기군이 들이닥친다면 이 여인이 이나라의 임금이 될 수도 있는데...이런 저런 눈치를 보느라 관리들이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자 공주는 그냥 버티기 작전으로 들어갑니다. 사실 이건 뭐 작전이랄것도 없고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죠. 여튼 이렇게 버티다가 결국은 끌려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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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제인 그레이는 별 저항없이 반역자 게이트를 지났습니다. 이 열여섯 소녀는 죽음 앞에서도 다른 이들을 감탄하게 할 정도의 자제력을 보여주었죠.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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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nmer entering the Tower of London by the Traitors Gate


 메리 여왕 시기 신교도 탄압에 희생된 성직자들 중 가장 대표적 인물이죠. 크랜머 대주교. 좀 과장되긴 했겠지만 <순교자 열전>에 의하면 이 양반이 화형에 처해질 때 무려 2시간이 걸렸....그 때 런던에 비가 왔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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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앤 볼린이 압송되는 모습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앤은 극단적인 심리 상태를 보였습니다. 기가 막힌 듯 킬킬 웃다가 참혹한 농담도 하다가( 런던탑에 있는 목없는 유령들 중에 자기도 끼게 생겼다고...) 갑자기 대성통곡 하면서 신과 어머니를 부르고....갑자기 죽음에 닥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인듯 합니다.






Anne Boley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미드 <레인>의 한 장면. 기록에 의하면 앤 볼린은 5월 2일에 체포되어 런던탑으로 보내졌는데 이후 재판을 거쳐 형이 확정되고 집행되는 데까지 겨우 2주 밖에 안걸렸...(1536년 5월 19일) 아마도 당시 영국 인들은 궁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을 거라는 생각이듭니다. 요즘 같은 세상도 아니고 저 시절에 2주라는 시간은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죠. 어어..하다가 왕비님 목이...여튼 이건 정말 사법 살인....





당시 여왕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프랑스 대사를 불러 차를 마시면서 이 시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무래도 예전에 프랑스가 자신의 망명신청을 거절했던 일이 생각이 나서 순간 빡쳤던듯...) 런던탑에 갇혀 있는 내내 어머니 생각이 났다...게다가 얼마 전에 제인 그레이도 처형이 됐었는데 그 다음 순서는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나절에는 탑 안에서 산책할 수 있도록 허용되서 뜰 한 쪽을 나다닐 수 있었는데...제인 그레이가 죽은지 며칠이 지났건만 그 애가 죽은 단두대를 치우지 않고 있더라...순간 언니가 돈을 아끼려고 저 단두대를 재활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얘기들을 막 늘어놓는 외국의 국가 원수 앞에서 당시 대사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해지더군요. 그런데 더 결정적인 건 그 다음 얘기였습니다.


...나는 당시 신께 간곡히 기도를 드렸다...부디 내가 죽을 때는 어머니처럼 대검으로 죽게 해 달라고...도끼는...엇나가는 일이 많아서...



살아서 나가는건 이미 포기했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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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DELAROCHE - Ejecución de Lady Jane Grey (National Gallery de Londres, 1834


 프랑스의 화가 폴 들라로슈가 그린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입니다. 이 시기 가장 대표적인 역사화 중의 하나죠. 1830년부터 시작된 루이 필리프의 입헌 군주정 체제에 부응하기 위해 이 당시 프랑스 미술계에서는 영국 열풍이 불었었는데, 바로 영국사를 소재로 근사한 역사화를 그리는 것이 유행이었죠. 당시 7월 혁명으로 집권한 루이 필리프는 무너진 부르봉 복고 왕정 대신 영국식 입헌 군주정을 모델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해서 끌고 나가고 있었습니다. 왕당파였던 폴 들라로슈는 나폴레옹을 까기 위해...살찌고 초라한 황제가 우울하게 있는 일련의 역사화들을 그리는 한편(흔히들 알프스를 넘는 다비드의 나폴레옹 그림과 비교하면서 다비드 작품은 역사를 왜곡하는 거고 들라로슈 작품은 사실에 충실하다고 평하는데...그런거 아닙니다. 그건 나폴레옹 까려고 그린 정치화에요...애초에 의도가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영웅적인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엄숙하고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왕비의 모습이 담긴 연작 판화를 남기기도 했고 영국사 관련해서는 삼촌에게 살해된 에드워드 5세, 청교도 혁명으로 처형된 찰스 1세 그리고 여기 보이는 제인 그레이의 마지막 모습을 그리기도 했죠.




각설하고....과장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여왕 말대로 단두대와 도끼가...정말 걱정됩니다.....저게 잘 맞을려나....?







Catherine Howard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제인 그레이의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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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탑 박물관에 전시된 당시 단두대입니다. 세상에...여왕이 정말 걱정할 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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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그레이를 비롯 캐서린 하워드, 토머스 크롬웰 그리고 후대에는 찰스 1세까지....이런 형태의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크롬웰 목을 벨 때는 헨리 왕이 일부러 형리를 초짜로 바꿨죠. 앤 볼린 죽일 때는 프랑스에서 형리를 데려오기까지 하더니...(참 별 걸 다 신경쓰는 미친....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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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처형 장면, 19세기 후대에 그려진 역사화입니다. 여기서도 저 도끼가 정말 신경 쓰이...기록에 의하면 메리 스튜어트의 목을 베는데 도끼질 세 번이 필요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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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천 일의 앤>이 제 초딩 시절의 트라우마를 남겼다면 이 영화 <헨리 8세와 그의 여섯 아내들>역시 만만찮은 기억을 남겼습니다. 역시 어렸을 때(그러니까 중학교 때) 주말의 명화에서 본 영화인데 헨리가 아내를 앤 하나만 없앤게 아니더군요! 그렇게 보낸 아내가 하나 더 있더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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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 이 소녀는 먼저 간 앤 볼린의 외사촌 동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촌 자매가 한 남자랑 차례로 결혼을...아니 그 전에 앤 볼린의 언니 메리 볼린도 헨리 왕의 애인이었으니까...진짜 어느 분 표현대로 헨리 왕은 집안을 잡았군요.....-_-;;......





https://ko.wikipedia.org/wiki/%EC%BA%90%EC%84%9C%EB%A6%B0_%ED%95%98%EC%9B%8C%EB%93%9C

 캐서린 하워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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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리에게 잘 부탁한다고 수고비를 주고...여튼 이 시절의 신분 높은 사람들이 이렇게 마지막 가는 길에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습니다. 의상 큐레이터 김홍기 선생(샤넬, 미술관에 가다의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전근대 사회에서 죄수가 죽을 때 나름 '모습을 갖추고 죽을 수 있는 권리'는 특권 계급에게만 주어진 권리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상이 가시나요? 저 어린 소녀가(한 열 여섯이나 됐을라나...) 곧 도끼에 목이 잘려 죽게되었는데 저렇게 담담한 표정으로 관례대로 형리에게 수고비를 주고...제 발로 단두대 앞에 걸어가서 자, 내 목을 자르시오...! 하면서 목을 턱 올려...아니 그 전에 더 대단한 건 연설도 한다는 겁니다! 앞으로 자기가 피를 쏟고 죽을 걸 지켜 볼 사람들 앞에서 말이죠.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여기에 섰는데...죽음에 임하는 나의 자세는....블라블라....그렇다고 뭐 억울함을 호소한다거나 자신을 죽게하는 임금이나 정적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건 아니고...나름 죽음에 임하는 담담한 소회를 밝히는, 그러니까 공개 유언같은 연설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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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진심 놀랍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죽음의 순간 앞에서까지 '인간이 평소 살아온 태도가 따라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서서 언급하길 서양의 귀족들은 일생을 마치 연극적인 삶을 살아왔고 서로에게 보여주는 삶의 태도를 언제나 유지해 왔다고 했었는데, 그런 생활 태도가 정말 끝까지 사람을 지배하는 순간이 바로 이런 죽음 앞의 모습입니다. 귀족들은 남녀노소 가릴것 없이 정말 한결같더군요. 이 극한 상황에서도 제 발로 단두대까지 걸어 올라가고 근사하게 연설같은 유언도 남기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목을 도끼 아래에 들이 밀기까지....겨우 열 대여섯 밖에 안되는 소녀들도 그렇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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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드 <튜더스> 캐서린 하워드와 제인 로치포드의 처형 장면입니다. 앤 볼린의 올케인 제인 로치포드는 재판 내내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정작 단두대 앞에서는 정신을 차리고 누구나 칭찬할만 한 마지막 연설을 남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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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실은 이렇게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건 아무나 보일 수 있는 공력이 아닌 것입니다! 당시 자료들을 찾아봤더니 이렇게 죽은 사람들은 정말 귀족들밖에 없더군요.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여기까지 제 발로 못갑니다.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거나 통곡하거나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거나...정말 끔찍해서 못 볼 정도에요. 대혁명 기간 혁명가들 중에는 언론인 카미유 데물렝이 젤 심각했었죠. 한 시간 가까이 비명을 지르면서 날뛰어댔다고...그리고 뒤바리 백작부인...(이 사람은 원래 평민인데 왕의 총애를 받아서 귀족작위를 받은 케이스) 하도 몸부림을 치는 통에 형리 서너명이 덤벼들어서 제압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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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여성들은 정신을 잃은채 형장으로 끌려간다고 합니다. 기절한 채로 목을...어느 영화를 봤더니 형리가 막판에 기절한 죄수를 깨우더라고요. 진짜 너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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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의 시녀들 - 그러니까 친구들이기도 한데 - 이 시절은 이렇게 죽음이 가까운 것이라 이런 일들을 기꺼이 감수했던것 같습니다. 어느 분은 말씀하시길, 차라리 사약을 내리는 우리나라가 훨 낫다고...글쎄요...서양 귀족들은 그렇게 생각 안할겁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전통 왕조에서는 설령 귀족이라 할지라도 반역죄로 몰리면 고문과 신체형을 피하지 못했죠. 그리고 특히 그 삼족, 혹은 구족을 멸하는 형벌 제도! 이건 정말 대박입니다! 서양에는 왕들이 반역자의 가족을 처형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아버지가 반역죄로 처형되도 아들이 다시 관직에 등용되는 일이 이 동네는 비일비재합니다. 사실 동아시아의 역사에서는 권력을 잃고 그렇게 고깃덩이 마냥 죽음을 맞이한 권력자가 한 둘이 아니죠. 비단 본인만 그런것도 아니고 가족이 모두 다 같이 죽거나 아니면 노비 신세로 전락하거나....이것만 봐도 동아시아의 왕권이 얼마나 강한지, 서양이야 말로 왕권이 얼마나 약한지 알 수 있습니다.(여긴 정말 귀족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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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이 동아시아에 비해 얼마나 왕권이 약했던가는 바로 이런 왕의 여인들의 삶에서도 예시를 들 수 있습니다. 서양에는 동양과는 달리 축첩제도가 없습니다. 물론 왕들이 사사로이 바람을 피우기는 합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왕의 개인적인 일이었고 전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건 아니었죠. 여기서 말하는 '공식적'이란 후궁 첩지를 받는 절차처럼 제도화된 왕실 여인들에 대한 법제가 있으며 왕의 후궁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들에게도 왕위 계승권이 공식적으로 보장되는 체제를 말합니다. 그런데 서양에는 동양과는 달리 이런 제도가 없었습니다. 이것 역시 왕권과 관련된 것입니다. 왕이 자기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무 제약없이 마음껏 거느릴 수 있고 심지어 젤 중요한! 왕위까지 물려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권력 기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거든요. 다시 말해 서양의 왕들은 권력이 약했기 때문에 정식 결혼한 왕비에게 후사를 얻지 못하면 죽은 뒤에는 다른 귀족(동생이나 조카나 사촌)에게 왕위를 물려주어야 했습니다. 물론 생전에 애인들한테 사생아 아들들을 잔뜩 두었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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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까닭에...헨리 8세는 정작 애인들한테서는 아들을 잔뜩 두었건만 왕비들에게는 하나밖에 못 얻...그래서 50이 넘어서 10대 소녀와 결혼하는 모험을 저질렀죠. 그런데 정작 법정에서 밝혀진 바로는 발기 불능으로 잠자리도 제대로 못했었다고...그런데 이런 결혼은 왜 한 건지....정말 ㅂㅅ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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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1세가 보통 언제적에 어머니 앤 볼린의 일을 알았을까.... 학자들이 추정해 보건데 대부분 이 캐서린 하워드의 처형 때였을 것으로 보더군요. 실제로 엘리자베스는 사촌 이모이자 계모인 하워드 왕비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하워드 왕비 역시 의붓딸이자 조카인 엘리자베스에게 친밀감을 보여 나름 친하게 지내면서 보석도 선물해 주곤 했었죠. 하워드 왕비의 비참한 죽음을 겪고 난 뒤 엘리자베스는 친구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난 결코 일생 결혼하지 않을거야."









Catherine Howard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캐서린 하워드는 죽기 전에 런던탑에서 나무 단을 놓고 머리를 올려놓는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렇게 마지막 가는 모습이 흉하지 않게 보이려고요. 이 순간에서조차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귀족들의 삶....진심 대단한 듯...훗날 비슷한 연배로 세상을 떠났던 제인 그레이가 마지막에 단두대 앞에 머리를 제대로 올려놓지 못해서 잠시 버둥댔던 일이 떠오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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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궁궐 햄프턴 코트에서 이따금 목격되는 캐서린 하워드의 유령. 하워드 왕비의 유령은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런던탑에서도 출몰하거든요.


물론 앤 볼린의 유령도 있고 제인 그레이의 유령도 있습니다.











queen elizabeth tower of londo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엘리자베스 1세는 생전에 고집스럽게 어머니의 일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앤 볼린의 비참한 죽음이 여왕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객관적 근거는 없습니다. 여왕은 현명하게도 자기 옥좌에 내재된 약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거든요. 실제로 집권 초에 어머니의 복권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기는 합니다만 신하들의 만류로 그 계획을 접기도 했었고. 뭐 결국 같은 얘기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왕권은 무척이나 약하거든요. 이미 태생부터 부왕 헨리 8세 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러니 조선의 연산군처럼 어머니의 한에 대한 복수는…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고…(복수가 다 뭐랍니까…어머니에 대한 복권도 못했는데…)




영국의 전기 작가 리튼 스트레치(1880~1932)는 엘리자베스 1세의 평전을 서술하면서 이와같은 인상깊은 구절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단두대와 옥좌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모두 지난 시절의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군요. 신분제라든가 저런 끔찍한 형벌이라든가...가끔은 역사책을 읽다 보면 역사 자체가 판타지라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지난 일이백 년 사이에 세상이 너무 달라져버렸으니까요.


Queen Elizabeth II Coronation Day 2 June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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