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5 01:52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베르메르, 1666년 경, 캔버스에 유채,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헤이즈 미술관 소장)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의 걸작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 신비의 소녀
그녀는 대체 누구인가?
왜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
지난 2003년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스칼렛 요한슨
여러분들은 혹시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라는 화가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이 양반 작품은 후대의 고흐와 함께 사후에 아주 요란하게 추앙된 화가들의 대명사격인 분이기도 합니다.(특히 히틀러가 이 화가의 그림에 대단히 열광해서 나치 정권 전후로 이 작가의 그림과 관련된 스캔들도 적지 않았죠. 위조품들 많기로 아주…)
현재는 네덜란드의 국보급 작가로 지정이 되서 특히 본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같은 경우 아예 해외 전시 자체가 불가할 정도라는군요. (한국으로 치면 김홍도 정도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일단 풍속화 장르로 독보적인 화가이니)
이 분 작품 중에 대중적으로 가장 알려진 작품이 바로 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입니다. 살짝 돌아보는 눈빛에 담긴 신비한 미소와 영롱한 귀걸이의 빛으로, 보는 이를 매혹시키는 신비의 소녀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 화가 베르메르 본인이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는것 만큼이나 - 전혀 알려진 것이 없는 작품입니다. 일단 제목도 없고 누구를 그린 것인지도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덕분에 이 작품이 초상화인지 아니면 풍속화인지도 명확하지 않구요. 그러니 이 그림에 모델이 있을 것은 분명하지만 누구를 그린 것인지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 속 소녀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이런 수수께끼들이 신비감을 더하는 작품이었지요.
그런데 의외로 그 의문에 대한 답이 간단합니다. 그 소녀는 실은 존재한 적 없는 '상상의 소녀'라는 겁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이토록 생생한 미소의 그녀가 실은 존재한 적도 없는 소녀라니!
자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그 근거로 미술사학자들은 이 시절 17세기 네덜란드 화단에서 유행한 '트로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트로니란 고유한 의상을 입은 특별한 인물 유형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그린 가슴 높이의 인물화를 말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백과사전이나 잡지들을 폈을 때 미국인 혹은 일본인 등 어떤 특정 국가나 지역의 사람들로 자료 사진에 나오는 특정 인물군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 소녀는 어떤 인물군일까요?
바로 그녀가 머리에 두른 터번을 주목해 주세요. 딱 보기에도 이국적인 스타일이라는 걸 알 수 있죠. 그렇습니다. 그녀가 머리에 두른 건 바로 터번입니다. 이슬람 상인들이 주로 두르는 것이죠.
베르메르가 사는 델프트는 네덜란드에서도 상업도시로 알려진 곳이었는데 당시 터키 - 오스만 투르크의 상인들도 많이 오가던 곳이었습니다.
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당시부터도 유행하던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이든 터번을 두른 이슬람 트로니가 유행했었고 이 소녀상도 그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덕분에 이 그림의 이름도 처음에는 '터키식 터번을 두른 소녀'로 알려졌었죠.
그러다 근대에 들어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이는 소녀의 귀에 걸린 진주가 그려진 화법이 범상치 않다는 평과 함께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한 베르메르의 독특한 빛의 처리 기술에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이 소녀의 진주에 주목하기 시작하자 그녀의 신비로운 미소와 함께 머리에 두른 이국적 터번이나 입고 있는 소박한 옷차림과 걸맞지 않는 값비싼 진주 귀걸이에 대한 상상력이 동원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초상화를 거의 그리지 않은 베르메르의 작품 성향을 봤을 때는 이 그림을 특정 누구의 초상화로 볼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소녀의 생생한 표정과 눈빛 그리고 미소를 봤을 때 분명 모델은 있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그러고 보니 사극에서 일하는 서민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정말 간만에 봤네요. 이 영화에는 왕을 비롯해서…사극에서 그 흔한 귀족들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베르메르 역시 이 시절 네덜란드의 그 흔한 상공계층 출신의 화가들 중의 하나라…생전에도 유능한 기능인 정도의 인정을 받았던것 같습니다. 무려 이 양반 별명이 '델프트의 스핑크스'입니다. 워낙 알려진게 없어서 말이죠…그 정도로 평범하고 본인 일생 역시도 큰 무리없이 성실하게 살다 간 사람인듯…
동명의 소설도 있고 영화도 있죠. 저는 소설은 못봤고 영화만 봤습니다만.
스칼렛 요한슨, 콜린 퍼스, 킬리언 머피…헐리웃 쟁쟁한 스타들이 나왔었네요.
그런데 소설이나 영화는…창작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워낙에 작품에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그가 유일하게 자신의 감정을 비춘 작품이 바로 이 그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입니다.
이 빈틈이 후세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이 소설과 영화가 나왔죠.
이 영화에서 베르메르는 - 어느 분 표현을 빌리면 - 무려 아내의 진주 귀걸이를 하녀의 귀에 걸어주는 간 큰 남자!…로 나옵니다…
그러니 결론은 이 그림은 초상화가 아닌 풍속화라는 것이죠. 상상의 인물을 그린.
그래도 의문은 남습니다. 상상의 인물을 그린 풍속화라 해도 모델은 있었을 테니까요.
화면에 보이는 저 신비로운 미소와 눈빛은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며 모델을 관찰하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베르메르의 자녀들 중 하나인지…(미술사학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추정합니다만)
아니면 영화에서 묘사하듯 그 집 일 봐주는 하녀들 중 하나였는지…
이러한 수수께끼와 신비감을 품고 오늘도 소녀는 영롱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돌아봅니다.
그녀의 은은한 진주 귀걸이와 함께 말입니다.
2017.11.05 09:07
2017.11.05 12:46
2017.11.05 13:58
잘 봤습니다.
2017.11.05 13:58
이 정도로 유명한 작품에 대한 정보가 이렇게나 없을 수도 있다니 신기한 이야기로군요 정말. 오늘도 즐겁게 읽었습니다. :)
그나저나 <300>은 언제일까요 ㅎㅎㅎ
2017.11.05 15:33
2017.11.07 01:37
그나저나 저 귀걸이가 진짜 진주라면 그 시대적에 가격이 얼마였을지 궁금해 집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진짜 진주랑은 조금 다른 광택이 나는것 같아서 아무래도 가짜나 모조품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나저나 화가가 파란색을 선택한건 정말 탁월한 선택인것 같습니다.
2017.11.07 15:49
2018.02.08 16:42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그림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그래서 항상 마음 속으로 스킵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나저나 Bigcat님의 Scarlett Johansson에 대한 애정을 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8.03.02 00:34
아, 정말 언제봐도 아름다운 배우죠^^
Vermeer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가 걸작인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는 동영상이 있네요.
(환경설정에서 한글자막 선택할 수 있어요.)
James Earle - Why is Vermeer's "Girl with the Pearl Earring" considered a masterpie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