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실는지 모르지만 저는 염력을 재밌게 봤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난 염력이 좋아” 하는 투의 글을 쓸 때, 대부분이 그 영화를 좋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당히 쓸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의 마음은 디폴트값이 긍정적인 쪽에 맞춰져있게 마련인듯 합니다. 호감을 표현하는 데에는 이유를 제시할 필요가 적습니다. 싫어하는 사람들도 누가 그게 좋았다고 한들, 무슨 사악한 가치를 맹종하는 수준만 아니라면 기분나빠하진 않아요.

“싫다”고 말하는 데에는 약간의 조심성이 필요합니다. 비호감은 부정적인 정서입니다. 작품에 별 감상이 없는 사람들도 꺼려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분이 상합니다. 이것은 무슨 “빠심”같은 숭한 단어로 매도될 일이 아닙니다. 말했듯 사람들의 마음은 긍정적인 쪽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쉽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그냥 맛있다고 해도 되지만 맛없는 음식은 짜거나 비리거나 그 이유가 있어서 맛이 없습니다. 또한 누군가는 그 짜거나 비리다는 이유로 그 요리를 맛있어할 수도 있습니다.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이유가 필요합니다. 이유는 모르겠고 구리다 후지다만 반복하는 건 트롤링입니다. 싫어하는 쪽에서는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하고, 좋아하는 쪽에서는 그 이유 자체에 대해 반론을 펴거나, 혹은 그 이유를 눈감아줄 수 있는 다른 훌륭한 점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건강하게 감상의 폭과 깊이를 키우는 방식입니다. 이 기제가 잘 작동하려면 처음에 불호를 말하는 사람의 예의와 조심성이 필요합니다. 추가로 용기도 약간 필요합니다. 말을 꺼내는 데 있어서는요.
보잘것없는 약간의 용기와, 나름의 선을 둔 조심성으로 얘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이렇게 시작은 하지만 버티기 힘들 정도로 별로였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블랙팬서가 웰메이드 오락영화라는 점은 대다수의 공통적인 감상인듯 하고,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영화가 어떤 부분에선 한발 더 나아갔으면, 혹은 한발 물러섰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 아쉬움을 위주로 얘기해볼까 합니다.



먼저 액션, 은 좋은점 나쁜점 반반입니다.
아프리카 부족 전사의 결투를 표현한 부분은 좋습니다. 전 냉병기 액션을 좋아합니다. 중화 무협도 좋아하고, 중세 기사의 칼부림도 좋고, 로마 군단병이 갈리아인과 싸우는 것도 좋아합니다. 다만 좀 질리는 감은 있어요. 이런건 너무 많이 봤습니다.
이 영화에서 액션의 합이나 카메라웤이 새로운 액션 연출의 궤를 창조했다고 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좀 조심스런 말이지만, 검은 피부의 근육질 사내들이 함성과 도발을 섞어가며 땀내나게 싸우는 모습은 확실히 매력이 있습니다. (무슨 만딩고 같은걸 보고 싶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꼽자면, 와칸다 장군이 부산에서 악당의 차를 투창으로 사냥하는 장면이 있네요. 다큐 프로에서 물소 사냥하는 부족 사냥꾼이 생각나고 그랬습니다. 재밌더군요.

안좋았던 점은, 시빌워보단 확실히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와칸다의 에스에프스러운 표현을 위해 씨지가 많이 사용된 탓인듯 싶은데, 액션에도 그렇게 씨지를 넣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씨지 티가 그렇게 나야만 했나 가 맞을듯합니다. 저 사실 씨지 구분 잘 못합니다.
시빌워에서 블랙팬서의 액션은 대부분 밝은 배경에서 이뤄집니다. 가짜같은 느낌이 덜해요. 대낮에 멋있는 쫄쫄이들이 싸우는 것 같습니다. 그냥 눈 앞에서요. 근데 이 영화에서는 대부분의 수트 액션이 어두운 배경에서 나옵니다. 만화영화같아요. 묘하게 수트도 매끈매끈해보이고 진짜의 질감이 덜합니다.
또 한번 기억하실런지 모르지만 전 닥터후 뉴시즌 정주행 덕에 염력의 씨지도 무난히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이 씨지가 계속 아쉽더라구요. 그냥 후진 씨지도 아니고 퀄리티는 준수한데, 그 방향성이 내 취향과는 어긋나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고양이과 맹수를 연상케하는 스타일도 희석됩니다. 아프리카 군벌 대열을 습격하는 씬은 훌륭했지만 그 이후로는 이만큼의 짐승같은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시빌워에서 캡틴과 날렵하게 손을 섞던 모습은 보기 어렵습니다. 이보다는 합의 리듬이 느리고 투박합니다.

요약하자면,
수트 안입고 싸우는 장면 : 좋은 시도. 발전을 기대.
수트 입고 싸우는 장면 : 전의 모습에 비해 아쉬움.
정도 되겠습니다.


와칸다의 묘사는, 제가 아프리카를 잘 몰라서 딱 뭐라 하긴 어렵습니다. 그래도 노력해보자면, 하이테크한 신비의 국가라는 점은 느껴지는데, 피부로 와닿는 사회상이랄까, 이런 묘사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렵게 말하려니까 꼬이네요. 까놓고 말해서, 대관식이 너무 작게 느껴집니다.

이를테면 라이온킹 같은 경우 도입부에 새끼 심바가 언덕에서 치켜올려질때, 드넓은 평원에서 코끼리 가젤 기린들도 뿌우뿌우 하면서 적통의 생산을 축하합니다. 이 장면으로 심바의 왕국이 그려집니다. 그 이후에 따로 그리지 않아도 관객 머리에는 얘가 이 초원의 왕자라는 각인이 새겨집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왕좌에 오를때는, 절벽과 폭포도 너무 좁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너무 적습니다. 주인공이 다스리는 나라가 얼마나 넓은지, 백성은 얼마나 많은지의 감각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와칸다 전도와 인구 통계를 원하는건 아닙니다. 다만 와칸다라는 가상 국가에 몰입하기 더 쉽게 해주는 묘사가 있으면 했는데, 이 점이 아쉽습니다.
“환상벽”을 통과하기 전에는 와칸다가 오히려 더 넓어보입니다. 벽을 지나 진짜 와칸다로 들어오면, 묘하게 좁아집니다. 그 하이테크 시크릿 국가의 묘사에 진짜 사람 사는 국가로서의 모습이 많이 먹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처음엔 헛소리만 하다가 한참만에 본론으로 들어와 글을 쓰는데, 이번에도 끝을 못보게 되었습니다ㅜ 다음번에 확실히 글 마무리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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