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기...(긴 하루)

2018.04.25 19:22

여은성 조회 수:623


 1.어제 느낀 건데...아니, 재확인하게 된 건데 나는 불면증이 심해요. 


 그래서 오래 전에 개발한 방법을 몇년째 써오고 있죠. '지금 눕기만 하면 당장 잠들 수 있을'정도로 피곤해져야만 자는 거예요. 그게 새벽 5시든 아침 7시든 아침 11시든요. 불면증이 있든 없든, 졸음 수치가 max라면 인간은 잠들 수밖에 없잖아요. 덕분에 자리에 누워서 잠이 안 와서 뒤척이는 일 같은 건 없죠.


 하지만 어제는 일찍 자야만 했어요. 왜냐면 어벤저스 아이맥스를 보기 위해 아침에 표를 사러 가야 했거든요. 그래서 일찍 자려고 하는데...아무리 자려고 해도 도저히 잠이 안 왔어요. '쳇, 맞아...나는 불면증이 심했었지...'라고 주억거리다가 잠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 게 새벽 3시쯤이었어요. 



 2.어쨌든 아침에 일어났어요. 그리고 인터넷으로 예매하는 법을 익혀둘걸...하고 좀 후회했어요. 하지만 인터넷 예매를 모르는 나는 어쩔 수 없이 현장에 가서, 취소되는 표를 잡을 수밖에 없는 거죠. 아이맥스의 좌석은 624석이니까 그중 누군가는 영화를 보러 오지 못할 테니까요. 그야 그 누군가에게 큰 사고가 나길 바라는 건 아니예요. 그냥 늦잠을 자거나, 밀린 숙제때문에 영화표를 취소하길 바랄 뿐이죠.


 대충 8시쯤 지하철을 탔는데 놀랐어요. 사람이 엄청 많은거예요! 우리나라의 출근 시간은 9시고, 대체로 출근에 걸리는 시간은 30분 내외일 테니 8시에 지하철을 타러 가면 사람이 없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엄청 많았어요. 



 3.매표소에 가서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어요. 떨어지는 표를 기다리는 데 내가 인터넷 예매를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불리하다는 거요. 대기인수가 50명이 넘고, 그 50명을 다 뚫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떨어지는 표가 있어야 한단 말이예요. 인터넷 예매를 하는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계속 현황을 체크할 수 있는데 말이죠.


 50명이 넘는 대기인수를 뚫고, 직원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1분 남짓인데 그 1분사이에 취소표가 있어 줘야 한다는 거죠. 아니나다를까, 표를 살 차례가 되니 한 좌석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늘 아이맥스 상영분 중 남는 좌석을 아무거나 달라고 하자 직원은 3시 상영분에 딱 한자리가 남아 있다면서 제일 구석진 자리의 표를 끊어줬어요. 


 

 4.휴.



 5.낮잠을 자고 다시 2시 반쯤 용산으로 갔어요. 이번에도 혹시 취소표가 있으면 교환을 해보려고 했는데...이런, 역시 대기인수가 쩔어서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있었어요. 지금 당장 대기표를 뽑아서 기다린다고 해도 내 차례가 되는 건 영화 시작할 때쯤이라 환불이 불가능한 상태니까요. 그냥 완전 외통수로, 이 좌석에서 영화를 보는 선택지만 남아 있는거죠.


 하지만 분명 이 상황을 타파할 무언가가 있다...나는 똑똑하니까 분명 그걸 발견해낼 수 있다고 주억거리며 주위를 돌아봤어요. 그동안 신경쓰지 않은 자동 발권 기계가 있었어요. 그리고 젠장! 그 기계는 분명 지난 몇년간 그곳에 있었을 텐데 말이죠. 왜 몰랐던 건지. 한번 써보니 정말 편리한 기계였어요. 기계로 검색해 보니 나름 괜찮은 좌석의 표가 우수수 쏟아지고 있는 거예요. 실시간으로! 되팔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좌석을 던지는 거겠죠.


 한데 문제는 내 손에 이미 발행된 표가 있다는 거였어요. 영화 시작 10분 전이지만 좌석을 바꿀 길이 뭐가 있을까...싶어서 머리를 굴리다가, 청소 키트를 발견했어요. 그리고 당연히 그 안엔 기다리다 지쳐서 버려진 대기표...아직 지나가지 않고, 이제 금방 호출될 번호의 대기표가 있겠다 싶어서 들여다봤어요.


 

 6.거기에는 곧 불릴 번호의 표가 있었죠. 그걸 주워서 써먹으면 환불 없이 좌석 이동이 가능할 터였어요. 하지만...청소 키트에 내 손을 집어넣는 건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하고 싶었어요. 더이상 방법이 없을 때요. 그래서 다른 방법들을 5분쯤 궁리하다가, 도저히 방법이 없는 것 같아 청소 키트에서 그 대기표를 꺼내러 갔어요.


 그리고...위에 썼듯이 그건 휴지통이 아니라 '청소 키트'였어요. 누군가가 그걸 가지고 이동한단 뜻이죠. 청소 키트는 이미 사라져 있었어요. 잠깐 고민했어요. 청소 키트를 끌고 다니는 청소부를 찾아가서


 '잠깐만, 그 청소 키트 안엔 아까전에 내가 봐둔 대기표가 있어. 그 대기표를 꺼낼 수 있게 좀 열어줄 수 있겠어?'


 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내성적이라서 결국 그러지 못했어요.



 7.그래서 마지막 방법을 궁리했어요. 영화 시작 직전까지 자동 발권 기계를 눈여겨보는 거죠. 인기 영화답게 계속 표가 풀리고, 다시 예매되고 하는 게 반복되고 있었지만 영화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확실히 뜸해졌어요. 그리고 그중 끝까지 움직이지 않은 좌석을 봐두고 영화관에 들어갔어요. 이 시간까지 예매되지 않았으면 그 자리는 높은 확률로 빌 것 같아서요. 영화가 시작되고서도 그 자리가 차지 않으면 거기 가서 앉는 거죠.



 8.그런데 영화관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니까...의외로 뷰가 너무 좋은거예요. 정말 그런 삽질을 뭐하러 했지라고 느껴질 정도로 뷰가 좋았어요. 그래서 첨단 기술을 가지고도 멜서스 트랩을 두려워하는 신경증 환자의 이야기를 잘 볼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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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 상기하게 된 사실이 있는데...하루는 정말 길다는 거예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표를 끊고 운동 갔다가 복귀하고 낮잠 자고 다시 영화를 보러 가고 돌아왔는데...이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도 아직 저녁이예요. 기분상으로는 마치 3일은 산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옛날엔 매일매일이 이랬거든요. 어떻게 버텼던 거죠?


 맞아요...하루라는 건 이렇게 길었던 거예요! 젠장, 다시는 긴 하루를 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내게 있어서 그건 존나 끔찍한 시절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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