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연옥의 일기...

2017.11.15 04:30

여은성 조회 수:771


  1.돈은 꽤나 유용한 거예요. 누군가는 첫문장을 본 순간 '젠장, 이 인간 또 돈 얘기를 시작하잖아. 이거 안되겠군. 뒤로가기를 눌러야겠어.'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이건 소외와 소통 쿨함에 관한 일기니까요.



 2.인간들은 다들 그러잖아요? 자기가 많이 가진 것이나 자기가 잘 하는 것, 자기가 오랫동안 믿은 것을 신성하게 여기죠. 그리고 그 편향성에 권위를 부여하려고 해요. 그걸 끊임없이 시도해대죠.


 PC하게 살아간다는 녀석들은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언설로 대화를 이끌어가려고 하고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레이더에 불온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싶으면 젠더감성 이야기를 꺼내서 사람들을 공격하죠. 열심히 사는 인간들은 노력의 가치에 대해 설파하며 자신을 드높이려 하고 고생하며 살아온 녀석은 힘든 경험을 겪은 걸 무슨 자랑처럼 얘기해요. 인문학을 전공한 녀석들은 인문학 글귀와 지식을 뜬금없이 꺼내들길 좋아하고 발이 넓은 녀석들은 인맥 자랑을 해요. 그리고 연애전문가들은 정열과 정욕을 마음껏 해소할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과 경험을 과시하죠. 돈이 많은 녀석들은 당연히 돈 자랑을 하고요. 


 

 3.한데 도시의 인간들은 그렇거든요. 그들은 정치에 대해 쿨해질 수 있고 영화에 대해 쿨해질 수 있고 문학에 대해 쿨할 수 있고 철학에 대해 쿨할 수 있고 인문학에 대해 쿨할 수 있고 음악에 대해 쿨할 수 있고 연애에 대해 쿨할 수 있어요. 당신이 뭘 얼마나 많이 가졌든, 당신을 소외시키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들은 그걸 신경조차 안쓰는 척 할 수 있단 말이죠. 그래요. 그 자식들은 얼마든지 쿨한 척 굴면서 당신을 소외시킬 수 있단 말이예요. 당신을 소외시키고 싶어하는 녀석들은 당신이 뭔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 '아? 나 그거 전혀 관심 없는데?'라면서 한쪽 입꼬리를 다른 한 쪽 입꼬리보다 더 올리곤 하죠.


 하지만 이 미친 정신나간 도시인 서울에서 돈을 상대로 쿨해질 수 있는 사람은 못봤거든요. 유일하게 이 도시의 사람들이 감히 쿨해질 수 없는 것인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그건 존나게 좋은 일인 거예요.



 4.휴.



 5.왜냐면 다른 것들은 모르거나, 가지고 있지 않아도 무시하는 게 가능하단 말이예요. '아? 쇼팽? 몰라. 그딴거 관심없어서 말야.' '아? 조도로프스키 얘기 하자고? 거 취향 올드하네.' '아? 프라모델따위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덕후냄새 좀 안 나게 해줄래?' '아? 여자친구? 무성욕자라서 여자친구 필요없거든.' '아? 우리 정치 얘기는 꺼내지 말지?' 뭐 이런 식으로요. 소유하고 있지 않거나 모르고 있어도 그게 뭐 잘났다는 듯이 당당하게 무시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돈만큼은 다르거든요. '아? 나는 돈이 많이 필요없는데?'라는 말을 당당히 지껄이려면, 실제로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있어봤거나) 하니까죠. 돈을 많이 가져보지도 않은 사람이 '내겐 많은 돈이 필요없더라고.'라고 하면 그건 어이없는 허세일 뿐이니까요.


 애초에 그렇잖아요? 많이 가져본 적도 없는데 그게 자신에게 많이 필요한지 많이는 필요없는지 대체 어떻게 알죠?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6.뭐 어떤 사람들은 입으로는 그래요. 돈을 가지고 계급을 나누거나 상대를 무시하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요. 한데 사람들은 사실 이미 별걸로 다 사람을 무시하거나 카테고리를 나누잖아요. 종아리가 두껍다거나 키가 작다거나 못생겼다거나 젠더감성이 부족하다던가 목소리가 이상하다거나 잘 안 씻고 다닌다던가 성격 나빠 보인다던가 자기네들 파벌이 아니라던가 하는 걸로 멋대로 판단한 다음에 등급을 정하죠. 이 세상엔 정말 못된놈들과 이상한 놈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 것에 비하면 돈을 가지고 사람을 무시하는 건 매우 건전하고 건강한 일이예요. 돈은 적어도 종아리 굵기나 키, 얼굴, 목소리, 이념, 파벌, 성격따위보다는 확실하고 공정하니까요.


 

 7.쿨한 척 하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는 놈들도 몇 명만 모이면 누군가를 소외시킬 수 있어요.


 하지만 쿨한 척 할줄만 아는 녀석들이 몇 명 모이든 몇십 명 모이든 몇백 명 모이든 몇천 명 모이든 몇만 명 모이든 몇억 명 모이든 돈을 소외시킬 수는 없거든요. 돈이 그들을 소외시킬 수는 있지만요. 소외를 시키면 시켰지 절대로 소외될 걱정이 없다는 것...그것이야말로 돈의 최고 장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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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누군가는 '뭐야 이거? 본인 얘기 하는 건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예요. 애초에 나는 인사이더라서요. 귀찮아서 인사이더를 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 난 인사이더가 맞겠죠 뭐. 


 하긴 이젠 인사이더인지 아닌지 알 기회도 더이상 없긴 해요. 영원히 말이죠. 내 사회생활은 끝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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