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툰베리. 마지막 기회.

2019.10.23 06:59

일희일비 조회 수:1676

오랫만에 글을 쓰네요. 여전히 로그인이 한 번에 안 되고 꼭 두 번을 해야 성공하는군요. 한 번도 아니고 세 번도 아니고 네 번도 아니고 꼭 두 번이요.


그동안 기후위기에 대응한 기후파업/기후행동에 나가보면서 번뜩 정신이 들어서 이런저런 자료도 찾아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해봤어요. 참.. 미치고 팔짝 뛰겠더군요. 정부는, 언론은, 시민사회는 대체 어쩌려고 이렇게 손을 놓고 있는 걸까. 그 동안도 듀게 눈팅하면서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한동안 조국 이야기밖에 없었거든요. 조국이 정말 많은 국면을 열어젖힌 건 맞아요. 저도 버튼 눌리는 지점들이 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절멸이 가능한 위기를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건 너무 이상했어요. 궁금해서 다른 큰 게시판들도 들어가봤죠. 역시 기후변화 이야기는 없더라고요.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문제나 아프리카돼지열병 등도 검찰개혁 못지않게 정말 심각한 문제인데, 큰 경각심은 없는 듯 하더이다. (일본은 방사능 때무에 망했다는 조롱을 볼 때마다 서글픕니다. 바로 옆나라 살면서 조롱할 상황이 아니죠. 침몰하는 배 위에서 높은 갑판 쪽에 있다고 아래쪽 갑판 사람을 비웃는 꼴.) 기후위기가 매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정부는 에너지 대전환의 큰 프레임을 짜도 모자랄 판국에 이 무관심은 뭐지? 저 역시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고 살아온 긴 시간이 있으니 스스로 하는 반성이기도 합니다.


제가 새삼 깨달은 지점, 여전한 오해에 답답했던 지점 몇 가지.


1. 기후위기 대응은 지구를 위한 게 아닙니다.

환경문제 이야기하면 아직도 먹고 살기 바쁜데 배부른 소리 한다는 -이 소리야말로 바로 배부른 소리인데- 비아냥이 바로 나오더군요. 기후변화 이야기를 다룬 제가 발견한 유일한 게시판 글은 기후행동 집회에 참여하는 정의당보고 '검찰개혁이 얼마나 엄중한데 쓸데없는 짓에 끼는 미친 정의당 것들'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댓글들도 결이 같았죠. 


추상적인 지구나 오지도 않은 먼 미래나 본 적도 없는 아마존의 개구리를 구하려는 게 아닙니다. 당장 5년, 10년 뒤 '내 미래', 자식이나 조카가 있으신 분은 내 자식, 조카의 미래가 지금 인류의 행동에 달려 있습니다. 해발 고도가 아주 낮은 산호초로 이루어진 섬나라들은 당장 물에 잠기게 생겼죠. 인간이 살 수 있는 기후 지대가 대규모로 바뀌게 됩니다. 난민이 대규모로 생기고 전쟁이 일어나겠죠.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온난화 연쇄반응이 일어나서 (온난화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 더 큰 온난화가 증폭) 더 이상 인간이 손쓸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어요. 높은 가능성으로 그렇습니다..... 

지구는 어떻게든 굴러가요. 어마어마한 규모로 지구온난화가 이루어져도 바퀴벌레나 완보동물, 아니면 큰빗이끼벌레 같은 -우리에게 별로 도움 안 되는- 생물들이 번성하고 그 나름의 생태계가 꾸려집니다. 인간이 살기 어려운 조건이 되어서 기후'위기'라고 부르는 것이지 지구를 걱정해서 대책을 세우자는 게 아닙니다.


2. 한국은 약소국가 아닙니다.

이젠 누가 봐도 선진국이고 경제강국입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탄소배출은 여전히 펑펑 하고 있죠. 한국인 1인당 탄소 배출량이 세계 평균의 3배입니다. 미국이 기후악당 1위이긴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2000년 대비 탄소배출량은 순감소했거든요. 독일, 영국 등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일본은 보합세. 그런데 한국은 그 이전은 물론이 2000년 이후도 계속 증가 추세입니다. 네... 저도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미래세대에게 미안합니다. 한국도 에너지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 정부 전체가 움직여야 합니다. 안 하면, 다같이 망합니다.


3. 한국의 인구는 감소하고 있지 않습니다.

출산율 저하로 인구가 감소하여 2100년엔 한국이 소멸한다느니(?) 하는 시나리오를 봤는데, 기후위기로 그 때까지  한반도에 인간이 거주할지부터 먼저 걱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한인구는 현재 감소하고 있지 않습니다. 수명 연장으로 여전히 늘고는 있습니다. 다만 연령별 인구구조가 변화하고 있을 뿐이죠. 전세계 인구는 여전히 폭증 추세이고 인구 증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맞습니다.


4. 자포자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후위기가 너무나 큰 문제이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보이고 다가오는 파국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문제에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한동안은 꽤나 우울했습니다. 하지만 전세계 기후행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규모를 보고 희망을 다시 가지려고 해요. 유럽은 정말로 기후변화가 가장 중요한 정치 의제입니다. BBC에서는 하루도 기후 뉴스가 안 나오는 날이 없는 것 같네요. (내연기관 만든 산업혁명을 일으킨 장본인들이니... 이게 다 영국놈들 네놈들 때문이다..응? 여하튼 원죄가 있는데 생까지 않고 열심히 하려는 건 좋아보입니다.) 유럽 전체에서 극우 정당을 누르고 녹색당이 크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극우의 발흥을 녹색이 막다니 꽤나 감동적이죠!) 

그리고 사실 지구온난화의 원인, 진행 과정, 대책은 다 밝혀져 있습니다.  기술적인 해결책은 이미 다 개발되었고 단가 계산도 이루어졌고 정책적으로 실행만 하면 됩니다. 놀랍게도 태양광 발전의 단가가 지난 수십년간 정말 많이 내려갔습니다. 단가 때문에 세우려던 화석연료 발전소 부지를 태양광 발전 부지로 전환할 정도니까요. 그리고 한국의 대기업들이 만들어내는 태양광 패널이 꽤 좋습니다. 유럽에서는 왜 우리가 사다 쓰는 패널을 너희 나라에서는 많이 안 쓰니..?하고 의아해하기도 합니다. 다른 대안에너지, 사막 녹지화, 내연기관 대체 등도 이미 연구가 다 되어있고요.  


상식이 바뀌어야겠죠. 내가 이만큼 소비를 하고 이만큼 화석연료를 태우면 그만큼 나 포함한 존재들을 위협한다는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상식으로 자리잡길 빕니다. 시간이 촉박하긴 합니다.

지나가는 여성에게 '휘~ 엉덩이 빵빵하네!'하고 캣콜링을 하면 적어도 비난받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많은 여성들의 투쟁으로 이루어졌죠. 
비행기 여행을 자랑하고 소비를 자랑하고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육식을 사진찍어 올려서 자랑하는 '분위기'가 바뀌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이미 북유럽에는 분위기의 전환이 감지됩니다. 비행기여행을 하면 부끄럽다는 인식이 퍼져서 '비행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생긴 나라들이 몇 됩니다. 비행기 여행을 하더라도 숨기는 분위기가 좀 된 것이죠. 


괴롭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써온 화석연료, 내가 찍은 탄소발자국을 얼추 계산해보니 다시 한 번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고요. 나무를 심으면 내 탄소발자국을 0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계산해봤는데, 생각보다 많이 심어야 하.... (그래도 심기 시작할 생각입니다.) 일단 소비를 줄이는 게 우선이겠어요. 덜 쓰고 덜 타고 덜 버리고. 되도록 채식 위주로 살고요. 


제가 기후위기를 다시 생각하게 된 건 그레타 툰베리 때문입니다. 참 전형적이게도, 이 독보적인 소녀는 역시 마녀 취급을 받고 있네요. 유엔에서 한 연설에 달린 댓글을 보고 아연실색했습니다. 온통 유치하게 외모와 표정과 말투를 비하하는 댓글들뿐이었거든요. 

아이고... 어른들이 소녀 한 명을 조롱하는 꼴이라니. 참 어른스럽습니다. 그리고 내용에 대한 반박은 없어요. 그냥 나 쟤 싫어, 이것뿐이죠. 그들의 옹색한 악플이 그들이 코너에 몰렸고 물러갈 세대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물론 그들이 싸놓은 똥(탄소발자국)은 여전히 악영향을 미치겠지만요.


나무 심기로 탄소배출을 벌충하기보다는 덜 배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 변화입니다. 

결국 데모와 여론환기가 답이네요. 기후파업이나 기후행동집회가 있으면 관심 가져주시고 참여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389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229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0672
121168 월급루팡의 안도감 [3] skelington 2022.10.06 382
121167 바낭 - 뭣이 중요한가(제각각 플레이) [2] 예상수 2022.10.06 201
121166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2] 세멜레 2022.10.06 460
121165 꿈에 핵전쟁이 났습니다 [2] catgotmy 2022.10.06 305
121164 넷플릭스 "다머" 강력 추천 [3] 산호초2010 2022.10.06 692
121163 '씬 시티' 아무말입니다. [18] thoma 2022.10.05 486
121162 [근조] 일러스트레이터 김정기 작가 [4] 영화처럼 2022.10.05 484
121161 페미니스트가 불편한 이유 [2] catgotmy 2022.10.05 718
121160 묘하게 위안을 주는 '말아' [8] LadyBird 2022.10.05 416
121159 프레임드 #208 [6] Lunagazer 2022.10.05 136
121158 얘가 누구죠 [4] 가끔영화 2022.10.05 396
121157 윤석열차 [3] 예상수 2022.10.05 711
121156 '나비잠' 보고 잡담입니다. [4] thoma 2022.10.05 286
121155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예매 오픈 했습니다. [3] 남산교장 2022.10.05 530
121154 [영화바낭] 분열된 '샤이닝' 팬들의 화합을 시도한 영화, '닥터 슬립'을 봤습니다 [6] 로이배티 2022.10.04 588
121153 침착맨 유튜브에 나온 이동진(feat. 주호민) [4] catgotmy 2022.10.04 800
121152 하우스 오브 드래곤 7회 바낭 [2] daviddain 2022.10.04 368
121151 에피소드 #5 [8] Lunagazer 2022.10.04 152
121150 프레임드 #207 [4] Lunagazer 2022.10.04 123
121149 돌아왔답니다. 그리고 노벨 문학상. 미스테리아43호 [1] thoma 2022.10.04 43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