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8년 12월 8일 아침 서울행 KTX 산천 열차가 탈선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한겨레가 기사를 작성했는데요. 기사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92명 탑승이 탑승했던 KTX 열차에 승무원은 세 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승무원은 한 명이었다는 내용입니다. 다음은 발췌입니다. 


코레일은 승무원들을 자회사 소속으로 분리하기 위해 본사 직원의 ‘안전업무’와 자회사 승무원의 ‘승객서비스’ 업무를 인위적으로 구분해 놓았다. 사고 열차 안 2명의 직원 중에서도 안전업무 담당은 열차팀장 1명뿐이었다.


그래서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은 승객서비스를 담당하는 자회사 소속 승무원들에게 안전업무에 대해 ‘지시’할 수 없다. 다만 ‘협조’는 구할 수 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열차팀장들에게는 ‘지시가 아닌 협조를 구하는 투로 말하라’는 지침이 내려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댓글을 보니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직무상 의무가 있어야 긴급구조 활동을 해야 한다는 관념자체가 잘못 된 것 아닐까요? 긴급 구호는 의무가 아니라 위험이란 상황을 판단 할 수 있는 사물이라면 반사적인 행동으로 구조활동을 하게되는 생명체의 기본 생리가 아닐 까요?" "참 글이 이상하네, 그럼 멀쩡한 사람이 안전구조 해야지. 구조요원이 따로있나 한마디로 웃기는구만" (참고로 이 승무원은 부상을 입은 상황이었습니다) 


2. 그런데 3년전인 2015년 4월, '노동판례 리뷰' (pp79-88)에서 성균관대 김홍영 교수는, 2018년 12월을 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글을 씁니다. 김교수는 대법원 2015. 02. 26. 선고 2010다93707 판결이 무리하다는 취지로 글을 썼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반면에 대법원 판결은 ① KTX 열차팀장의 안전 업무(출입문 개폐, 신호상태 확인, 제어안전장치의 취급 등)와 여승무원의 승객서비스 업무(객실온도 및 조명, 승객 인사, 노약자 승하차 보조, 안내방송, 승차권 확인 등)는 구분되고 여승무원은 자신의 업무를 열차팀장의 지시를 안 받고 독자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중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여승무원들과 철도공사 측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였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판결은 KTX 여승무원의 업무와 열차팀장의 업무가 구분된다고 설명하기 위해, 화재 등의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KTX 여승무원의 화재진압 및 승객대피 등의 활동을 이례적인 상황에서 응당 필요한 조치에 불과하고 KTX 여승무원의 고유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낮았다고 평가한다. KTX 여승무원의 소송 문제가 발생하자 철도공사는 의식적으로 여승무원과 열차팀장의 업무를 구분하려 노력하면서 여승무원에게 비상사태 대처 훈련도 소홀히 해 오는 것이 현실이다.


승객이 열차 내 카트에서 먹거리를 살 때에는 별도로 돈을 내지만, 여객서비스는 이미 운임에 포함되어 있다. 철도공사는 고객으로부터 운임을 받으면서 여객서비스는 자신이 스스로 제공하지 않는다.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속임이 있다. 2013년 8월 대구역 KTX 열차 추돌 사고에서 여승무원들의 승객대피조치 덕분에 추가적인 인명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보듯이 승무원의 안전 업무는 매우 중요하다. 철도공사는 업무하도급을 통해 가장 중요한 서비스인 안전을 소홀히 하고 있는데, 대법원 판결은 이를 적법한 하도급으로 인정하여 안전 불감증을 조장하는 것이 될까 우려된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 승무원 여객서비스 업무는 하도급을 줄 수 없도록 하는 입법정책이 필요하다."


3. 이 노동판례 리뷰는 다시 2018년 5월 30일 발간된 레디앙의 한 기사와 연결이 됩니다. 


12년 전 KTX 승무원 해고된 승무원들은 ‘근로자 지위’를 확인해달라며 2008년 11월 첫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1, 2심에서 연달아 승소했지만 2015년 대법원은 “승무원이 안전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철도공사의 정규직이 아니라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 중략 ... 그런데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이 청와대와의 뒷거래를 통한 것이라는 의혹이 사법권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청와대와 KTX 해고 승무원 재판을 두고 거래를 시도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양승태 대법원은 KTX 해고승무원 관련 판결 등을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로 꼽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살인’이라는 절규에 가까운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4. 다시 말해서 1심, 2심에서 이긴 KTX 해고 승무원들을 비정규직으로 규정하기 위해서 KTX 해고 승무원들은 안전을 담당하지 않는다며 대법원이 무리하게 논리를 만든 것이죠. 이렇게 대법원이 논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자회사 소속 승무원들은 공식적으로 안전을 담당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공식적으로 위험을 외주조차도 받지 못합니다. 이들 역시 안전을 담당한다고 규정하는 순간, 이전에 세운 정규직/비정규직을 구분짓는 논리가 깨집니다. 


5. 그렇지만 너무나 이들은 2015년 7월 개정된 ‘철도안전법’ 제40조2항은 ‘여객승무원이 철도사고 등의 현장을 이탈하지 말고 국토부령으로 정한 안전업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뭐랄까, 게임 만드는 회사에서 임시직 프로그래머로 사람을 고용해놓고, 바쁘면 회계도 하라고 시키고, 문제 생기면 책임자 대신에 사과도 하러 다니고, 이런 식인 거죠. 


6. 원래 대로 위험을 외주화하는 사회라면 이들이 위험을 외주 받아야 하는데,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안전업무를 외주받지도 않으면서, 비공식적으로는 안전업무를 할 것을 '협조 요청' 받고 있고, 법적으로 역시 현장을 이탈하지 말고 안전업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7. 이에 대해서는 김창환 교수가 한 번 비슷한 포스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한다. 


가난해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야하기 때문에 안스러울 수는 있지만, 그건 그냥 감상일 뿐이다. 대통령이 비행기타고 화려하게 외교를 다녀도 더운데 고생한다고 안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두 감정이 그리 다른 것이 아니다. 


가난하고 못배워서 택하는, 일반적으로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직업이라도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 기능이 없다면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학에서 기능주의 계층론을 비판하는 Melvin Tumin의 첫번째 논점이다. 


선진국이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위험이 따르는 작업을 그래도 덜 위험하게 만드는데 비용을 지불하는 사회다. 그래서 따르는 불편함은 모두가 감수한다. 그게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8. 물론 두 명의 승무원들이 KTX 정규직이었으면 상황이 많이 달랐겠느냐,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에 대해선 BBC가 정리해놓았네요. 하지만 2015년에 대법원이 꼬아놓은 이 문제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화근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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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od Place'라는 드라마를 아시나요? 넷플릭스에 시즌 2까지 나왔고, 아마존에서 시즌 3이 올라와 있습니다. 음... 일단 마이클 역을 맞은 남자 배우가 엄청난 얼굴을 갖고 있네요. 탈이 좋다고 해야하나. 잘생겼는데 그냥 잘생긴 게 아니고 악마적으로 잘생겼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뭔가 다른 존재일 거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나무 조각같은 얼굴이예요. 캐스팅을 아주 잘 했네요. 드라마를 아주 영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철학공부에 미련이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를 보고 감동을 받은 사람이라면, 아주 재미있게 볼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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