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그간 사정이 있어서 카페 투어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조금씩 여유가 생겨 새로운 카페들도 가보고 리뷰도 해보려고 합니다. 듀나에 글을 올릴까 하다가 분위기 파악은 해야할것 같아 눈팅만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용감하게 다시 글을 올립니다.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

 

박상호 바리스타의 세미나, 커피 리브레

 

지난 월요일 저녁, 리브레에서는 박상호 바리스타의 커피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박상호 바리스타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영국에 진출했습니다. 아시아인도 손에 꼽히는 영국 커피업계에서 그는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둬왔는데요. 스퀘어 마일즈를 기반으로 일하면서 런던 바리스타 챔피언쉽에서 우승을 거두는 등, 편견과 차별속에서 어느덧 런던 최고의 바리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날 세미나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영국의 커피 산업과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비교적 늦게 커피 산업에 진출한 영국이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영국의 커피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까지. 경험에 기반한, 전문성을 바탕으로한 흥미로운 세미나였어요.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피쉬엔 칩스 아니면 굳이 먹고 마시는 것에 밀어넣은 홍차문화가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이 본격적으로 커피산업(정확히 말해서 스페셜티 커피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한것은 2005년 입니다. 음식문화에서는 별볼일 없었던 영국이 불과 10여년 사이에 스페셜티 커피에서 두각을 나타낸건 호주와 뉴질랜드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어요. 영국에 비해 식문화가 발달한 호주와 뉴질랜드의 젊은이들이 영국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양질의 커피 문화를 전파했기 때문이죠. 각각 2005년, 2008년에 문을 연 Cafe Flat White, Milk Bar는 영국 스페셜티 커피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여기에 Square Mile이 힘을 더하기 시작하면서 영국의 커피는 커피의 산업혁명 이뤘죠. 여기엔 Steve Leigton의 In my mug(커피를 주문하면 매주 목요일 일정량의 커피와 함께 그 커피를 설명하는 영상을 배달해주는 시스템), 2009년 바리스타 챔피언 Gwilym Davies의 Disloyalty card(다른 8개의 샵에서 커피를 마시면 자신의 샵에서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는 카드)같은 헌신적이고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힘을 더했습니다.

 

이렇게 박상호 바리스타는 전반적인 영국의 커피 산업의 발전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더불어 그는 한국과 구분되는 영국의 커피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외국의 한 카페 리뷰어가 지적한 것 처럼, 한국에는 로스터리샵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죠. 이에 반해 영국은 런던에 있는 수 십 개의 스페셜티 샵중 로스터리는 불과 다섯 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나도 할 수 있어'가 아니라 '그래, 로스팅만큼은 로스터를 믿자'라는 마인드가 잘 정립해 있는게 그 이유라고 하네요. 또, 경력직을 우대하기보다 각각의 샵의 분위기에 맞는, 열정이 있는 직원을 뽑는 것도 한국과 영국의 차이점이라고 합니다. 이 밖에도 레시피를 중요시하는 점(물의 온도, 추출량과 시간에 대한 정확한 기록), 저울과 타이머 없이는 커피를 내리지 않는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소금, 식초맛 과자가 심심치 않게 팔려나가는 것 처럼 신맛을 좋아하는 영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신맛을 중심으로한 벨런스가 좋은 커피를 뽑아내는 것. 역시 한국과 비교되는 영국의 커피문화였습니다.

 

이 세미나의 초점은 영국의 우월한 커피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영국 커피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한국 커피 문화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주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두 개의 커피하우스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대학로의 학림과 다동의 다동커피집입니다.

 

 

대학로, 학림

 

네이버, 히룡(coolday33)의 사진

 출처 : 네이버, 히룡(coolday33)의 사진 http://photo.naver.com/view/2010082900264960095

 

학림을 커피만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런 학림을 얘기하기에는 공간과 시간이 부족하므로 오늘은 커피에 대해서만 이야기 할게요.

 

1956년 처음 문을 연 학림은 지금까지 줄곳 '학림 블렌드'만을 팔아왔습니다. 50년간 학림의 커피 맛은 변해왔죠. 아니 변해왔을 겁니다. 분명한건, 어느 순간부터 학림은 자신만의 맛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신맛이 너무 강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밍밍하지는 않은, 구수한 숭늉의 느낌이 나면서도 커피 고유의 쌉싸름함(Bitter)이 살아있는 맛. 벨런스의 측면에선 한국의 어떤 카페도 따라오지 못할 훌륭한 블렌드입니다.

 

학림의 커피 맛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때문입니다. 스퀘어마일이 세계적인 로스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영국 커피 문화에 기반한 벨런스 있는 로스팅입니다. 신맛을 좋아하는 영국인의 입맛을 기반으로 질좋은 생두와 철저한 메뉴얼화를 통한 로스팅이 스퀘어마일 커피의 정체성을 만들었죠. 신맛이 강한것은 사실이지만, 언제나 벨런스를 훌륭하게 유지하고 있기때문에 거북함이 들지 않습니다.

 

신맛은 과연 세계적인 트렌드일까요? 자칭 커피 마니아라고 하는 사람들이 혹은 세계트렌드를 따라간다고 하는 샵들이 좋아하거나 내놓는 약배전 커피들이 과연 진리일까요. 자칫 잘못하다간 콩을 익히지도 못해 신맛만 잔뜩나는, 벨런스가 무너지기 쉽상인 커피가 우리의 입맛에 맞는 커피일까.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림의 커피는 신 커피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리고 로스팅에선 강배전을 고집한지 오래 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학림을 찾습니다. 수 십 년간 그곳에서 커피를 마셨던 사람부터 이제 막 커피를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까지, 학림의 커피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학림의 커피는 스퀘어 마일보다 오래된 역사를 가졌습니다. 학림이 연구해온 맛은 한국의 문화와 정서에 기반합니다. 우리의 커피문화를 생각할때, 학림이 떠오르는 이유입니다.

 

 

다동, 다동커피집

 

 

 

개인적으로 다동의 커피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물에 커피탄 듯, 커피에 물탄듯 그곳의 커피는 너무 연하기 때문이죠. 스트롱 커피나 에스프레소만이 그곳을 찾을때 즐겨 먹는 메뉴입니다.

 

다동은 고집이 센 커피집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4000원에 커피를 팔면서 무제한 리필을 해주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 커피'를 하는 자부심도 큽니다. 은은하면서도 고소하고 달달한 커피에 중심을 두죠. 한 번도 흔들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커피의 농도는 절대 선을 넘지 않아요. 누구도 그곳에선 커피가 쓰다고 말하지 않죠. 대신 집중해야 느낄 수 있는 은은하고 깊은 맛에 감동을 받습니다.

 

믹스커피가 훌륭한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정도로 사랑스럽습니다. 다동의 커피는 그렇습니다. 4000원을 내고 이 커피, 저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건 누구에게나 신나는 일입니다. 게다가 커피는 진하거나 쓰지 않죠. 커피에 익숙하지 않은 어떤 한국 사람도 즐길 수 있는 맛입니다. 다동에 앉아있다보면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을 볼 수 있어요. 젊은 사람들만 뺵뺵한 홍대의 카페 거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죠.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종로의 50대 부장님들도 다동에 자주 찾습니다. 얼큰한 부대찌게를 먹고 입가심하기에 다동의 커피는 무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커피

 

어떤 외국인이든 한국에 오면 깜짝 놀랄 겁니다. 이렇게 카페가 많은 나라가 있을까 생각하는거죠. 프렌차이즈는 물론 직접 콩을 볶아대는 로스터리 카페들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양적인 성장이 가진 단점은 이미 명명백백히 드러났습니다. 아직도 프렌차이즈 카페에선 시럽없이는 커피 먹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로스터리 샵은 콩을 덜 익히거나 태우고 있구요. 비싼 에스프레소 머신을 가져다 놓고도 과추출을 하는건 예사로운 일이죠.

 

반면, 그 속에 숨은 진주처럼 커피를 만드는 카페들이 있습니다. 양질의 생두를, 오랜 연구를 통해, 정성을 들여 볶는 로스터리들이 있죠. 그 카페들 덕분에, 그곳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어느곳을 가도 부끄럽지 않은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습니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사람들은 함께 입맛을 끌어올립니다. 좋은 커피를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포인트는 분명합니다. 우리만의 커피문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커피에 대한 고민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커피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이나 유럽을 쫓아가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싶네요.

 

학림과 다동같은 고민을 하는 카페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당장 우리 어머니를 데려가도 좋아할만한, 그런 카페가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영국에서는 한 카페에서만 오전에 수 백 잔의 커피가 팔려나간다고 하네요. 수백명의 영국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죠. 한국 스페셜티 로스터리도 이런 카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양질의 커피로, 벨런스가 뛰어난 커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커피를 마실 줄 안다면 신맛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당신의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이곳의 커피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카페가 늘어났으면 좋겠다는게 저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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