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같은 예술가가 싫은 이유

2013.01.31 15:02

Hopper 조회 수:10389

 


 

 

   처음 랜덤출판사에서 김경주의 시집 '나는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를 읽었을 때 아마 이 시집이 어느 첫시집처럼 굉장히 많은 주목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그랬죠. 그 이후 문지사에서 2권 민음사 1권 그는 제법 부지런하게 시집을 냈고, 패스포트 그리고 제가 오늘 읽은 레인보우 동경과 같은 여행산문집을 냈습니다.

프로필 란에 보면 그는 시작(詩作) 뿐만 아니라 여러 독립연극이나 다른 활동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참고로 극본 형태의 책도 냈구요.

 

하지만 저는 결론적으로 김경주 라는 시인이 싫습니다. 잘못되었다 라는 비판이 아니라 그와 같은 방식의 작품이나 글을 내놓는 사람들의 작품을 볼때마다 힘에 겹고 어쩔때는 역겹습니다.

저는 그가 첫 시집 이후에 이미 할말은 다했다 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의 시집들은 언어적인 모험이나 극형식을 가지고와 여러 시작의 모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도 나름대로 유효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그는 자신이 표현해내고자 하는 바는 첫 시집에서 완성하고 난 뒤에 크게 더 나아가거나 그의 인생에서 다시 뭔가를 끌어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의 그 성공한 "시인"이라는 직업적 이미지에 더 많은 삶의 시간을 투사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예술작품이 살아가는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단지 시인 혹은 예술가로써 살아가서 만들어지는 그 특별한 감성이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가수 이상은 씨가 아티스트로써의 정체성과 직업정신 에 충실하여 베를린 여행기를 내놓는다거나 오지은씨가 난 뮤지션이라는 그 의식적인 정체성에 내놓은 음악과 책 (여행기) 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얻었습니다.) 그들의 감성이란 그들의 첫 시작처럼, 삶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라기보다 작위적으로 "난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지" 라는 느낌으로 이끌어낸 듯한 인상을 줍니다 )

 

그의 "레인보우 동경"이란 산문집을 읽고 나서 제가 느낀 것은 그가 이제 할말이 없어진 문장. 즉, 작위적인 문장과 '시인'이라는 직업적 이미지에 더 많은 것을 호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산문에서 여행이라는 어떤 이국의 독특한 향취와 정서를 빌려와 작위적인 문장들로 적당히 센치한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런 문장을 계속 읽다보면 마치 느끼한 향취료나 미원을 가득넣은 음식을 먹은 것처럼 부담스럽습니다.  정말 이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고

전하고 싶은 마음도 모르겠고 그냥 난 예술가니까 - 라는 직업정신으로 의미없는 문장을 양산하고 있다는 인상이 듭니다.

 

가령 이런 문장을 볼까요.

 

 

"우리는 삼삼 (33)이고 우리는 삼삼하다 " "연필을 데리고 떠나라 (...) 록밴드 도어즈의 짐모리슨도 연필을 좋아했고 커트코베인의 유서도 연필로 쓰였다"

"짐 자무시의 클럽에 가입하기" "분홍에 대해 남몰래 집착할 때 우리는 그것을 섬세함이라고 불렀다 "

 

 

그냥 끊임없이 쏟아지는 일반 블로거들의 여행기나 감성이 특출난 사람들의 글에서야 이런 식의 문장이 쓰인다고 해서 싫어질 이유도 없지만

그의 "시인"이라는 직업적 정체성에서 저런 허공에 뿌리는 향수 같은 문장. 화장을 너무 찐하게 해서 맨 얼굴도 몰라볼 문장을 쓰면서

어떤 작위적인 감성으로 센치함을 동원하는 것이 짜증이 나더군요. ( 위 문장을 약간 흉내낸겁니다)  하루키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도 이런 식의 문장을 즐겨쓰지만)

그와 같은 아티스트에 비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건강한 글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수필 에서는 그런 포장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말이 있죠 . 김경주 같은 예술가들이 없는 그거요)

 

무엇보다 그를 실제로 만나고 그의 강연을 듣고 난 뒤에도 똑같은 인상을 받았었죠.

그는 정말 쓰고 싶은 시가 있어서 시인이 되었다기보다 시인이고 싶어서 시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다니는 것 같고

그의 시가 왜 점점 난해하게 진행되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왜 저는 김경주가 할말없는 작위적인 시인이라는 생각이 계속 드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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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한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고민한 그리고 힘겹게 그것을 끄집어낸 작품을 좋아합니다.

가령 엄원태 시인의 '물방울 무덤' 같은 시집 을 보면 저런 작위성은 없습니다. 그냥 삶 자체가 그대로 건조하게 내놓아도 그 자체로 시가 됩니다.

 (그 시인이 노년에 이른 사람인 이유도 있지만 )

거기에 주렁 주렁 주석을 달거나 "짐모리슨과 술에 취하고 싶은 밤이야... 에릭클랩튼의 기타줄에 난 나의 빨래를 매달아놓았지.." 굳이 이런 문장을 쓰지 않아도 말입니다.

 

시인 들 중에서도 시인에게 존경받은 시인 이성복 씨의 시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이성복

 

전에 고등학교 때 한참 정치에 꿈이 부풀어 있을 때, 국회의원 딸
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학 막 들어가서
예술과 사상에 들떠 있을 때, 유명화가의 전시회에서 심오한 질문을 해댔다.
한참 쳐다보더니 쌩까버렸다. 다시는 글 안 쓴다고 군대에 가서는,
한참 뜨고 있던 여류시인에게 오밤중에 전화를 했다. 그녀가 정중히 전화를
끊었을 때, 그때도 참 부끄러웠다. 그러나 두고두고 창피한 것은 회사에 들어가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차라리 작위적이고 감성적인 설정으로 자아내는 센치한 분위기 홍대 카페에서 만들어낸 듯한 그럴듯한 문장보다 이성복 시인의 저 솔직한 고백이 훨씬 많은 시적효과와

작품으로써 전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게 시 만이 성취할 수 있는 중심이기도 하구요 . 그러니까 그 중심이란게 저 여성독자 나 자신의 삶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안에 인장처럼 찍혀있어야 저는 진짜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김경주 시인 같은 경우가 음악에서도 많이 발생하는데, 젊은 시절 정말 하고 싶은 말과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있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 음악가가 후년에 성공을 누리고 나서는 굳이 할말도인상도 없는데도 사운드를 쥐어짜내어 음악을 만들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노련하게 편곡된 사운드에  끊임없이 장식처럼 덧붙여지는 가사와 소리들. 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런 작위성은 오히려 방해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릎팍 도사에 나와 이장희 씨가 불렀던 노래는 고작 기타 하나에 아주 어설픈 목소리였는데 충분히 감화가 되었고, 고 김광석 씨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울림도 그렇죠.

그런데 왜 여행기에 혹은 시에 울림도 없이 향수만 가득 뿌리고 미원을 잔뜩 넣어 장식적인 문장으로 책을 내는 시인이 되셨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타블로의 열꽃 같은 음악을 들으면

결국 작품의 질과 감동은 진정성은 삶 그 자체에서 모든게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 밖에서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보고 싶지도 읽고 싶지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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