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금붕어가 일직선의 관 모양으로 된 어항에 길러지는 장면이 나오는 홍콩 영화를 물어보신 글이 있었는데, 그 때 대답을 해드렸습니다.

 

'비룡맹장'

 

그런데 며칠 전에 케이블에서 이걸 방영해 주더군요. 어릴 적에 불법 복제 비디오로 본 영화였는데 그 후에도 케이블에서 몇 번 보긴 했지만.. 아직도 눈길을 잡아끄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엔 화려했던 액션이 자세히 보니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도 있었고, 악당 1,2,3.. 역할로 나온 사람들이 이제 보니 다 한 가락씩 하던, 혹은 하게 되는 액션 배우들임을 새삼 발견하면서 신기한 느낌도 있었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성룡(그렇죠, 청룽이 아닌 성룡)을 보니 뭔가 떠오르는 것들이 있더군요. 그래서 하나씩 간단히 풀어 보려 합니다.

 

이소룡을 이겨라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성룡은 예명입니다.  본명은 '진항생' 이죠.  성룡을 발굴한 사람은 원래 옛날 액션 영화 감독인 '나유' 입니다.  이소룡을 스타로 만들어준 감독이기도 하지만 불화로 끝났던 그가 이소룡 사후 홍콩 영화계에 이소룡을 대신할 배우로서 이소룡을 넘어서라는 의미에서 '성룡'이라고 예명을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항생이라는 이름 없던 배우는 스타가 됩니다.

(현재 성룡은 개명하여 본명이 '방사룡'이라고 합니다.)



아크로바틱 쿵푸 액션물의 창시자

  성룡은, 경극학원 출신으로 실제로는 정식으로 무술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가 영화에서 사용하는 쿵푸는 형의권 계열이라는 얘기가 있긴 한데 사실은 그런 정통 무술이라기 보다는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합을 맞춘 퍼포먼스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스스로도 아크로바틱 액션 코미디의 창시자인 버스터 키튼의 영화에 많이 영향을 받았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성룡 이전의 홍콩 영화는 검을 사용한 시대물에서 혜성 같이 나타난 이소룡의 영향으로 사실에 가까운 권격물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성룡이 '취권'으로 코믹 액션 시대물의 전성기를 열죠. 그 전에도 그런 류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대개는 진지한 권격 액션이었습니다. (유가량, 유가휘가 이 쪽이었죠.) 그리고 다시 폴리스 스토리 등으로 현대를 배경으로 한 코믹 아크로바틱 쿵푸 액션물의 전성기를 엽니다. 물론, 성룡을 따라갈 자가 거의 없는 - 홍금보와 원표가 있었으나 성룡이 중심에 있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코믹 쿵푸 액션이라면 홍금보도 큰 역할을 했다고 봐야하지요.  - 분야였습니다.

 

대역 없이 찍는 사나이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이것이었습니다. 비룡맹장을 보다 보니 너무 확실히 보여서.. 일단 얘기는 이렇습니다.

  성룡은, 대역 없이 위험한 고난이도 액션을 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그것을 하나의 identity로 구축해 온 배우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성룡도 대역을 꽤나 썼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액션을 직접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영화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NG 모음에서도 자주 위험한 액션을 하다가 다치는 장면이 나오지요. 특히 용형호제를 찍을 때에는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큰 부상을 입고 몇 개월 동안 촬영이 중단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성룡의 온 몸은 만신창이로 부상 후유증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아~~~ 대역을 쓰긴 썼습니다. 특히 비룡맹장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비룡맹장의 유명한 액션씬 중에 270도 돌려차기 부분이 있습니다. 성룡은 끝판 대장인 베니 우르퀴데즈 에게 필살기로서 호쾌한 270도 돌려차기를 작렬합니다만.. 실은 그 씬을 찍은 배우는 당시 홍가반 - 홍금보가 창단한 스턴트-액션 전문 배우 그룹 - 소속이었던 '전가락' ('전소호'의 동생이죠. 전소호는 이연걸의 정무문이나 태극권에서 이연걸의 친구나 혹은 악역으로 나왔던 배우입니다.) 이었습니다. 게다가 베니에게 발로 차여서 나뒹구는 (정말 아프겠다고 생각되는)몇 씬에서도 자세히 보면 성룡이 아니라 전가락이 대역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성룡이 영화 촬영 시에 고난이도 액션 장면에서 대역을 쓰곤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합니다. 단지 그래도 위험한 많은 장면은 직접 찍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성룡의 촬영장에 가면 성룡과 똑같은 옷을 입은 대역 배우가 거의 항상 있었다고 합니다. 이 배우들이 미리 액션 합을 맞춰보고 리허설을 해 본 다음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성룡이 액션을 직접 했다고는 하는데요, 그럴 것이면 복장까지 똑같을 필요는 없었겠죠. 아마 제 생각엔, 고난도 액션을 구성해 보고 성룡이 소화하기 힘들다고 판단하면 이 대역 배우들이 액션을 했을 것이고 가능하다면 성룡이 액션씬을 찍었을 것 같습니다.

 

추석의 영웅

  그런 성룡도 주윤발의 영화들을 위시한 홍콩 느와르라는 기이한 조폭 액션 장르물에 밀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몇몇 브랜드에 기댄 작품(폴리스 스토리 같은)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히트작을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룡이라는 이름은, 우리 나라 추석 명절이면 특선영화로 편성해 주는 코믹 쿵푸 시대물의 주인공으로 기억되게 됩니다. 성룡이 스타가 된 초창기 시절에 찍었던 취권이나 소권괴초, 정권, 사학비권, 사제출마 등의 영화들을 명절마다 볼 수 있어서 나름 좋았던 시절이지만 그 덕에 성룡영화는 명절에 나오는 지겨운 영화의 대명사가 되어 버립니다.

 

헐리우드로 간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성룡은,  홍콩의 중국 반환 전에 많은 홍콩 배우들이 그랬듯이 자신의 소속을 정하려 약간은 분주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 즈음에서 90년대 중반에 헐리우드의 문을 두드리게 되죠. 물론 80년대에 캐논볼 류의 영화에 단역에 가까운 조연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으나 크게 주목을 받진 못했고 프로텍트 A 라는 요상한 제목의 영화로 다시 시도는 했으나 제대로 된 성과는 없었죠. 이제 배경이 미국인 영화로 다시 시도를 합니다. 바로 '홍번구' 입니다. 

  홍번구는 북미 흥행에 크게 성공을 하면서 재키 찬이라는 이름을 미국인들의 머리에 새기는 데에 큰 도움을 줬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C.I.A 등의 영화로 계속 서구 사회가 배경인 영화를 만듭니다. 그러다가 정식 헐리우드 영화에 캐스팅 됩니다. '러시 아워' 이죠. 이 영화는 성룡 스타일을 그대로 적용한 헐리우드의 브랜드 영화로 자리 매김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성룡은 주연이라기 보다는 어색한 동양인으로 슈퍼 히어로 같은 능력을 지닌 인물 정도로 묘사됩니다. 버디 무비이긴 한데 아무래도 크리스 터커에 더 무게 중심이 실려서 성룡 자신은 미국인이 바라본 이방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건 상하이 눈 같은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아직 성룡이 단독 주연으로 헐리우드 영화를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언어도 큰 문제로 작용했죠.

 

중화주의자가 된 청룽

 제 기억으로 성룡은 홍콩 반환 전에는 중국에 꽤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반환 시점인 1997년이 다가오자 어찌된 일인지 꽤 열렬한 중화주의자의 모습을 보입니다. 현재도 각종 중국의 국제 행사에 홍보 모델로 얼굴을 비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익숙한 배우 '성룡' 이지만, 어쩐지 지금은 그냥 중국인 '청룽'으로의 모습이 더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굉장히 보수적이고 완고한 언사가 간혹 이슈가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 보수화 되는 것인가 하는 평가를 받고 있죠.

 

 

 

원래 이렇게 길게까지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생각나는 꼭지대로 조금씩 쓰다 보니 꽤 오래 걸렸네요. 별로 새롭지 않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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