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7 12:36
1. 오늘 한 미국인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 친구는 지금 마이클 브라운이라는 흑인 소년이 경찰에게 총맞은 사건에 굉장히 화가 나 있어요. 뭣보다도 브라운이 죽은 이후 미디어에서 이 소년을 프레이밍하는 방식, 그리고 총쏜 백인 경찰에게 엄청난 기부금이 쏟아졌다는 점에 대해서 화가 나 있어요. 이 친구 말에 따르면 전에 그 트레이본 마틴이라는 흑인 소년을 쏜 짐머만이란 사람도 기부금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얼마전 미주리 퍼거슨에서, 청소년들이 차도를 걷고 있었는데, 차도를 걷는다는 이유로 경찰이 17세 소년을 체포하려다, 비무장인 소년을 쏘아죽입니다. 퍼거슨에선 사람들이 시위중이고, 최루탄이 터지고 있습니다.
이 친구 말로는 가자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퍼거슨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트위터로 조언을 준다고 합니다. 최루탄이 터지면 눈을 부비지 말고 물로 씻어내거나 눈물 흐르게 두고 침착해라. 이런 식으로.
그래서 저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최루탄은 내가 어려서부터 맡아와서 경험이 많다. 종합병원 갔다가 최루탄 터지는 한 복판에 선 것이 일곱살 때였다. 문을 닫고 물을 떠놓고 촛불을 켜야 한다고 배웠다...한국은 현재 최루탄을 세계에 수출중인데 한국 본토에서는 최루탄 뿐 아니라 최루액을 쓴다... 최루탄의 경우 다른 시민들도 최루탄 가스를 마시게 되기 때문에 시민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divide and conquer 하기 위해선 최루액이 낫다고 보는 것 같다...(아닌가? 최루탄을 쏘면 시민들이 시위대를 더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는 독재의 역사가 길었기 때문에 최루탄 하나는 끝장나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그래도 너네는 최루액이나 직사 최루탄 (공중을 향해 쏴서 포물선 모양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 직선으로 꽂히는 최루탄)은 아니지 않냐?
이 대화는 이 친구의 한 마디로 끝났습니다.
너네 경찰 민간인한테 자주 총 쏴? 우린 잘못하면 총맞아…
음. 뭔가 서로 바보같은 걸 자랑한 거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2. 그래서 제가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줬어요.
겨자: 얼마전에 한국에서 페리가 가라앉은 사건 기억하니?
친구: 그럼. 기억하지.
겨자: 초동대처가 엄청나게 미흡했는데...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밝히는 특별법을 만들라고 유가족이 시위를 하고 있지. 그런데 그 유가족 중 한 아버지가 단식을 하고 있단 말이지.
친구: 흠.
겨자: 문제는 이 아버지에 대한 중상이 하나씩 흘러나오고 있어. 첫째는 이 사람이 이혼을 했다는 거지.
친구: So what? (참고로 친구는 혼외자식입니다. 스스로를 literally bastard라고 농담삼아 말하지요)
겨자: 둘째는 이 사람이 노조원이라는 거야.
친구: 우리 아버지도 노조원, 우리 할아버지도 노조원인데?
겨자: 셋째 이 사람은 archery하는 취미가 있었다는 거지.
친구: I don’t understand…
겨자: 그러니까, 이 사람이 럭셔리한 취미를 즐기면서 자식들에게 제대로 양육비를 못줬다 이런 뉘앙스인 거지. 그래서 이 사람이 죽은 자식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은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하는 거야. (So they claim his love to the dead daughter is not authentic.) 한달에 삼십불짜리 취미인데도 말야.
친구: That doesn't seem like a lot of money either. 하지만 알리모니를 못냈다고 자식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거야? (이 친구의 생부도 상당히 가난한 사람입니다)
겨자: 근데 실제로 뱅크 어카운트를 보니 그 사람이 궁도를 할 때는 자식에게 양육비를 준 내역이 있어. 그 이상도 줬지. 그리고 보험금도 전처 다 줬어. 하지만 사람들은 보험금을 양보한 것에 대해선 말하지 않지.
친구: Good old character assassination (인격 살인)!
겨자: 그리고 왜 최근에 폽 프랜시스가 한국 방문한 거 기억나? 그때 유가족 대표에서 편지를 줬는데, 거기서 “이혼 후 힘들게 두 딸을 길렀다”고 다른 유가족이 쓴 모양이야. 그걸 갖고 또 이 아버지를 거짓말장이라며 비난하고 있지. 본인이 쓴 편지엔 그런 말 안나오고, 이 사람은 그때 단식 중이었는데도 말야.
친구: 이해가 안가는 점이 있는데...Why is he so important?
겨자: 왜냐하면 이미 사람들은 이 뉴스를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애.
친구: So he is the one keeps the news alive.
겨자: I guess so.
3. 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그들에게 상처를 줬던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사생아인 친구에게 아버지가 뭐하시냐 어떻게 너보다 한참 어린 동생이 있느냐하고 질문을 했다든가, 20대 초반에 이혼한 친구 앞에서 이혼 관련 통계를 무심코 말했다든가, 흑인 친구 앞에서 경찰 이야기를 조심성없이 한다든가 하는 거. (약간 맥락을 설명하자면, 저는 미국 경찰이 엄정한 것 같다고 말을 했고, 이 친구는 이런 말을 해줬어요..흑인 청소년들은 어느정도 나이를 먹으면 어머니에게서 "모든 경찰이 다 네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란다... 늘 조심해라"라고 배운다고. 백인 소년들이 어느 정도 나이먹으면 조심스럽게 성교육받는 것처럼)
저는 운좋게도 부모님이 이혼을 하지 않았고, 형제들하고 사이도 괜찮은 편이라서, 나도 모르게 그런 걸 자랑했다가 혼외자식으로 태어난 친구 앞에서 싸늘한 반응을 얻은 적이 있어요. 어떤 맥락에서였는지 제 스스로 낯뜨거워 잘 기억은 안나지만, "아 그래서 내가 이 모양으로 사는 거겠지?"라고 하고 이 친구는 웃으며 답을 했었던가....정확히 기억은 잘 안나요. 내가 남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다는 이유로 저는 또 얼마나 은연중에 뻐겨댔을까요.
최규석씨가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썼죠.
"그러나 송곳에서 썼듯이 약함을 드러내면 약하다는 이유로도 사람들은 혐오감을 느낀다. 그러니까 약자는 대들지 않으면서 약함을 드러내지도 않는 좁은 영역에 있을 때에 보통사람이 될 수 있는 듯. 약자의 골디락스 구간이랄까."
저는 보통 사람이겠죠? 이 정도 글은 대드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겠죠. 그리고 약함을 조금이라도 드러내서도 안되는 것이겠죠. 그러면 바로 밟히니까요.
2014.08.27 13:49
2014.08.27 13:51
하아... 뭐라고 댓글 달기도 송구스러운 내용의 글이라 약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만 일단은 '약함을 조금이라도 드러내서는 안되는 것이겠죠. 그러면 바로 밟히니까요' 에 너무 공감하고요. 저도 스스로 종종 바꾸어 표현하길 '투구를 벗는 즉시 머리통 날아간다' 라는 지독하고 강박증적인 불신으로 인생을 몹시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2. 에 관해서는 아직 어떤 카톡이나 문자 메시지도 받아보지 못한 게 운일까요? 그 사람들은 이제 이저저도 명분이 없으니 온갖 것을 다 끌어다 이유를 만드나봅니다. 그런 종류의 창의력에서 창조경제가 꽃 피고 경제가 살 찌워지겠죠. 실제로 그래요, 경제 다 죽어간다지만 유가족과 시민들이 농성하는 시청 옆의 백화점엔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시간만 1시간이고(농성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님) 에스컬레이터마다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명절이 다가오니 더하겠지요. 시내 중심가의 소비 현장에서 보는 현상만으로 해석하는데는 무리가 따를 수도 있겠지만 세월호 사고 초기 때 잠깐 말고 언제 경제와 소비가 줄었고 움츠러들었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세계 전반적인 경제불황이야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도 할 거 다하고 쓸 거 다 쓰면서 살고 있는 것 같던데요. 물론 저 역시도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이긴 합니다.
3. 내 본위에서 벗어나 타자의 구석구석을 배려하는 언행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여야 하는 걸까요? 저는 한 가지가 모자라면 한 가지는 넘치는 부분에 대해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이 속물근성을 잠재우느라 열심히도 짱구를 굴리고 타자들을 살피는 것이 때로 너무 피곤하고 오히려 이것이 더 가식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도대체 나는 언제 어디가 더 운이 좋았단 말인가 하면 또 아무 근거가 떠오르지 않는 이 빈곤한 자존감이라뇨.
2014.08.27 15:41
저는 이 글을 읽고 뭐랄까 고마운 기분이 들어버려서 조금 힘이 나는 것 같은데요.
2014.08.27 15:52
송곳에 나온 저 말 정말 와닿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