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드라마 작가입니다.

2014.08.27 13:56

책들의풍경 조회 수:4104

는 드라마 작가입니다. 


아시겠지만 드라마 쓰는 일로 먹고살다 보면 

아무래도 낮밤이 바뀌는 생활을 하기 일쑤죠. 


게다가 혼자 살다 보니 

여러 가지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언젠가부터 

강박증 비슷한 것이 생겼습니다. 


저희 집은 아파트 2층인데, 


저는 집에 있을 때면 창문은 물론 

모.든. 방.의. 문.을. 꼭.꼭. 닫.아.둡.니.다. 


열어두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의 일입니다. 


아침에 넘길 대본 작업을 한참 하던 중이었어요. 

거실에서 뭔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확히 거실인지, 

아니면 창 밖에서 난 건지 애매했고 

그다지 요란하지도 않았습니다. 


쿠웅-, 스윽-. 


잘 표현할 수 없지만 

이런 소리였습니다.


한창 바쁘게 일할 때여서 그냥 넘길 수도 있었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느낌 때문이었는지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져서, 

저는 소리 나지 않게 작업실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내밀어 보았습니다.


분명히 닫혀 있어야 할 화장실 문이 

약간 열려 있었습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화장실은 다른 방보다 

더 강박적으로 닫혀 있는가를 확인하곤 했으니까요. 


이상하다 싶은 순간, 


화장실 문 아래로, 

뭔가 거뭇거뭇한 게 보였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발.이.었.어.요. 


더 정확히 얘기하면 

누군가가 신고 있는 게 분명한 운동화였습니다


문 뒤에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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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한 순간,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가빠왔습니다. 


저는,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정도 만큼 작업실 문을 조용히 열고 

연체동물처럼 몸을 늘여 가만히 작업실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시선을 화장실 문 쪽에 둔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뒷걸음질 쳤습니다. 


머릿속은 아득했고, 

오직 


집 밖으로 도망쳐야 된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현관까지 가는 게 왜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


겨우겨우 현관문 앞까지 가는 동안

화장실 문 뒤쪽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저는 가만히 손을 뻗어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현관문을 소리 나지 않게 열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저는,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손잡이를 잡은 손은 계속 덜덜 떨렸습니다. 

손잡이를 돌리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덜컹, 


현관문 열리는 소리는 참으로 크게 들렸습니다. 

몸 속의 피가 몽땅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뒤쪽에서 '후다닥, 우당탕' 하고 뛰어오는 소리가...


그게 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저는 맨발로 계단을 뛰어내려 갔습니다.

다리가 풀려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습니다.

누군가가 제 머리채를 와락 잡아챌 것 같다는 두려움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희 집은 2층이었고

수위실에는 야간근무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친년 같은 모습으로 난입한 저를 보고

야간근무자가 입을 딱 벌리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인데 중간에 넘어져서 무릎은 피투성이였습니다.

어디서 넘어졌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요.


낌새로 자초지종을 대충 파악한 그가 경찰을 불렀습니다.


나중에 경찰관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범인은 화장실 방범 창을 구부러뜨리고 침입했다고 합니다.

제가 집 밖으로 뛰쳐나가자 그대로 줄행랑을 친 것 같다고.


이렇다 할 피해가 없어 다행이긴 했지만 

경찰관이 이런 말을 덧붙이더군요.


...아가씨 사는 집이 2층이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높았으면 큰일날 뻔했다.

만약 거기가 12층이었고 

범인이 대담하게 계단으로 쫓아왔다면

아가씨는 틀림없이 계단 중간에서 

범인에게 잡혀 낭패를 당했을 거다.

당황해서 도망한 걸 보니 이놈도 초범인 모양인데.

정말 하늘이 도왔다..


그럴 때는 차라리 방문을 꼭 잠그고 

119에 신고하는 편이 낫다고 합니다.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그때 잡히면 정말 빼도박도 못 한다더군요.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 

저는 전세금을 빼서 이사했습니다. 


집주인도 "큰일날 뻔하셨네요" 하고 양해해 주더군요. 

화장실 방범 창은 교체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립니다.

가끔은 꿈에 하얀 사람 발이 보이곤 해요...


**


드라마 작가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실화라더군요. 

들을 때는 그냥 그랬는데 

어제 제 블로그에 적다 보니 좀 무서운 것 같기도 하고,

꾸벅꾸벅할 시간이라 

이거 읽고 잠 깨시라는 차원에서(오지랖이거든?)

올려봅니다. 

무서운 얘기 모으는 중인데

제보해 주셔도 감사. 

이런 건 여럿이 와글와글 해야 재밌을 것 같아서^^.

http://booksfear.com/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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