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생각을 말하면 '찌찌뽕' 이라고 외친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받은 작은 충격과 뭔가 어감이 이상해서 그 단어를 한 번도 발음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요 며칠 계속 술얘기를 쓰고 싶었던 차에, 아니나다를까 어제 게시판에 올라온 술 관련 얘기들이 있었네요, 만 찌찌뽕은 끝내 말하지 않았군요.


  이젠 모인 사람들 다같이 즐겁고 유쾌하고 육체, 정신적으로 뒤끝 없는 술자리가 잘 없다는 걸 난 알아요. 어쩌면 지천에 그런 술자리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도 그런 곳에선 절 부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도 잘 알아요. 가끔은, 대외적 술자리에서의 제 주력은 이대로 끝나는구나 싶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런 건 끝나도 제가 술을 마시는 덴 지장이 없겠죠.


  다만  어제 올린 글들을 찬찬히 보면서 대체적으로는 부정적인 견해와 염려가 섞인 반응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런 반응들에 살짝 속이 쓰린 건 제가 해당되는 항목이 거의 없음에도, 술을 마시는 사람을 보는 시선은 대개가 이렇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저에겐 집에서 마시는 술도 술이고 엄연한 술자리죠.


  지금껏 살면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적은 딱 한 번이었는데 다행히도 그 타이밍에 혼자가 아니었고, 사실 대부분은 술자리를 뒷정리하거나, 계산을 하거나, 취해서 토하는 친구나 연인의 등을 두드려 주거나, 취한 지인(들)을 데려다 주거나 데려 오거나 하던 역할이어서 실제로 제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 본 적은 없고, 이상한 객기로 주량 다툼을 벌여본 적도 한 번도 없어요.(막상 붙어보면 제가 어떨까 싶기는 합니다만).


  예전에 한창 사람들을 만나서 어울리고 다닐 때, 저의 기호와 취향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저를 보면 "딱 봐도 술을 잘 마실 것 같다" 고들 해서 그게 어디 제 얼굴에 나타나나 했어요. 정작 그들은 제가 담배 피우는 거 보고는 놀라더군요. 흡연은 안할 것 같았다고. 그런 얘기를 하도 들으니 그 차이가 나의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걸까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뭐 그 사람들도 어쩌면 초면에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별 뜻없이 한 얘기들이었겠죠.   


  금연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아주 가끔 담배 생각이 날 때가 있는데(그렇다고 피우진 않아요), 예전에도 썼지만 술은 담배의 하수라고 믿는 터라... 마음만 먹으면 나는 술 한 방울 입에 안 대고 살아온 사람처럼 멀끔하니 빈잔만 볼 수도 있겠다 싶은데. 저는 그래요. 오히려 술 한잔 입에 안 대고도 멀쩡한 속얘기를 다 늘어놓을 수도 있고, 곤란한 부탁을 할 수도 거절할 수도 있고, 고백을 할 수도 있고, 절연을 선언할 수도 있고, 누구 뒷담화를 가열차게 까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전 이제 완벽히 비지니스 관계로만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면, 시간의 제약이나 또는 반드시 커피를 마시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지인이나 친구를 만나 커피숍에서 워밍업 하고 다음 코스를 정할 만한 시기가 지났다고. 나도 술을 원하고 상대방도 원하면 금상첨화 만사형통이고요, 나는 원하는데 상대방이 체질적으로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라거나 또는 술을 마실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거나 하는 상황에서도 제가 술 마시고 싶은 걸 이해하고 양해해 준다면 그냥 술집(이라 쓰고 고깃집으로) 갑니다.


  술잔은 같이 부딪혀야 맛이지만, 상대방이 여러가지 이유로 마시지 않는다면 절대 억지로 권하지는 않아요. 물론 이런 경우 상대방은 멀쩡한데 혼자 취해서 고장난 라디오가 되거나, 해선 안 될 얘기를 하게 되면 어쩌나 싶은 품위유지 차원의 노심초사가 기본안주로 곁들여지니 취하지도 않아요. 저는 식탐은 없으되 술탐이 엄청난 사람이지만, 상대가 아무리 양해하고 배려해준다 해도, 마주 앉은 대상이 술 안 마시는 사람이면 내 인생의 비밀을 털어놓는다한들 어느 순간부터 지루해 할 것이 분명하므로 얼만큼만 마시고 일어나야 겠다고 자동으로 주량이 조정되지요.

 

  그래서 사실 이건 불만도 뭣도 아니지만, 살면서 조금 아쉬운 게 저만큼 술을 마시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거요. 이건 단지 술이 세다고라고만 말할 수 없는, 이를테면 초기부터 말기에 이르는 취중농도를 조절할 줄 아는 것이라고나 할까. 술기운에 서로 어느 정도의 과한 진심까지는 수용할 수 있지만 순간 괴물이 되거나 짐승이 되기 전에 딱 멈출 줄 아는, 무엇보다 간밤 술자리의 행태에 아침부터 가슴을 치는 기억을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요즘 같아선 일단 인간관계 자체가 대폭 줄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한창 때도 저와 비슷한 스타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것이죠. 대부분은 과하거나 모자라거나 아니면 울거나 싸우거나 자폭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경우들을 하도 봐서, 술자리 다음날 반드시 전화 걸어서 잘 들어갔는지 묻고 답변을 받아야만 안심하는 버릇은 이때부터 생긴 듯해요.


  어쨌든 인생의 큰 잔재미 중 하나가 술이라고 느끼는 저 같은 사람은, 간혹 알콜중독이 아니냐 라고 의혹에 찬 시선을 보낸는 사람들에게 속으로만 말합니다.
저는 결코 뭔가를 잊거나 괴로워서 취하려고 술을 마시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냥 술이 '맛'이 있어요. 


  덤으로 운동 얘기 간단하게 쓰자면, 누가 뭐라고 해도 운동은 초기에 정말 그 말할 수 없는 지루함을 자기 스스로 극복하지 않으면 습관들이기 어려운 것이고 그렇게 십 수년을 들여도 날마다 가기 싫은 것이며 그 마음 이기고 가도 오늘은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몸에 편한 것만 하고 싶다는) 고민은 늘 방어기제처럼 따라붙지만 어느 순간 보면 땀을 비오듯 흘리며 달리고 있거나 터질 것 같은 대퇴부를 기어이 눈으로 확인하며 스쿼트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을 뿐이죠. 역시나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지 않으니 나는 밤마다 이러고 있구나, 정말 즐거운 술자리가 있으면 나는 지금 운동 따윈 하지 않을 텐데 하던 숱한 불금들.


  그런데 말입니다. 간혹 어떤 약속이 생기고 술자리가 생기면 저는 또 자동적으로 내가 빠지게 되는 운동요일에 대한 집착이 생기면서(이를테면 아주 부득이한 상황을 제외하고 이틀 연속 운동을 빠트리지 않는다는 철칙 같은 거), 모임에 대한 흥미가 반감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저는 제가 어떤 것에 더 중독된 것인지 늘 헛갈리며 살아요. 그러니 제겐 술과 운동이 하나의 뫼비우스의 띠인 거죠. 아니면 찌찌뽕이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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