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술문화에 대한 바낭

2015.11.30 05:34

Beloved_dick 조회 수:2710

베트남에서 황당한 저녁을 보내고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 바이트를 낭비해봅니다.

저는 일 때문에 지금 베트남에 와 있는데, ODA사업이니까 저희가 돈을 주는 뭐 그런 상황입니다. 베트남의 공기업 같은 곳과 같이 일을 하게 됐는데, 정말 가관이더군요. 제가 사업의 특성상 늘 저개발국가나 개도국을 가게 되는데, 일반적으로는 참 다들 돈이 없으시거든요. 씀씀이도 당연히 한국과 비교할 바 아니고요.
그래서 뭘 얻어먹어본 적은 매우 드물거나와, 차비 몇 푼 같이 다니는 분들 식사비도 저희가 다 내는 편입니다.

그런데 대체 이 공기업은 독점기업이라 그런지 어쩐지 몰라도 돈을 엄청 잘 쓰더군요.

야외에서 각종 해산물을 잡아다 먹는 그런 식당에 데려가서는 랍스터에 조개에 한국 기준으로 봐도 절대 싸다고는 할 수 없는 온갖 메뉴를 다 시키고, 맥주를 쉬지 않고 리필(?) 합니다.
갈때는 명함을 던지고 유유히 가시더군요.(와우..)

여튼 오늘 그래서 술을 먹는데, 지난번에 와봐서 대충 분위기는 알고 있었거든요.
딱 우리나라 90년대 분위기에요.
계속 원샷하고, 분위기를 몰아서 미친듯이 먹입니다.
물론 제가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 분위기 망치지는 말자여서, 처음 몇 잔은 맞춰주자 했습니다만. 만난지 십오분만에 대략 천오백cc를 원샷했습니다. 다 마시기 전까지 잔을 들고 계시더군요.
원래도 술을 잘 못하고, 특히 속도전에 취약한데.. 끝없이 이어지는 원샷에 45분만에 화장실로 뛰어가 모든것을 게워냈습니다. 베트남 이름모르는 식당 화장실 바닥에 눕고싶다는 욕구를 참아내느라 힘들더군요..

그 이후에는 산해진미, 특히 제가 조아하는 두리안과 랍스터 오징어 등등이 눈앞에 쌓여가는걸 보면서도 차만 연신 들이켰죠. 음식물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요..

여튼 초반에 죽을뻔(?)한 덕에 맨 정신으로 이 사람들이 노는걸 보고 있는데, 정말 한국이었으면 진작에 정색+ 무안주기 스킬 시전하고+ 신고하겠다 엄포 놓을 상황이 이어지더군요.

제 이름을 가지고 야한 농담을 계속 하질 않나, 애무와 관련된 제스춰를 취하면서 성희롱이 이어졌습니다.
아니 외국인이 그러니까 진짜 난감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물론 그 와중에도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계속 원샷을 이어갔고요.

그리고 2차로 노래방을 갔는데,
(전 노래하고 노는 건 좋아합니다)
허리에 손 올리기와 껴안기+ 뽀뽀하기를 시도하시더군요. ㅅㅂ 내가 무슨 노래방 도우미도 아니고 이것들이 미쳤나 별별생각이 다 드는데, 그냥 웃으면서 쳐내고 열심히 도망다녔습니다.
아니 일하자고 와서 도저히 정색 할 수가 없는거에요!!!!

지난번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일단 오늘은 지난번에 없었던 미친 노인네가 계속 스킨십과 야한 농담을 시전하신데다가,
같이 온 여자분(나이가 좀 있으신 중소 기업의 임원분?)이 정말.. 그 모든 스킨십을 다 받아주시고(러브샷에 술자리에서 뽀뽀도 하셨습니다) 야한 농담에 하하호호 꺄르르 웃어주시는 바람에 더 한 것 같습니다.
윗사람이 그러니, 작년에는 나름 흥겹게 술먹는데만 집중하던 어린 직원들도 마구마구 들이대더군요. (그만해 이 미친놈들아)

제가 싫어라 하는 걸 눈치 채시고(그리고 나름 싱글 여성이라?) 한국 중소기업에서
오신 여성 임원분(다 받아주신분..)과 남자분이 저를 엄청 많이 막아주셨는데(베트남 사람들이 다가오면 중간에 낚아채기?)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죄송스럽더군요 ㅠ 여튼 속으로 이 베트남 후진국 새끼들..하면서 엄청 욕하며 ㅠㅠ 겉으로는 웃으며 술자리를 마무리 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회사 다니면서, 성희롱적 발언과 행동에 매우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왔습니다.
가끔 정신못차리고 회의시간에 야한 농담하거나 하는 경우는 보았지만,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대놓고 진상짓 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는데.. 간만에 정말 더럽고 좋은 구경 했습니다.

맨날 한국 사회 비판만 하다가, 오랜만에 아.. 그나마 한국이 좀 선진화(?)가 되긴 한건가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죠. 적어도 대놓고 하는 놈들은 없으니까요..(물론 드물지만 있음)

위에서 말씀드린 여성임원분은 토목쪽에서 오랫동안 일 하시면서, 그냥 남자들에 대한 기대가 마이너스고.. 모든 걸 다 놓으신 것 같았습니다.

뭔가 안타깝기도 하면서.. 참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오늘 사건(?)을 돌아보건대,
밥공기에 대한 담론이 이루어지는 듀게는 참 좋은 곳입니다. ㅠㅠ
오늘도 듀게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어갑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1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7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68
126021 [KBS1 독립영화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45] underground 2024.04.19 578
126020 프레임드 #770 [4] Lunagazer 2024.04.19 334
126019 아래 글-80년대 책 삽화 관련 김전일 2024.04.19 432
126018 요즘 계속 반복해서 듣는 노래 Ll 2024.04.19 440
126017 PSG 단장 소르본느 대학 강연에서 이강인 언급 daviddain 2024.04.19 448
126016 링클레이터 히트맨, M 나이트 샤말란 트랩 예고편 상수 2024.04.19 463
126015 [왓챠바낭] 괴이한 북유럽 갬성 다크 코미디, '맨 앤 치킨'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4.04.18 539
126014 오늘 엘꼴도 심상치 않네요 [7] daviddain 2024.04.18 473
126013 프레임드 #769 [4] Lunagazer 2024.04.18 343
126012 [근조] 작가,언론인,사회활동가 홍세화 씨 [11] 영화처럼 2024.04.18 911
126011 80년대 국민학생이 봤던 책 삽화 [8] 김전일 2024.04.18 702
126010 나도 놀란이라는 조너선 놀란 파일럿 연출 아마존 시리즈 - 폴아웃 예고편 [2] 상수 2024.04.18 517
126009 체인소맨 작가의 룩백 극장 애니메이션 예고편 [2] 상수 2024.04.18 433
126008 [웨이브바낭] 소더버그 아저씨의 끝 없는 솜씨 자랑, '노 서든 무브' 잡담입니다 [5] 로이배티 2024.04.18 594
126007 이제야 엘꼴스럽네요 [3] daviddain 2024.04.17 492
126006 프레임드 #768 [4] Lunagazer 2024.04.17 349
126005 킹콩과 고지라의 인연? 돌도끼 2024.04.17 441
126004 파리 생제르맹 선수들이 찍은 파리 바게트 광고 [1] daviddain 2024.04.17 520
126003 농알못도 몇 명 이름 들어봤을 파리 올림픽 미국 농구 대표팀 daviddain 2024.04.17 430
126002 아카페라 커피 [1] catgotmy 2024.04.17 42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