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에 가보려고 합니다.

2016.05.23 08:26

게으른냐옹 조회 수:2052

포스트잇 챙겨들고 강남역에 가볼까 합니다.

얼마전에 명퇴를 당했어요. 20년을 일한 직장이었는데 남자들 사이에서 버티려고 정말 애를 많이 썼었죠.
결론적으로는 육아휴직을 했었다는 이유로 명퇴 권유를 받고 퇴직을 했습니다. 처음엔 너무 화가 나고 배신감에 힘들었어요. 그 다음엔 여러가지 현실적인 이유들이 생겨났고 결국 명퇴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이런 자신이 용서가 잘 되지 않아서 아직도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회사생활을 하면서 저는 제가 여기서 버티는게 여성후배들에게 좋건 나쁘건 선례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가 들어갈 때만해도 결혼을 했건 안했건 여성 선배라는 사람이 한두명밖에 없었거든요. 그렇게 멋진 선배는 아니었지만 명예남자로 살지 않고 친정부모 등골도 빼지 않고 아이 한명이라도 키워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있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네요. 지금도 힘들어 하면서도 버티고 있는 여성후배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어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짧게 나마 제 시간이 생겨요. 회사를 다닐때는 꿈도 못 꿀 시간이었는데 이게 좋지만은 않고 맘이 허해서 방황을 하게 됩니다. 요샌 남초사이트에서 남는 시간에 여성혐오글을 볼 때마다 키보드 워리어질을 하고 있었네요. 그나마 요 며칠은 말도 안 통하는 좀비떼를 상대하는 느낌이었어요.
자기들끼리 자기같은 사람들이 많다는걸 확인하면서 승리감을 느끼고 있더라구요.

오늘은 아이도 학교에 보냈으니 강남역에 한번 가 보려고 합니다. 그냥 강남역에 가면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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