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낭 - 7인의 사무라이

2016.08.22 09:44

madhatter 조회 수:883

주말에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나는 가해자의 어머니입니다' 라는 제목의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범인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쓴 일종의 회고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악'이라는 것의 평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아닐까 했는데 그것보다는 어떤 부모라도 자식의 폭력성향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길게 늘여서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두 범인 중 자신의 아들이 아닌 쪽이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었다는 언급을 관련 전문가의 증언을 빌어서 명시하는 것을 보니 자기 변명 혹은 자기 위안의 한 방편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더군요.)


그 중에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 범인인 아들과 함께 본 영화가 '7인의 사무라이'라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저는 7인의 사무라이의 리메이크 작인 '황야의 7인'을 어릴 적에 토요명화 - 혹은 주말의 명화일 수도.. - 로 본 기억이 있을 뿐이었고, (최근에 이병헌도 출연한 황야의 7인의 리메이크 작품이 개봉 예정이더군요.) 원작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도 나중에 왜곡되어서 율 브리너(Westworld를 먼저 봐서 서부 영화 주인공 인상이 강했었죠;), 스티브 맥퀸(이 분을 튜니티의 주인공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테렌스 힐이라는 배우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존 웨인(로버트 본을 존 웨인으로 착각했었습니다;) 등 유명한 서부 영화 주인공들을 묶어서 만든 요즘 말하면 어벤저스 같은 작품이었다고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기억 저 편에 묻혀있던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에 대해 이것 저것 떠 올린 순간, 구스 반 산트의 영화(엘리펀트)가 있었다는 게 기억나서 찾아 보았습니다만, 원래 사건과는 많은 차이가 있게 그려져 있더군요.


그래서 '7인의 사무라이'를 보기로 했습니다.


초반은 조금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7인의 멤버를 모으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더군요. 요즘 나오는 '전문가를 모아서 뭔가를 하는 영화'들은 사실 멤버 모으는 장면은 거의 점프 컷이나 교차 편집 같은 방식으로 휘리릭 넘어가죠. 솔직히 사무라이들 중 규조라는 인물을 얻기 전까지는 너무 뻔한 얘기를 길게 늘어놓는다 싶어 하품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방식의 구성은 이 영화가 원조고 제가 지금까지 본 영화들은 이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나온 영화가 다시 다른 아이디어로 발전되어 다른 영화에 사용되고를 반복했으니 '뻔한 얘기'라는 이야기를 듣는 건 '7인의 사무라이'라는 영화에게는 너무 억울한 것이겠죠.


아무튼 지루했던 것도 지나고.. 7인이 모여서 마을로 떠나는 장면부터 점점 몰입 되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의도했던 바는, 사무라이라는 계급과 농민 계급이 서로 협력을 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갈등의 구조를 가지고 있고 사무라이도 마냥 정의로운 집단이 아니며 농민도 마냥 착하고 순박한 이들이 아니라는 점이 극을 이끌어 가는 가장 기본적인 원동력이라고 어디서 주워 듣긴 했습니다만, 확실히 그런 면들이 곳곳에 강조되고 있구나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사무라이를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마을 사람들이나, 사무라이를 사냥해서 무기들을 감춰 놓은 것이 실은 가장 겁이 많은 사람들이라든지..


가장 힘 없는 노동자나 농민들이 파업이나 시위 등의 방법으로 투쟁할 때 그들의 도덕성을 공격하여 투쟁 자체를 폄하하는 것이 아직도 유효하게 먹히는 프레임 전략이죠. 그 프레임을 깨는 것은 아직도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도망 농민이자 위장 사무라이인 기쿠치요가 분개하여 토해 낸, '농민이 그렇게 된 것은 사무라이 탓'이라는 일장 연설로 바로 마음을 돌리는 사무라이들 장면을 보면 구로사와 감독도 현실을 인지하는 감각은 있으나 해석하는 태도는 조금 나이브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 밖에, 전투 장면은 굉장히 사실적이면서도 일부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장면이 많았습니다. 특히 일검씩에 말 탄 기수를 베어 넘기는 규조라든가, 대장인 간베이의 몸 동작은 굉장히 화려했고, 간베이가 일본식 국궁을 들어 활을 쏘는 장면은 유려하게 보이기까지 하더군요. 일부러 그렇게 구성한 연출로 보이는 것 중 하나는 사무라이가 검을 날려 도적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면 마을 사람들 여럿이 달려들어 죽창으로 끝을 내는 장면이었는데, 이것은 사무라이와 도적떼와 마을 사람들의 폭력의 레이어를 구분 짓는 연출로 보였습니다.


기쿠치요와 규조의 멋진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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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베이의 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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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런 죽창부대가 마무리를 담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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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장비를 갖춘 도적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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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농민들의 폭력은 힘 없는 자가 택한 마지막 수단이자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도적떼 40인을 몰살하는 어찌 보면 잔인한 방법이었음에도 추악하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사무라이들의 폭력은 자신의 전문성을 드러내는 일환으로 사실은 조금 기계적이면서 무감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적떼들의 폭력은 자신들과 농민들의 위계를 확인하여 힘 없는 자들을 착취하는 수단으로써 사실 가장 잔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콜럼바인 사건의 범인이 감정 이입한 폭력은 어느 것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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