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16 17:29
영화를 보는 내내, 케빈의 샤이론에 대한 마음은 대체 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일단 성 정체성부터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여자들과 계속 사귀면서도 샤이론을 대하는건 그냥 친구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이었잖아요.
여자친구와의 이야기를 떠벌리는게 이성애자라서 그러는건지,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습득한 행동을 하는건지,
샤이론에게 해준건 그냥 성에 관심 많을 시기의 호기심 같은 것이었는지, 자기도 게이여서 그런건지..
그 바닷가의 장면은 꽤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수줍고, 미안해 라고 하고, 뭐가 미안해 하며 모래에 손을 슥 문지르는.. 그러나 그 이후에 타의로 서로 헤어지게 되면서 진심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게 돼버렸죠.
시간이 흘러 케빈이 다시 연락해왔을때도 그 마음은 알쏭달쏭 하더군요. 마치 어릴 때 거리낌 없이 샤이론에게 다가와준 것이, 정말 특별하고 가깝게 여겨 주어서인지, 그저 누구에게도 붙임성 있고 사교적인 성격이어서인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여기까지 일부러 온거냐. 연락을 한 이유는 뭐냐. 서로의 대화 내용은 마치 헤어진 연인의 긴 뒤끝을 보는 것 같았지만, 정말 노래를 듣다가 옛 '친구'가 생각이 난건지, 샤이론처럼 마음에 품고 살았던건지는. 마지막 장면 조차 연인의 포옹인지, 친구의 위로인지.
안그래도 깨어질 듯 유리알같은 주인공이 바람불면 훌렁 날아갈거 같은 케빈한테 순정을 바쳐서, 왠지 더 조마조마한 느낌이었네요.
2017.03.16 22:19
2017.03.17 11:11
쓰담쓰담은 거사(...)가 끝나고 난 뒤의 장면인 것 같아요. 약간 지친 표정,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마약상 일은 접고 여기 와서 케빈이랑 같이 요리하면서 살까? 이런 고민이 스쳐지나가는 표정?
이 영화에서 대놓고 섹스 장면이 나오면 갑자기 분위기가 확 깰 것 같아요. 여운과 여백이 많은 영화잖아요.
2017.03.17 07:42
2017.03.17 11:02
저도 모호하긴 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댓글 말씀처럼 둘이 바로 침대직행! 그러면 여운이 오히려 없었을 것 같아요.
둘 사이 성적 긴장감이 분명이 팽팽했고, 주크박스 어쩌고하는 이야기를 할 때 케빈의 눈빛이 예사롭진 않았고... 사실 그냥 생각난 옛날 친구에게 이런 식으로는 말 안하잖아요.
특히 스페샬한 음식을 세심하게 준비하는 케빈의 손놀림과 자세를 보여주는 그 장면에서 '아, 케빈도 무척 떨리고 긴장하고 설레구나'란 걸 느낄 수 있더군요.
2017.03.17 11:21
저는 그놈의 성적 긴장감이 너무 팽팽하게 느껴져서 으.. 이러다 내 신경줄 끊어질 것 같아! 하면서 봤더랬죠.
케빈의 마음은 케빈만 알지 않을까요. 그래도 굳이 좋게 해석하자면, 10년 넘게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 샤이론에게 연락한 것이겠죠?
2017.03.17 13:29
케빈으로서는 새롭게 발견한 감정을 즐길 겨를도 없이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샤이론을 밟아야 했던 과거를 사과하고 용서받는 게 어른이 되기 위해 꼭 필요했을 거 같아요. 저는 이 영화가 둘 사이의 로맨스를 그리려던 건 아니라고 봐서, 케빈이 친구냐 연인이냐는 별로 안 궁금하더군요. 샤이론도 유일하게 몸과 마음을 열었던 케빈한테 두들겨맞고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케빈의 처지를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람에 대한 문을 닫아버린 거지, 케빈을 못 잊어서 순정을 바쳤던 건 아니라 봤고요.
마지막에 와인을 세 병이나 먹어서 머리가 아프다는 샤이론의 대사 이후에 케빈이 샤이론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이 참 인상깊었습니다. 이로써 상처투성이인 서로의 과거를 치유하고 어른으로서(연인으로든 친구로든 말이죠) 현재를 살아갈 준비가 드디어 된 거 같았달까요.
2017.03.1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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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7 17:51
음! 케빈의 입장에서도 하나의 성장 스토리라는건 미처 발견을 못했던거 같네요.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내내 타인으로만 생각했거든요. 두 사람의 성장사로 본다면 이해가 되는 면이 더 많네요.
그쵸 끝까지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그치만 샤이론을 성애의 대상으로 본 것은 분명한 것 같고, 하지만 '아주 어릴 때 애를 낳았고 이제 나는 달라졌다' 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어릴 때 성적지향의 혼란을 겪지만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후에 확립하게 된 것처럼 보이죠. (그러니까, 바이섹슈얼인 것처럼 보이진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후반의 장면이 제겐 걸리는데, 후반에 차에 타고부터는 계속 성적 텐션이 존재하고(정말 그냥 들른거야?)집에 들어가서 둘이 대립하는 장면에서는 '대체 둘은 언제 침대로 가는거야!!' 라는 생각만 계속 했는데(ㅋㅋㅋㅋ) 엔딩 장면은 그냥 구석에 쭈구리고 앉아 쓰담쓰담해주는 것이져.. 헤테로 무비라면 쓰담쓰담을 해도 바로 침대로 직행이었을 장면이라 이 부분에서 약간의 생경을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