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저 자신에 관하여 갑갑한 일이 있어서 익명의 탈을 쓰고 글을 써 봅니다.



저는 30대에 접어든 이 나라의 평범한 남자입니다.

군대 다녀오고, 대학 나오고 취직도 해서 일을 하고 있는 평범한 남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겉보기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는 저 자신이 평범한 '남성'일까? 라는 고민, 갈등을 계속 해오고 있네요.

뭐라고 딱 잘라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육체적으로 남성이되 정신적으로는 남성일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1.

돌이켜보면 이러한 고민의 시작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였던것 같습니다.

드러내놓고 말은 안했지만 친구들이 입은 치마를 보면서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소꿉놀이를 하면 간혹 자처해서 여자아이 역할을 하기도 했더랬죠.


그러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간혹 치마를 입어보고 싶다거나, 예쁜 옷을 보고 입어보고 싶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고,

간혹 집이 비어있을때 엄마 옷을 꺼내서 입어보는 일까지 생겼었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즈음에 하리수라는 사람이 TV에 등장하더군요.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한 사람.


그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고, "나도 혹시 저 사람이랑 같은 부류가 아닐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마침 나온 하리수의 자서전을 읽었었죠.

그런데 그 책을 읽었을때 그의 케이스와 저의 케이스는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꽤 많았습니다.

하리수가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계기는 "원래 나는 여자야"라는 점과 학교다닐때 같은 학교 다니던 남학생을 좋아했다 등등이었습니다.

반면 저의 경우는 "여자아이처럼 꾸미고 싶다"와 "여성이 좋다"라는 차이점이 있었지요.


그렇게 저는 뭔가 나의 경우와는 또 다르다... 는 생각과 함께 "아무래도 여자를 좋아하니 나는 남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여전히 가끔 충동을 못이겨 어머니나 동생의 옷을 입어보곤 하면서(음.. 주기로 따지면 반년에서 일번에 한번정도 였던것 같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대까지 갔다오게 되었습니다.



#2.

제대후, 복학하고 학교에 다니다가 문득 여장카페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의 고민과 맞물려서.. 과연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있을까? 라는 궁금증,

꾸며보고 싶다, 예쁜 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바람에 여장카페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곳은 말이 카페지, 일종의 바(Bar)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장남자 직원들이 여장을 하고자 하는 손님들에게 화장을 해주고, 옷을 빌려주며

그러한 여장남자와 술을 마시는 남자들이 모이는 곳이지요.


인생의 첫 여장을 그곳에서 하게 되었고,

그 후로도 종종 놀러갔었습니다. 


사실 화장하고 옷입고, 그런 저의 모습을 찍고 노는건 상관이 없었어요.

문제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해보려는 남자들이 문제였지요.


(사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여장남자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은 높은 확률로 여장남자에게 관심있다기 보다는 

그냥 여자가 좋은데 그런 상황이 안되니 쉽게 성욕을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90%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엔 안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요)


제가 여자처럼 꾸미고 있다고 해서 남자에게 끌리는건 아니었고, 

도리어 어떻게 해보려는 남자들을 보면서 질겁하는 일도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갈 수 밖에 없었던건,

제가 되고 싶었던 모습, 되길 바라는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기 때문이였지요.


그렇다고 해서 여장을 해서 제가 여자가 되었다고 느끼냐면.. 그건 아니었어요.

행동이야 조심스러워지긴 하지만 저 스스로는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고,

딱히 여성스러운 행동이랄까, 그런 걸 꾸미지도 않았기 때문에(목소리도 그냥 평소 목소리로 얘기했고요)

소위 그쪽에서 얘기하는 TG같은 계열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고, 게이도 아닌 케이스였어요.

그쪽에서는 순수 CD(Crossdresser)라고 부르던데.. 음 그건 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반년에서 일년 정도 여장카페를 종종 다니다가,

개인적인 일이 바빠지고 바짝 집중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

여장하기 위해 샀던 옷들을 싹 버리게 되었습니다.



#3.

그렇게 옷을 싹 처분한 다음에도,

문제는 주기적으로 여장에 대한 욕구가 찾아온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참다가 못해

옷을 사고 화장품을 산다음 혼자 꾸미고 놀다가

어느순간 "아 이건 안돼" 싶은 마음으로 싹 버리고,


혹은 여자친구가 생겨서 아무래도 심적으로 "이건 아니지" 싶은 마음에 싹 버렸다가

욕구를 못이겨서 다시 사거나,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후에 다시 사들이는


그런 삶의 반복이네요.


방금 살면서 다섯번째인가로 여장하기 위해서 모아왔던 옷, 가발, 화장품을 버리고 오는 길입니다.


왜 버리게 되었느냐면.. 점점 너무 위험하게 나가는게 아닌가 하는 점때문이었어요.


하다보니 점점 여성 옷을 입으면서 부족하게 느끼는 부분이 많아지고,

그런 부족함때문에 호르몬에까지 손대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건 좀 아니지 하다가도,

넋놓고 호르몬 관련한 포스트를 찾아보는 저 자신이 조금 무서워졌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에게 대해서 브레이크를 걸고자하는 마음으로 다시 마음을 비울겸 버리고 왔습니다.



#4.

저는 어느쪽이냐면,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 둘로 나누어 따졌을때,

성적 지향은 여성애임은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저의 성성체성이 남성인가는 확실하게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남성으로서의 저자신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성적으로 꾸미고 싶어하는 충동이 드는..

원하는 때에 남성의 모습으로인 저와 여성의 모습으로인 저가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기를 바라게 되네요.


점점 그런 자신의 공존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어서

사실 화장을 하고 외출도 해보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런 저의 모습을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건 바라지도 않지만 누군가 한사람이라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두려움,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저를 인정해주지 않고 질색하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이 너무 크네요.



#5.

일단, 앞으로 다시 참고 지내려고 합니다.

무언가에 빠져든다는게.. 어쩌면 저의 정확한 성정체성과는 다른 방향으로 저 자신을 끌고들어갈지 모른다는 부담이 너무 커서요.


머리 좀 식히고 생각해보려고 합니다만..

많이 외로워지는 밤이긴 해요.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읽어주신 분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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