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기...(자본의 성질)

2019.10.17 13:51

안유미 조회 수:395


 1.전에 썼듯이 나는 내가 직접 일하는 것보다 내 돈에게 일을 시키는 걸 좋아해요. 어째서일까요? 내가 게을러서? 아니면 고부가가치를 발생시키는 고급 노동자가 아니어서? 뭐 다 맞을 수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예요.


 내가 직접 세상에 나가서 내 몸을 직접 굴리면 반드시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법이거든요. 그건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도 그래요. 의사는 좆같이 구는 환자, 이상한 신념을 지닌 환자랑 대면해야 하고 변호사를 해도 돈낸 만큼 이상하게 구는 놈을 만날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해도 이상한 진상은 늘 있고요.


 그야 좋은 직업으로 갈수록 이른바 '진상'을 만날 확률은 극히 낮아지겠죠. 하지만 진상이란 놈들은 악플과 비슷하거든요. 연예인들이 선플 999개를 받아도 단 하나의 악플에 상처입는 것처럼, 세상에 나가서 직접 몸을 내둘리면 몸에 유리조각 하나라도 박힐 수밖에 없는거예요. 남의 돈을 먹는다는 건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도 힘든 면이 반드시 있거든요.



 2.그래서 자본은 너무나 좋은거예요. 내가 세상에 나가서 내 몸을 굴려댈 필요 없이, 나의 돈을 세상에 내보내서 나 대신 구르게 만드는 것...즉 '투자'를 시도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10만원을 예로 들어봐요.


 '이봐, 10만원아. 널 XX주식에 보낼 테니 거기서 신나게 구르고 있거라.'라고 하면 돈은 그 종목에 가서 열심히 구르거든요. 그리고 그 주식이 20% 올랐다면 2만원을 가지고 되돌아오는 거죠. 나는 상처받지 않고 20%를 먹은 거죠.


 

 3.어렸을 때는 금융자본과 매력자본 중 매력자본이 더 좋은 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했어요. 왜냐면 매력자본은 시간에 대비해 감가상각되긴 하지만, 어쨌든 전성기인 시절에는 무한히 써먹을 수 있으니까요. 


 위에는 금융자본을 가지고 투자를 하면 본체인 나는 상처입지 않고도 돈번다고 썼지만 그건 투자를 성공했을 때의 얘기예요. 투자가 실패하면 자본은 깎이게 되고 나는 그만큼 대미지를 입으니까요. 


 그리고 금융자본의 문제는, 투자를 위한 돈과 소비를 위한 돈을 결국 분배해야 한다는 점이예요. 그러면 투자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소비할 돈...오늘의 즐거움을 느껴야 할 돈은 적어질 수밖에 없고요.



 4.휴.



 5.예를 들어서 3억을 들여서 차를 산다고 해 봐요. 이런저런 유지비나 세금까지 합쳐서요. 당연한 소리지만 3억을 써서 차를 사면 내 돈이 3억원 사라져요. 한데 3억원을 투자해서 10%를 벌면 3천만원이거든요. 1년에 10%의 수익을 올린다고 가정하면, 월 3백만원가량의 수익을 포기하는 짓거리죠. 


 그리고 이건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닌 게, 투자의 결과는 마음의 여유와 직결돼요. 사냥꾼에게 3억원의 총알이 더 있는 것과 3억원의 총알이 줄어들어 있는 것...어느 쪽의 명중률이 더 높을까요? 사냥꾼이라면 똑같은 총을 쏴도 3억원의 총알을 더 쟁여놓고 있는 게 훨씬 마음의 여유가 있는 법이예요. 


 어쨌든 금융자본의 문제는 이거예요. 뭐 엄청난 부자가 아닌 이상은, 더 큰 사냥감을 잡기 위해 오늘의 즐거움은 포기하며 살아야 한다는 거죠. 100의 즐거움을 쫓고 싶어도 총알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10~20 정도의 즐거움으로 만족해야 해요.



 6.하지만 매력자본은 시간에 비해서만 감가상각되기 때문에 당장은 얼마든지 써먹고 얼마든지 과시해도 되거든요. 자신의 매력으로 돈을 버는 데도 써먹을 수 있고 사람들이랑 만나는 데도 써먹을 수 있고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는 데에도 써먹을 수 있죠. 불특정 다수의 기를 죽이는 데에도 쓸 수 있고요. 돈이랑 똑같아요. 관심있는 사람들 만나고 기를 좀 죽여주고 싶은 놈들 기죽이는 데 써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요.


 니체가 말했던가요? '사람들이 권력을 원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다.'라고요. 말 그대로 자본을 행사하는 것은 곧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거든요. 또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요. 또다른 더 좋은 사람말이죠.


 문제는, 돈의 경우는 행사할 때마다 그만큼 돈이 깎인다는 점이예요. 스스로 출혈을 감수해야만 하는 거죠. 하지만 매력의 경우는 출혈 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발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자본이 우위예요. 



 7.하지만 이리저리 관찰해 보니 역시 매력자본의 단점도 많아요. 위에는 매력자본이 뭐 대단한 거처럼 썼지만 글쎄요. 실질적으로 큰 돈을 땡기려면 결국 스스로를 내둘러야 하거든요. 금융자본의 경우는 투자의 리스크가 싫으면 그냥 그 돈을 쌓아놓고 써버리면 돼요. 돈은 돈이니까요. 하지만 매력자본의 경우는 그냥 집에 놔두면 별 가치가 없거든요. 거울 보면서 흐뭇해하는 거 말고는요.


 이렇게 쓰면 어떤 사람들은 이러겠죠. 왜 굳이 자신을 팔아야 하냐고요. 그냥 적당한 일자리 하나 잡고 일하며 살아도 되지 않냐고 말이죠. 그러나 노동력은 노동력이지 자본이 될 수 없거든요. 노동력을 발휘해봐야 매일 출근하면서 한달에 한번 월급 받고 끝이니까요. 자신의 매력자본이 아직 열화되지 않았을 때 그걸로 돈을 제대로 땡기는 게 합리적인 거니까요. 돈 욕심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돈 욕심이 있다면요. 



 8.하지만 매력자본의 문제는, 팔아먹으려고 마음먹는 순간 노동도 해야 한다는 거죠. 초슈퍼울트라크레이지엑설런트맥시멈경국지색이 아닌 이상,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에게 돈을 갖다바치는 멍청이는 없으니까요.


 자신을 프로모션해주는 회사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야 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며, 책잡힐 만한 짓은 하면 안돼요. 물론 그렇게 군중들에게 자신을 박리다매로 파는 방식이 싫으면? 자신에게 제값을 쳐줄 소수의 부자를 물색해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방에 큰돈을 주는 몇몇 부자에게 자신을 팔려고 하면 글쎄요. 사람 꼬라지가 우스워지는 일이거든요. 한번에 슈가대디를 만날 수 있다면 그런 전략도 좋겠지만, 그건 힘들어요. 상대에게 모멸을 주려고 하는 부자를 만나고 기분만 더러워지는 일을 여러 번 겪어야하죠. 그리고 부자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부자가 아닌 놈들에게 속는 일도 많고요.



 9.한데 대중들에게 자신을 박리다매로 파는 것에 성공한 사람...즉 '스타 연예인'이 된다고 해도 모멸을 피해가기는 어려워요.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군중들이 떼로 달려들어서 물어뜯거나 말도 안 되는 악플을 달아대는 놈들이 꼭 있거든요. 이 세상에 자기자신을 내둘린다는 건 결국 상처받는 걸 감수해야만 하는 일인거죠. 




 

 -----------------------------------------------





 뭐 누군가는 이럴 수도 있겠죠. '그래서 결국 돈만이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거지?'라고요.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죠. 모든 게 다 지나보고 나면 남는 건 돈뿐이긴 해요. 내가 가졌던 모든 것이 열화되고 나면 남는 건 돈밖에 없으니까요. '인생에서 중요한건 돈밖에 없다'라는 말은 맞는 말이긴 한데 그건 모든 게 다 지나갔을 때를 기준으로 말하는 거예요. 김영하란 자가 '지나보니 친구는 중요하지 않더라.'라고 말하지만, 그건 그 순간이 지나갔으니까 하는 말이잖아요. 


 하지만 인간은 순간 순간을 살아가지 인생 전체를 부감하면서 사는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지나치게 인생 전체를 부감하듯이, 내려다보듯이 살아가려는 태도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고요. 아무리 자본이 좋은거라도, 일단 오늘 행복해야 행복한 거거든요. 인생에서 더 큰 사냥감을 잡고, 거기서 또 더 큰 사냥감, 또다시 더 큰 사냥감을 계속 잡는것만이 중요하다면 결국 오늘은 행복할 수 없는 거니까요. 


 나는 그것을 요즘...배워가고 있는 중이죠. 언젠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일단 오늘 행복해야 한다는 거 말이죠. 가진 자본의 성질과는 무관하게 말이예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74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1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656
125965 스폰지밥 무비: 핑핑이 구출 대작전 (2020) catgotmy 2024.04.11 88
125964 총선 결과 이모저모 [22] Sonny 2024.04.11 1338
125963 오타니 미 연방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9] daviddain 2024.04.11 398
125962 10년 전 야구 광고 [2] daviddain 2024.04.11 129
125961 22대 총선 최종 의석수(업데이트, 21대와 비교) [1] 왜냐하면 2024.04.11 502
125960 [핵바낭] 출구 조사가 많이 빗나갔네요. 별로 안 기쁜 방향으로. [14] 로이배티 2024.04.11 1127
125959 프레임드 #761 [2] Lunagazer 2024.04.10 71
125958 [핵바낭] 아무도 글로 안 적어 주셔서 제가 올려 보는 출구 조사 결과 [22] 로이배티 2024.04.10 1063
125957 [왓챠바낭]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의 영화 만들기 이야기, '영화 너무 좋아 폼포 씨' 잠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4.04.10 171
125956 간지라는 말 [7] 돌도끼 2024.04.10 346
125955 우리말에 완전히 정착한 일본식 영어? [5] 돌도끼 2024.04.10 362
125954 메이헴 (2017) catgotmy 2024.04.10 91
125953 아일릿, 정병기, 김사월 [1] 부치빅 2024.04.10 204
125952 '브레이크 댄스' 돌도끼 2024.04.10 86
125951 위화감 1도 없는 시구자들 daviddain 2024.04.10 182
125950 민주진영은 200석을 넘을수 있을까 분홍돼지 2024.04.10 287
125949 조커: 폴리 아 되 예고편 [1] 상수 2024.04.10 152
125948 [넷플릭스] '리플리', 인상적인 장면 몇 개 (스포일러 포함되었을지도) S.S.S. 2024.04.10 171
125947 [넷플릭스바낭] 고지라 말고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를 봤어요 [15] 로이배티 2024.04.09 231
125946 넷플릭스 찜한 리스트에 대해 catgotmy 2024.04.09 14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