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주의자

2020.09.24 03:37

Sonny 조회 수:1544

어떤 영화 리뷰 유튜버가 디지털 교도소 사건을 보고 엄청나게 분개하더군요. 그는 배트맨 시리즈를 인용하면서 이런 일은 픽션이니까 용납이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으며 무고한 피해자는 단 한명도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딱히 틀리진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정의는 표면적으로는 다 맞으니까요. 그의 말에 수많은 댓글들이 동의하며 사적 제재의 위험을 엄중히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픽션의 훌륭한 고민은 그 고민을 다루기 위해 이미 훌륭한 세계가 배경으로 설정되어있는데 현실의 고민은 픽션을 따라잡을만큼 훌륭한 배경이 있지도 않다고. 배트맨의 세계에서는 고담이라는 음울한 도시와 약탈 및 불법밀매를 저지르는 갱스터들이 있지만 한국이라는 세계에는 너무 비루한 성범죄자들과 자발적 무능을 맹신하는 법관들만 있지 뚜렷한 힘을 가진 조커나 배트맨 같은 자경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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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트맨을 보면서 "그래도 사적제재는 안돼"라는 교훈을 얻는다면 그건 좀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영화 배트맨이 관객에게 깊은 고뇌를 일으키는 이유는 고담이라는 도시가 법이라는 질서 자체로는 도저히 자체회복이 불가능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배트맨의 질문은 이 대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공적제재를 도저히 신뢰할 수 없고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아주 정확하고 신속한 사적제재는 과연 공적제재의 대체재가 될 수 있는가. 즉 이 질문은 법이라는 질서의 파괴와 불능에 대한 고통을 일단 느껴야 성립하는 질문입니다. 일반 세계의 최후의 상식과 약속인 법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배트맨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자격이 있습니다. 배트맨이 옳으냐 나쁘냐. 이런 질문은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배트맨조차도 자신의 정의를 계속 의심하고 피로를 느껴서 화이트 나이트를 세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법을 일시적으로 대체하는 자경단 본인조차도 자신의 행위를 긍정하지 못합니다. 그 모든 행위를 법적 질서의 회복을 위한 과정이라 여기죠. 그래서 그는 하비 덴트를 공적 제재의 새로운 상징으로 세우려고 애를 씁니다. 배트맨을 긍정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의 영원한 활약과 그의 초법적 의미를 긍정하지 않습니다. 일시적이면서 이상적 법을 구현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되새길 뿐이죠. (하비 덴트는 배트맨의 적극적인 공모자입니다) 현실의 관객이 배트맨을 보고 해낼 수 있는 생산적 성찰은 배트맨의 전면적인 긍정이나 부정이 아니라 배트맨이라는 초법적 존재가 태어나게 된 세계와 그가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가게 된 그 계기,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세계를 감각해보는 것에 있을 겁니다. 히어로이즘은 늘 그 자체로 뭔가 히어로익한 게 아니라 불가피한 희생과 분투를 필연으로 만드는 세계의 부조리에 있습니다.


법의 경계선을 넘어가는 모든 저항과 투쟁은 법 자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법이 옳은가. 옳은 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옳은 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데 왜 누군가는 저렇게 법적으로 시끄러운 상황을 굳이 만들어내는가. 그러니까 브루스 웨인은 왜 박쥐가면을 쓰고 배트맨이라는 자경단 행위를 하는지 그 질문을 현실세계로 옮겨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세계의 사람들은 아주 간단하게 판단하고 결론을 짓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법은 지켜야지... 노조, 성소수자, 여성의 성질을 가진 사회적 존재들이 하는 투쟁에 대해서 주로 이런 반응들을 합니다. 변화가 절실하다못해 생존의 영역을 판가름하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법을 이야기하고 그 변화의 난폭함을 지적하는데서 멈춥니다. 그 심판관들은 과연 보수적이어서 그럴까요. 저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기 문제가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딱히 노조가 아니고, 성소수자가 아니고, 여성이 아니니까 남의 입장에서 훈수를 두고 자신의 기분을 절대적인 가치관처럼 과장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여자들이 음란하고 게으르고 거짓말만 하고 운전도 못하는데다 남자등골 빼먹고 성범죄 사건을 조작해서 무고한다는 편견들이 "김치녀"와 "삼일한"으로 돌아다닐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노동자가 회사에서 갑자기 짤릴 상황이 되어서 못나가겠다고 할때는 딱히 말이 없습니다.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노동의 권리를 뺏길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헌법적으로 명시되어있는 가장 기본적 법적 권리가, 모든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깨닫는 자유와 평등이 다른 인간에게 보장되지 못하고 파괴될 때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자기 일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표현의 자유이거나, 문제이긴 하지만 끼어들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일베와 오유가 온갖 혐오표현을 할 때는 침묵하다가 메갈리아가 생겨나니까 갑자기 수많은 남자들이 인터넷의 폭력과 언어폭력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자기 일이 되었으니까요. "일베나 메갈이나"라고 많이들 이야기했죠. 메갈리아라는 커뮤니티는 1년을 못버티고, 길게 쳐봐야 6개월정도 번영을 누리다가 사라졌습니다. 메갈리아에 그토록 분개하던 남초 커뮤니티들은 이제 일베에 대해 어떻게 하고 있나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일베가 나쁜 건 너무 당연하고 딱히 신경쓰지 말자고 포기해버립니다. 어느 한 쪽은 도저히 참을 수 없고 기어이 응징을 해야하지만 다른 한 쪽은 그 전부터 오랫동안 참아왔고 그 이후로도 별 말 없이 지속상태를 누리게끔 허용하고 있습니다. 법과 질서를 부르짖고 어떤 누구도 함부로 권리를 침해당해서 안된다는 그 위대한 도덕이 이렇게 편향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 일이 아니니까요. 이건 아주 간단한 현상입니다. 남의 인권은 나 자신이 잠깐 어색해하거나 불편해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하찮고 아무튼 금지되어야 하는 압도적 논거가 됩니다. 


그 신성한 법리와 권익이 과연 어느 때에 더 치명적이고 위급하게 지켜져야 하는가. 법의 절대성을 이야기하며 자경단의 자격을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경단이 나쁘고 좋은가, 이것은 배트맨에 대한 질문만큼 무의미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배트맨이 왜 나왔고, 배트맨이 뭘 하고 있으며, 배트맨 다음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것이 우리가 해야할 질문이고 찾아야 할 답입니다. 디지털 교도소에 질문을 해봅시다. 저래도 되냐고요? 모릅니다. 원칙적으로는 나쁘죠. 그걸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디지털 교도소의 부정확함과 악랄함에 회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여기서 더 질문을 하지 않습니까? 디지털 교도소는 왜 나왔습니까? 디지털 교도소는 뭘 하고 있습니까? 디지털 교도소가 사라지면 그 대체재로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여기서 "남의 일" 이론이 적용됩니다. 그런 건 모르겠고, 아무튼 나쁘고, 저런 짓은 멈춰야 한다... 고담 시티가 얼마나 무너져가든, 배트맨은 아무튼 가면을 벗고 자수해야 합니다. 자경단을 비웃으며 법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한 법만큼은 잘 지켜진다는, 아주 좁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 정답은 누군가의 대답이나 질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절대로 묻지 않는 질문 자체에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이 세상은 평화롭고 안전하며 공평하다는, 이 세상을 지탱하는 질서가 견고하다는 질서에 대한 신봉입니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해?' 저항과 반발의 필요를 의심하는 그 말에는 굳이 저렇게까지는 할 필요는 없다는 질서에 대한 경험적 신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안당하니까요. 한 개인의 도덕의 니즈를 가장 잘 증명하는 것은 그의 부작위입니다. 분노와 저항이 필요가 없는 세계가 안전한 도덕을 구축하고 평화로운 도덕 외의 도덕을 치외법권으로 상정합니다. 법을 이야기하고 질서를 이야기하면서 법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투쟁을 일축해버리려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으니까요. 법치의 효율을 아직까지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상위 계급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울분과 경계심이 없습니다. 본인들을 지켜주는 질서를 믿으면 되니까요. 바로 눈 앞에서 인간이 모욕을 당하고 품평을 당해도 그건 그냥 웃고 넘기거나 좀 나쁘긴 한데 무시하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 됩니다. 자기들은 그렇게 안당하거든요. 법에 기대면 되거든요. 본인들이 당하는 폭력이나 불행이 집단적 역사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모든 차별이 그렇듯이요. 


자경단을 비웃고 사적제재의 위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나요. 그것이 바로 이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입니다. 난 모르겠고, 그건 너희들 일이고, 아무튼 내가 볼 때 좀 괜히 그러니까 나대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아주 간단한 원칙과 그 원칙이 파괴된 두 특정 지점을 이야기할 뿐 그 지점 사이의 아뜩한 간극과 그 지점 양끝으로 펼쳐진 수많은 질문들은 곧바로 사라집니다. 사적제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긍정하고 있나요. 공적제재의 파괴를 긍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대단한 법적 철학이 있는가. 아니오. 그런 거 없습니다. 제가 왜 '신앙'이라는 단어를 썼냐면, 법에 대한 이들의 긍정과 신뢰가 현실의 논리를 초월하는 자기최면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변호인>이 천만 넘게 흥행을 하고 빨갱이 대학생을 혀차며 꾸짖는 송강호를 임시완이 경멸하는 장면이 널리널리 회자되어도, 그 영화는 절대 현실에 연결되지 못합니다. 왜냐고요. 민주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은 자기자신에 관한 거지만 여자, 성소수자, 노동자, 경제적 빈자, 고졸 같은 정체성은 절대 "자기 자신"에 관한 게 아니거든요. <광해>에서 이병헌을 향해 기득권 중신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대의 법"입니다. 그 영화도 천만을 넘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과는 무관합니다. 이병헌과 같이 분노하고 흐느껴도 영화관 밖에서는 독점적 질서에 대한 원칙주의자로 다들 돌변하는 것입니다. 여자, 성소수자, 노동자, 빈자, 고졸은 "백성"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을 표현할 때 그것은 "특정 사안"이 됩니다. 그건 보편적 일도 아닙니다. 인류의 반을 차지하는 특정 집단이 어떤 폭력을 당해도 그건 그냥 "특정 사안"입니다. 절대로 인간의 일이나 흔한 일이나 우리 모두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분노에 대한 이해도 단순해집니다. 그냥 맞으니까 친 게 되는 겁니다. 맞았어도 참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안맞거든요. 디지털 교도소를 가지고 정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탄식하지만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야기안합니다. 디지털 교도소는 누가 세웠나요. n번방 피해자의 가족입니다. n번방 재판은 잘 돌아가고 있을까요? 조주빈은 매일 매일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법 체계가 성범죄자의 반성문을 받으면 형량을 감해주는 시스템이거든요. 조주빈은 피해자를 기어이 법정에 호출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법이 그렇게 되어있으니까요. 홍대 누드모델 도촬 사건이 터졌을 때, 유례없이 신속하게 조사가 진행되었고 가해자는 곧바로 얼굴이 털렸습니다. 손정우 얼굴을 우리가 알고 있나요? 모릅니다. 디지털 교도소가 신상을 털었으니까 알려면 알 수 있겟죠. 손정우 형량 얼마나 받았을까요. 1년 6개월입니다. 성인 남자가 군면제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짧은 구속기간입니다. 소위 범죄 안저질고 군대 가고 뺑이 치며 살기 VS 1년 6개월 형량 받고 군대 안가고 몇십억 벌기 의 실사판입니다. 승리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검찰에서 조사 받고 있지 않습니다. 군대에 가서 어떤 재판을 받고 어떤 형량을 받을지 우리가 알 수 조차 없죠. 소라넷 구속하는 데 몇년 걸렸습니까. 디지털 교도소 잡는데 20일 걸렸습니다. 또 말해볼까요. 바로 어제, 2020년 9월 23일 군 현역 남성장교가 본인의 성관계 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한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집행유예 받았습니다. 9월 21일에는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었네요. 끝이 없군요. 다시 한번 배트맨 세계관으로 다시 말해봅시다. 자경단이 뭐가 필요합니까?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박쥐가면을 쓴 미치광이에게 열광합니까? 고담시는 이렇게 안전하고 법이 잘 돌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안전하고 공적 제재는 원만하게 돌아가는데요. 남자는 안전하지 않습니까.


질서는 선의 다른 말이 아닙니다. 질서는 그냥 힘을 뜻합니다. 질서를 선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힘을 바로 끌어올 수 있고 상대적으로 힘이 센 사람들입니다. 힘이 있고 힘을 누릴 수 있으면 당연히 힘이 선이 되겠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나 힘은 질문할 거리가 되고 힘에 부딪혀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힘이란 무엇인가. 어떤 힘도 쓸 필요가 없는 힘입니다. 힘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힘을 키우고 힘을 휘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힘인 질서는 균등하게 나눠져있습니까? 여자는 남자와 똑같이 도촬이나 모욕이나 폭력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갑니까? 힘이 있는 사람과 힘이 없는 사람의 세계는 이렇게 나뉘고 남일과 내일은 이렇게 나눠집니다. 남일에 대해서는 충고가 아주 쉽습니다. 누군가에게 없는 질서가 자신들에게는 있거든요. 질서야말로 가장 거대한 자본입니다. 자취를 해도 남자는 옆집에 여자가 사나 안사나 궁금해하지만 여자는 방범창을 달고 개인용 방법알람을 검색합니다. 남자들은 자신있게 말합니다. 왜 그렇게 유난떨어? 꼭 그렇게 시위를 해야해? 너무 특정 사안에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거 아니야? 왜 신상털이 같은 사적제재에는 그렇게 관대해? 질서를 이미 누리고 있는 자들에게는 생존이나 안전이나 모욕당하지 않을 권리를 이미 충분히 누리고 있기에 그 질서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것에 반응합니다.


질서주의자들은 조두순의 안위를 걱정합니다. 조두순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조두순이 어떤 짓을 또 저질를 수 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조두순 범죄의 피해자 부모가 조두순이 1km 근방으로 이사온다는 사실을 하소연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법이라는 질서가 이미 그렇게 정해져있고 조두순은 이미 정해진 형량을 살지 않았습니까. 남자는 그런 일 안당하거든요. 이미 일어나고 있는 공적제재의 실패와 균열은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안빈낙도를 충분히 누리고 있으니까요. 일어나지도 않은 사적제재가 더 큰 고민거리입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법적 실패는 딱히 이야기할 것도 아닙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들 하겠지요. 그렇게 정의가 중요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한명도 생기면 안된다고 하는 이들이, 왜 법의 실패, 질서의 공백이 생기는 그 지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요. 별로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어쨋든 법은 지켜져야 한다... 어떤 고찰도 없는 이 단순한 당위명제는 딱 하나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단 한마디로 그것을 고정시키고자 하는 이들의 독점욕구입니다. 질서주의자들은 질서를 사랑합니다. 그 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퍼져나가든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 질서의 가치가 너무 저렴해지거나 흔들리면 안됩니다. 화폐처럼 그 가치는 일단 불변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숭고한 목적을 가졌어도 법은 아무튼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곧 약속이지만 그 약속이 어느 한 쪽이 자꾸 파기를 당하고 보호도 배상도 받지 못해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자신의 법은 지켜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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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3184886625897824&mediaCodeNo=257&OutLnkChk=Y


그러면서도 “기본적으로 이런 일들이 왜 발생했는지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것”이라며 “성폭력, 특히 아동과 관련된 문제들은 워낙 처벌 수위가 낮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나서서 내가 사회를 위한 복수라도 공익적 목적으로 하겠다, 이게 디지털교도소 취지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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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배트맨을 다시 보고 싶군요. 여러가지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이 한 것도 같으니까 다른 영화 이야기를 더 해보면 어떨까요. 사적제재, 자경단에 대해서 <시카리오>의 예를 드는 건 어떻습니까. 법적 고발과 심판 대신 암살을 행하는 알레한드로에게 그 누구도 저러면 안된다고 개인적 도덕론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카르텔을 싹 쓸어버리는 공적제재가 완전히 붕괴하고 오히려 법이 그것을 돌보는 그 현실을 개탄합니다. 이렇게 영화가 공적제재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의 슬픔과 절망을 이야기할 때는 다들 동감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인터넷 댓글만 달고 비판하는 글만 써도 그것은 엄청난 반사회적 질서파괴행위이자 이중적인 행위가 됩니다. 그렇게 위험해져도 된다는 거냐고 묻는 이들에게 어떤 사람들은 자꾸 설명하고 설득하려 하지만... 글쎄요. 저는 언제나 구체적인 질문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가 몇명이 더 강간을 당하고 살해를 당하고 성범죄를 당해도 디지털 교도소는 절대 나오면 안되고 집행유예가 판치는 법원을 마냥 믿고 있어야한다는 말이군요...? 알레한드로는 왜 검사씩이나 되어서 또 다른 카르텔의 암살자 노릇이나 하는 것일까요? 그러면 안되는데 말입니다. 혹시 우리는 그를 이해해버리면서 질서의 반역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런 일은 절대 영화에서만 일어나고 법과 그 수행자들은 아주 깨끗하니까 그런 건 상상으로만 즐기면 되는 것일까요?


@ 룸살롱에 가는 행위를 비판받아 마땅한 사회악이라고 칩시다. 질서주의자들은 어떤 남자들이 룸살롱에 다니고 그것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그러면서 여자를 모욕하는 걸 크게 문제삼지 않습니다. 룸살롱 가는 것이 언제 악이 되느냐. 그것은 룸살롱 가는 걸 버젓이 떠들고 다니는 남자를 다른 누가 욕할 때, 저 욕하는 인간도 룸살롱에 다닐지 모른다면서 혐의를 씌울 때 악이 됩니다. 질서주의자들의 질서는 참 신기한 면이 있습니다. 눈 앞에 뻔히 보이는 사회악보다 위선의 증거로서 가능성을 "상상"할 때 더 큰 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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