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하나 없는 김밥 맛집 이야기

2012.11.03 16:50

Ano 조회 수:5384

목동의 소소한 음식점들이 그렇듯, 이 김밥집은 아주 의외의 장소에 있습니다.

목동 6단지, 5단지, 그리고 파리공원 사이의 어떤 상가 지하에 있죠. 

이상하게 이 상가는 상권이 좋지 않아서 200평 가량 되는 지하는 늘 불이 꺼져있어 컴컴하고

폐점된 가게 자리들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을지로 공구상가같은 느낌의 불빛이 지하 맨끝에서 고객을 맞이합니다.


테이블 단 3개에 4명이 앉으면 꽉 차서 누군가 움직일수도 없어요.

주인아줌마가 땀을 뻘뻘흘리며 김밥을 싸면 아저씨가 배달을 가는 그런 시스템입니다.

주문량이 폭주하면(인근 병원 의국에서 시킨다던가, 초등학교 운동회가 있다던가, 그냥 그날따라 목동주민들이 김밥이 무척 먹고 싶다던가) 바로 마비되고 말죠

전화하면 늘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주문을 받는 주인내외가 안쓰러워 항상 주문 후 직접 찾으러 가곤 합니다.  


목동 주민들은 다 알면서 쉬쉬하고 블로그 포스팅도 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기 때문에 검색해도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이거 평소에도 배달시키면 받아먹기 힘든데, 알려져봐. 오죽하겠어"


주 메뉴는 소다미 김밥입니다.

이걸 김밥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누드김밥에 가깝죠.

고슬고슬하게 밥을 짓는 대부분의 김밥집과 달리 약간 질퍽합니다.

쌀이 찰떡처럼 밀도있게 차 있어서, 아무래도 다이어트에는 영 좋지 않은 음식입니다.

그 뿐인가요. 마요네즈에 버무린 게맛살과 아주 얇게 썰어 흔적만 남긴 오이, 계란, 단무지 정도만 들어 있어서

영양학적으로도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캘리포니아 롤 이랑 좀 비슷합니다.

게다가 이걸 와사비 간장에 찍어먹죠.


(남의 블로그라서 미안한데 일단 이렇게 생겼습니다. 

http://blog.naver.com/banaline?Redirect=Log&logNo=10150609429  )


저 흐물흐물한 김밥을 싸기 위해서는 쿠킹호일이 필요한데 쿠킹호일을 김밥말이 삼아 꾹꾹 싸고는

칼로 호일 채로 잘라내 호일을 둘둘둘둘 벗겨냅니다. 꼬투리가 압권인데, 꼬투리 부분은 두 개를 잡고 가운데다가 

마요네즈 게맛살을 쳐덕쳐덕 발라서 꾹 붙여서 다른 비닐봉지에 담아줍니다.

1인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서 양이 상당합니다.

저 마요네즈 게맛살은 사실 집에서 만들어서 그냥 비슷하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느끼해지더라는 목동 주민들의 증언이 있죠. 


상추가 듬뿍 든 쫄면도 이상하게 뭘 넣었는지 맛있고, 상추쌈밥도 맛있고, 뭔가 먹다보면 

이상하게 맛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라볶이도 맛있고, 이 김밥이 워낙 밥량이 많아서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는게 최고의 궁합입니다. 


환상의 비율은 소다미2 + 쫄 + 라볶이 = 4명

돗자리 펴고 신문 펴고(왜냐면 저게 흐물흐물해서 다 흘리니까)

먹으면 이것이 목동인들이 추천하는 지고지선의 식도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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