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은행에서의 해프닝

2012.10.15 22:10

Bitter&Sweet 조회 수:2891

복권 당첨 후 걱정 글을 보고 나니 지난 금요일에 은행에서 있었던 일이 문득 생각이 나네요.

때마침 점심 시간도 지나고 금요일 치고 사람도 그닥 많지 않아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 쪽이 시끌시끌 하더군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려는 찰나에, 갑자기 엄청난 노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동안 나 무시하던 놈들! 다 죽었어, 대충 뭐 이런 내용의 고함이었는데요, 목소리 하나는 참 좋더군요-_-; 발성도 쩌렁쩌렁하고.. 프로야구 캐스터인 임용수씨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은 그런 목소리였습니다. 

은행에서 왜 이런 고함이 들려오나 싶어서 뒤를 보니,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약간 초라한 행색의.. 입고 있는 점퍼에는 페인트와 더러움이 묻어있는 그런 풍채 좋은 아저씨더군요. 잠시 의아한 눈빛을 보내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눈 마주치면 해꼬지라도 당할 까 그냥 하던 대로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돌려 창구 쪽을 응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관심은 쏠려 있고, 우렁찬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지라 본의 아니게 그 해프닝을 끝까지 관람할 수 있었지요;;

- 10억이야 10억!
- 너네는 로또 1등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 xx, 그 동안 나 무시하던 xx들 앞으로 두고 보자
- 야 나 무시하지 마, 내가 누군 지 알아? 로또 1등 됐다고! 10억! 10어어어어어억!!!!!!!!!!!

대충 이런 대사들을 크게 외치며 이 아저씨가 은행을 마구마구 헤집고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사람들을 때리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창구 앞 소파에 서서 저런 말을 큰 목소리로 말 하고 간혹 돌아다니고 있으니 무력으로 저지하기도 무엇했던지 청원경찰이나 행장도 난감해 하고 있는 기색이었습니다. 
사람들도 겁에 질려서 저 사람을 어떡해야 하나.. 하는 눈치였는데 갑자기 이 분이 "어이 아저씨! 10억 그대로 저금하면 이자가 얼마요, 이자!" 라고 큰 소리로 창구를 향해 소리 치는 겁니다. 창구의 직원 분들도 얼음처럼 굳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으니 마침 그 근처에 있던 직급 높은 분이 아저씨와 조용히 상담을 하시더군요. 

한 5분 동안 상담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아주 속 시원하다는 말투로, "아이구 고마워요. 내가 좋아서 그래, 좋아서~ "라고 말하더니 다시 소파 쪽으로 가서 "10억.... 10억. 10억...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라고 무슨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대사를 치더니 계속 서성거리는 겁니다 ㅡㅡ;; 
전 마침 그 즈음에 제 순번이 끝나 은행을 재빨리 빠져나왔지만, 그 아저씨는 나갈 생각도 없고 딱히 은행에서 볼 일도 없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그 은행은 동네에 있는 국민 은행이었을 뿐이고;;;;;;;;

정말 저 분이 로또에 당첨 된 것이라면 저렇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한테 연극 하는 것 같이 위협적인 언동으로 자랑 해 봤자 본인에게 득 될 것이 하나도 없을텐데.. 싶은 생각이 집에 와서도 계속 들더군요. 저 웃음 소리라던가 하는 말투가 정말 작위적이란 느낌인데, 정말 가감없이 그 분이 말 한 그대로 적은 것이거든요. 목소리까지 쩌렁쩌렁해서 한 편의 연극을 본 것 같은 그런 느낌까지 들었을 정도니까요; 그러다보니 더 현실성이 떨어지고, 해프닝을 벌인 장소도 영 수상쩍고 말이죠ㅡㅡ;;; 만약 사실이라면 대체 왜 은행에서 저런 일을 벌였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알 길이 없네요 ^^; 

로또에 큰 관심이 없어서 1등이나 2, 3등 수령액이 얼마인 지도 모르겠지만, 진짜라는 가정 하에 10억이면 사실 한 번에 만져보기 쉬운 액수는 아닌지라.. 제가 저 분 입장이라면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살텐데 말이지요. 막상 그런 궁금증이 들었지만, 워낙 운 없기로 유명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 그냥 로또 살 돈 모아서 맛있는 것 사 먹고 책 사서 읽는 게 그냥 행복이라고 여기고 살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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