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좋아했던 남자가 있어요.

잠이 안 오고 시험공부는 안 하고 머리카락만 뜯다가 생각이 나서 써 봐요.

언젠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런 날에,

혹은 좀 더 가을에 가까웠던 날에,

이런 시각 이런 밤 늦은 때에

라디오를 타고 그 사람에 대해 썼던 제 사연이 방송되었던 적이 있거든요.




저는 그 남자 이름을 몰라요.

저보다 나이는 많았어요. 열 살 쯤. 혹은 더.

저는 그 사람과 대화할 때면 아저씨라고 불렀어요.

제가 자주 가던 카페의 사장님이었으니까요. 저는 안경과 교정기를 낀 고등학교 2학년 여자애였어요.

카페 근처에 있던 영어학원을 다녔죠. 저는 지독히도 맛이 없던 그 까페의 커피를 일부러 사먹으러 갔어요.

학원이 시작하기 전, 첫 번째 수업이 끝났을 때, 아니면 두 번째 수업까지 마치고 나서. 그 때쯤이면 아주 밤이 되었죠. 

열두시 반인가 그랬어요. 저는 학원 계단을 내려오면서 카페에 불이 꺼졌는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했어요.

멀리서 보이는 까페의 간판에 불이 켜져 있으면 제 얼굴도 밝아지고 꺼져 있으면 울적해지곤 했죠. 

하지만 그 남자는 까페가 입점해 있는 그 건물 맨 꼭대기층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싶어 그 앞을 서성이는 건 똑같았어요.

웃기는 게 지금 그 까페 이름은 생각이 안 나네요.

케냐였던가. 되게 어이없는 촌스러운 흰색 바탕에다가 kenya라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영문자가 갈색 동그라미 안에 박혀 있는 거였다, 아 이제 생각이 나네요. 그 간판이.


추운 겨울에도 덜덜 떨면서 그 앞을 지키곤 했는데, 더운 여름에는 자전거를 타고 거기까지 달려서 가게 앞 벤치에 누워 있곤 했는데,

그렇게 절박하게 좋아했는데도 커피를 사러 갈 때면 저는 일부러 점순이처럼 퉁명스럽게 굴곤 했어요. 눈도 잘 못 마주치면서 틱틱거렸어요.

아저씨, 하고 시비를 걸듯이 말을 시작했는데 어찌나 그렇게 말을 꺼내기도 어렵던지

내 입에서 나오는 아저씨라는 말은 내가 슈퍼 아저씨나 동네 아는 아저씨를 부를 때와는 다른 아저씨인것처럼 들렸고 실제로도 그랬죠.

아저씨, 하고 부르면서 주문을 할 때면 손발이 차가워지고 저절로 몸이 덜덜 떨렸어요.


흠, <아는 여자>를 많이 봤던 기억도 나는데 아무튼.


친구들에게 나의 이 짝사랑을 고백하고 나서

친구들에게 그 남자를 이야기할 때가 오면 저는 장국영 까페 아저씨라고 불렀어요.

까페남이라고도 했어요.

장국영남이라고도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짝사랑하던 사람이었을 뿐인데도 저는 그 사람을 마치 남친 자랑하듯이 보여주고 싶었던지, 

가까운 친구들을 꼬드겨서 그 까페로 불러내곤 했어요. 어떻게 생각해? 잘생겼어? 멋있지 않아? 이런 걸 물어봤던 것 같기도 하고. 

장국영 닮지 않았어? 라고 물어봤던 것 같기도 하고. 

친구들은 그 까페의 커피가 더럽게 맛없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장국영을 닮았다는 건 으에에에에- 하면서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고 부정했어요.

하지만 그는 장국영을 닮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장국영남이라고 불렸어요.

한 번이라도 제 성화에 못 이겨 그 까페를 찾았던 친구들은 그 이유를 이해했어요.


왜냐면

그 정말이지 위치 선정을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자리 잡은, 쓸데없이 휑뎅그렁하니 크고

전혀 까페와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재질의 의자들이 널려 있던 그 까페에는

조금이라도 자리가 있는 곳이면

벽마다 장국영의 사진이 붙어 있었거든요.


저는 그 때 장국영을 많이 좋아했어요.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 때는 참 더 많이 좋아했답니다.

학원을 다니면서 몇 번을 지나치면서도 눈길도 주지 않았던 까페에

우연히 들어섰다가 벽이며 천장이며 다닥다닥 붙어 있던 장국영의 영화 포스터와 사진을 발견하고

저는 아지트를 찾은 것처럼 기뻤고 여기 이 곳에 나와 같이 레슬리를 좋아하는 또 한 명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어요.

그 때는 아직 사장이 누군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어요.


몇 번을 더 순전히 장국영 사진 때문에 맛없는 커피 맛을 참아가며 그 곳을 방문했을 때였어요.

저는 그 남자를 만났어요.

아니 그 남자를 봤어요.

유리창 밖에서 서성이는 그 남자를.

그 남자는 자기가 소유주인 까페인데도 불구하고 들어오지 않고 바깥을 서성이고 있었어요.

마치 그 곳을 처음 본 사람처럼.

들어가야 하는 건지 아닌지 결정을 내리려는 것처럼.


그 때는 그 남자가 왜 좋은지 몰랐는데

벌써 7년이나 지난 지금은 알겠네요.

아, 7년이군요. 구체적으로 얼마나 지났는지는 셈해보지 않아 몰랐는데 7년이나 되었다는 걸 저도 이 글 쓰면서 지금 알았네요.

일곱살만큼 나이를 더 먹은 저는 이제 왜 제가 그 남자를 좋아했는지 알아요.

그 사람은 저와 같았던 거에요. 그 때의 저와 닮았다고, 저는 그때 알지 못하면서도 생각했던 거에요.



저는 그 남자의 서성거림이 좋았던 거에요.

멈칫거리고 서성거리고 망설이는 그 모습을 아직도 기억할 수 있어요.

분명히 자기 것인 까페 앞에서도 그는 망설이고 있었어요. 들어갈지 말지.

이 곳이 내가 속한 곳인지 아닌지.

한참이나 바깥에서 안을 쳐다보던 그 눈동자에는 망설임과 의혹이 가득했다고, 저는 믿고 있어요.

왕가위의 슬로모션처럼 그 모습이 느리게 보이던 것을 기억합니다.

사람의 눈동자라는 게 그렇게 느리게, 아주 느리게 오랜 순간 동안 천천히 흔들리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또렷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사실 전 중학교 2학년 때 좋아하던 여자애를 통해 진작 깨달은 바 있지요.

아무튼 그 사람을 저는 그런 고등학교 사춘기 여자애의 감성으로 잔뜩 둘러싸고 카페라떼를 시키면 나오는 그 위의 거품처럼 부풀렸어요.


허공에 붕 떠서 이리저리 휩쓸리고 아파하고, 과연 내가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하는 이런 일 말고 다른 걸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한 살 많던 친구에게 굉장히 중2병의 에센스-.-를 모아놓은 것 같은 문자도 보내고, 이해할 수 없었던 여고생들의 세계에 매번 놀라고 스트레스를 받고 제가 아는 가장 미친 인간 중의 하나인 담임한테 맨날 쪼이면서 성적을 올리라는 요구에 시달리던,

내가 어디에 속해있는 지 모르겠고 어디에 속해야 할 지 모르겠고 어디가 내가 속한 곳인지를 알 수 없던 사람은 사실 저였는데

그냥 그 남자에다가 저를 대입시켜서 좋아한 거죠.

압니다. 그 남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게 밖에서 외관을 보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는 걸.

하지만 저는 그 눈빛을 좋아할 수 밖에 없었어요. 레슬리를 좋아한다는 것까지 겹쳐 저는 그가 나와 동류라고 생각했죠. 아 우습죠.



그래도 그 사람은 좀 특이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해요.

나이답지 않은 구석이 있었죠. 젊은 남자가 굉장히 애늙은이처럼 굴었어요.

어떻게 해서였는지 맞다, 저 그 남자 번호도 알았어요. 지금은 정말 개도 안 가질 팬텍 앤 큐리텔의 아주 옛날 버전의 무겁고 딱딱한, 파란색과 보라색이 섞인 색의 핸드폰 자판을 꾹꾹 눌러서 문자 한 마디 한 마디를 고심해서 적었죠.

대체 어떻게 해서 그 번호를 알았던 거지? 기억은 안 납니다.

아무튼 저는 까페 카운터 뒤에서 친구랑 장기를 두곤 하던 그 남자와 조금씩 조금씩 친해졌어요.

그래요, 젊은 남자의 취미가 장기 두기 이런 거였다구요. 까페 뒤에서.

레슬리를 그렇게 좋아하는 점 때문에 저는 혹시 이 남자가 게이가 아닐까도 생각했어요. 버릴 수 없는 후죠시의 근성.
그는 그냥 여자친구는 없고 가끔 대신 커피를 만들던 (그래서 그 형편없던 까페 커피의 수준을 일시적으로나마 크게 향상시키던) 여자는

자기의 누나라고 설명해줬어요. 까페가 입점해 있던 건물은 자기 집안 거였어요. 

예전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러 서울에도 잠시 있었는데, 지금은 접고 집에 내려와서 집에서 차려준 돈으로 까페를 하고 있었던 거죠.

한량같은 사람이었어요. 커피는 맛도 없고, 커피에 관심도 없고, 가게 문도 잘 안 열고, 내부에는 레슬리 사진이나 더덕더덕 붙여 놓고.

장사에는 관심이 없었죠. 사실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그 점이 더 좋았어요.

어디에도 관심이 없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한없이 떨며 눈뜨고 흩날리는 한 송이 눈, 처럼 그가 생각되었어요.


이제 별로 할 말이 없는데 음.

언젠가 그는 나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어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 접고 내려왔다는 자기 개인사를 들려주면서요.

어린 학생이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자기는 후회한다고, 되지도 않는 훈계를 나한테 해서 저는 풉 하고 비웃었어요.

저는 공부를 잘했거든요. 

사실 그 사람이 일하는 까페에서는 제가 다니던 학원도 보였어요. 3층짜리 학원 건물 벽 전체에 제 이름이 쓰인 플래카드가 커다랗게 걸려 있었죠.

토익 시험을 잘 봤거든요. 물론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 이름도 쫙 쓰여 있었지만.

나는 외치고 싶었어요. 저 공부 잘해요. 그거 알아요? 저게 내 이름이에요. 아저씨는 내 이름 알아요? 저게 내 이름이라구요!


결국 뭐 그 아저씨는 제 이름을 몰랐고

어느날 까페도 사라졌고 그랬다는 거. 언제 그 까페가 문을 닫았는지, 그때 제 심정이 어땠는지, 요런 건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그냥 언제 망해도 놀랍지 않을 까페였기 때문에.

저는 다만 그 수없이 붙어 있던, 크고 작은 레슬리의 사진이 어떻게 되었을 지 궁금했어요.

중국 가는 친구한테까지 부탁해서 어렵게 사온 거라고 들었는데 버리진 않았을 것 같고. 어떻게 되었으려나? 처분했으려나?

자기 방 벽에 걸어두었으려나? 으 뭐야, 게이같이...

이렇게 생각했던 건 기억나요.

하지만 그 까페가 사라지고 ping pong인지 뭔지 하는 웃기지도 않은 골프웨어가 대신 입점한 뒤에도

그 건물 앞을 저는 자주 자주 자주 자주 자주

맴돌았어요.

1년까진 아니고 한 반 년 정도인가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눈을 밟으면서 그 앞에 있었던 기억과 여름에 자전거 타고 그 앞에 있었던 기억이 나니까요.

계절이 그렇게 바뀌는 동안 저는 아저씨를 좋아했고 김C가 진행하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도 써서 소개도 되고 그랬습니다.

노래 세 곡을 대면서 이 중 아무거나 틀어달라고 했는데 김C는 지금 딱 이 기분일 거라고 하면서 델리스파이스의 환상특급을 틀어줬어요.

제 사연을 다 읽고 나서 나이 차이가 믾이 난다는 이유로 제인 마치와 양가휘가 나오는 '연인' 이야기를 해서 기분이 팍 상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아저씨와 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이러면서 툴툴댔는데 아직도 그 덕분에 '연인'은 못 보고 있습니다.

아우 어떻게 그런 육체적인. 야한. 색정으로 넘치는. 못써요 떽. 저는 순결하니까요.



그 남자를 못 본 지도 정말 7년이 넘었네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그 아저씨는.

장국영을 아직도 좋아할까요.

사진들은 버리지 않았을까요.

이제는 나이가 꽤 될테니, 과연 결혼은 했는지 공무원 시험에는 합격했는지.

자기가 속한 곳을 이제는 찾았을지, 찾았다고 생각하면서 그 안에서 살고 있을지.

이런 질문들을 다 할 수는 없을 테니, 만일 다시 만난다면 하나만 묻고 싶어요. 

역시나 헤매고 방황하고 아파하는 것처럼 보이던, 그래서 제가 그토록이나 좋아하던 레슬리의 사진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냐고.

언젠가 고향에 내려갔다가 길 모퉁이에서 쓰레기로 내버려진 한 무더기의 장국영 포스터를 발견하는 일만 없길 바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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