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에 처음 ‘눈 떴던’ 때라고 할까요, 파블로 네루다식으로 표현해서 “시가 나를 찾아왔을 때”가 중3 때였던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방학 때 시골 친구집 가서 곁눈으로 힐끗 보았던 친구 누나가 무지무지 보고 싶어지고, 사타구니에서 이상한 털이 나기 시작하면서 생의 비린내를 느꼈다고 할까요, 어느 날 갑자기 산다는게 시시하게 느껴지고, 가을날의 신작로 앞에서 어디론가 멀리 훌쩍 떠나버리고 싶던 이른바 사춘기 징후 속에서 문학이라는 열병에 감염되고 말았습니다. 그 무렵 김소월의 ‘초혼’이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고독’이라는 시를 접하고는 그만 내 가슴이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자주 가슴이 무너져내렸는데, 심지어는 최희준의 ‘하숙생’이라는 유행가만 들어도 그랬습니다.


요즘 문학 강연 같은 데 가면 나는 반드시 이 이야기를 합니다: “가슴이 무너진 적이 없는 사람은 시를 쓸 수 없다.”고요. 그 가슴 저리고, 애리고, 물클한 것 때문에 사람들은 뭔가를 씁니다. 이 흉곽내과적인 증세야말로 말하자면 시의 센서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먼저 가슴 속에 내장되어 있어야 살아가면서 지각하고 경험하는 어떤 일이나 오브제들이 시가 될 만한 것인지 아닌지 감지되며, 그 가운데 딱 시가 될 만한 것이면 부저가 뚜뚜 울리면서 문이 열리는 것이지요. 

사실 그 시절 나는 시가 뭐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냥 ‘견딜 수 없어서’ 시 비스무리한 뭔가를 마구 썼습니다. 그 가운데 몇 편을 골라 그 당시 중고삐리들이 많이 보던 ‘학원’이라는 잡지에 투고해 보았습니다. 그게 어떻게 당선되는 바람에 오늘날 내 인생이 이 지경 이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만, 정작 당선작품이 발표된 잡지를 받아보았을 때는 기쁘기는커녕 실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박목월 선생이 심사평을 쓰셨는데 아주아주 혹평이었기 때문입니다. “황군의 감수성은 소년답지 못하고 병적이다.” 그 당시 얼마나 충격 먹었으면 이 나이 되도록 그 문구를 또렷이 기억하겠습니까? 

시에 정나미가 딱 떨어져버렸는데, 또 고등학교 진학하자 왠 불양배 같은 문예반 선배들이 소문 듣고 와서 포섭하는 통에 그 당시 학내 조폭 써클 이름인 ‘들장미’, ‘진’, ‘아카시아’와 동격인 ‘원시림’이라는 문학동인지 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우리 동인들 중에는 천변 너머에 있는 여학교에 주로 포코스를 두고서 숫컷들의 깃털세우기의 일종으로서 문학을 사칭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다들 ‘나는 천재가 아닐까’ 하는 망상 속에서 랭보나 이상을 흉내 내면서 고등학생이라는 게 너무 갑갑하고 억울한 문호 행세를 했드랬습니다. 모자도 일부러 찢어서 재봉틀로 박은 걸 쓰고 호크도 한두 개쯤 풀고, 인생의 쓴맛을 이미 다 본 것처럼 최대한 불우한 표정을 지으면서 생담배를 길게 내뿜으며, 대학가겠다고 공부한 졸라 하는 범생이들을 가련하게 여기며, 카프카가 어쩌구 사르트르가 어쩌구 저 혼자 잘난 체하는 데카당을 연출하고 다녔죠. 

2007학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입생 여러분! 

예술가가 되기 위한 험난한 도정에서 그 문지방을 막 넘어온 여러분에게 오늘 내가 별로 아름답지 않은 나의 ‘호밀밭의 파수꾼’ 시절을 먼저 이야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의 시행착오, 나의 낭비와 방황을 통해 여러분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입니다. 

그 학교 들어가기 어렵다는 걸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여러분은 이미 주위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여러 번 축하를 받았을 겁니다. 또 마땅히 그럴 만합니다. 예술영재 교육을 목표로 정원을 다 뽑지 앟는 소수정예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전국 예술계 대학에서 상위 3% 이내에 속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기에 앉아 잇는 여러분 가운데 ‘난 천재야, 천재임에 틀립없어!’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난 천재인가 봐.’라고 조심스럽게 위안하거나 ‘최소한 영재는 되겠지’라고 다행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내가 천재나 영재가 아니면 어떡허지’라고 불안해 하는 사람, 아니면 ‘난 이도 저도 아닌데’ 하고 절망하고 앉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을 앞으로 교육해야 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우려스럽고 걱정되는 분이 첫 번째 부류의 그 천재 확신범들입니다. 누가 봐도 천재인 자가 그렇게 확신하는 데에야 할 말은 없지요. 근데 그게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확신하거나 그렇게 자기 연출하는 자들, 이것 정말 난치병 환자들입니다. 말도 안 되는 작품을 해가지고 와서는 교수한테 대든 학생들 있어요. “선생님 후회하실 거에요. 이건 1세기 뒤에나 그 진가를 알아볼 불후의 명작입니다.” 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불만 내지는 항의에 가득 찬 그 눈빛을 보면 거의 그런 의미에서 교수의 지적에 승복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물론 1세기는 아니더라도 10년 뒤에는 알아줄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금 내가 못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나도 나의 기준을 재점검하기도 합니다. 내 곧 학교 때 지방 문단의 시인이기도 했던 문예반 지도 국어 선생님께 똑 같은 감정을 가진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부류의 학생들이 졸업하고도 10년 가까이 되는데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적어도 예술가 수업 시대에 천재 연출자들은 아무 득이 없다고 말해도 무방한 듯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학생은 눈만 높아가지고 아무것도 못하거나 안 하는 년/놈들입니다. 이 년/놈들은 수업시간에 교수 강의를 팔장끼고 삐딱한 시선으로 노려보면서 감상만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머리 속에 뭐가 좀 들어 있다고 혹은 미리서 발랑 까져가지고 남이 해 놓은 것에 대해서는 혹독하게 평할 줄은 아는 데 저더러 하라고 하면 그 만큼 못하거나 안 되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안 합니다. 안 하고 못하니까 더 까탈스럽고 사람이 비비 꼬여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잘 해봤자 조금은 세련된 딜레탕트이거나 문화소비자밖에 안 되는데, 내가 왕년에 그래봤기 때문에 제일 경멸하는 부류들입니다. 

영향받기를 꺼려하거나 거부하는 자는 난장이가 됩니다. 우리 학교 교수님들은 대부분 각 장르 분야에서 국내 최고 예술가들, 마에스트로, 명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술 입문자인 여러분은 그 분들로부터 유보 없이 영향을 받으십시오. 어린 새가 어미 입 속에 든 먹이를 꺼내어 먹듯이 여러분 선생님 속에 든 것을 꺼내 먹으십시오. 그것은 반쯤 소화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빨리 자라게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속에 숨겨놓은 것까지 훔쳐내십시오. 13세 된 미켈란젤로는 그의 스승 기를란다이요가 숨겨놓은 데상을 서랍에서 몰래 훔쳐내어 임모하고는 가짜를 그럴 듯하게 조작해서 갖다놓습니다. 

예술의 긴 역사를 보면, 예술 창조는 일종의 관습으로부터 시작한다 걸 알 수 있습니다.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찬란한 르네상스 예술의 명작들은 다 보테가(공방, Workshop)에서 스승(마에스트로)과 제자(도제) 사이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관습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관습이 중앙선원근법인데, 이것이 이 시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동일한 시형식See Form이었으며 그들은 세계를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는 그 시대만의 양식 속에서 보티첼리, 다빈치, 라파엘로는 그 스승들에게서 영향받거나 훔쳐낸 모방을 통해 종이 한 장만 한 차이를 예술사에 남겨놓았던 것입니다. 다만 그 차이는 작은 것이었으나 결정적인 차이였던 거죠. 예술사는 그것을 기억한 것이고요. 

천재론에서 모차르트 현상처럼 전무후무한 경우가 아직도 없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처럼 소름끼치게 신비스러운 천재마저도 그 이전에 이태리 양식, 프랑스 양식, 만하임 양식 등 기존의 음악적 관습을 두려워 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에서 무를, 즉 주어진 것으로부터 주어지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닮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오늘 2007학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입생을 맞이하고 또 여러분을 환영하는 이 자리의 화두로서 나는 공자 논어 자로편에 나오는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 어록을 되새기고 싶습니다. 군자라는 말을 예술가란 말로 대체한다면 무릇 예술가는 같이 어울리되 결코 같아지지는 않는다 하겠습니다. 

신입생 여러분! 그러므로, 자신이 천재인가 아닌가 고민하지 말고 무조건 저지르십시오! 세잔느는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인 에밀 졸라의 소설 속에서 실패한 지방 화가의 전형으로 묘사됩니다. 고흐도 유일하게 그를 이해해 주었던 동생 테오에게마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실패자였습니다. 이 불행한 예술가들은 그런 처절한 고립 속에서 미친 듯이 그렸습니다. 

여러분 가슴 속에 끓고 있는 것, 치밀어 오르는 것, 그 뭉클한 것, 소위 미학자들이 '예술의욕'(Kunstwollen)이라 부르는 것을 존중하고 그것을 따라가십시오. 여러분의 본능을 믿고 자신의 표현 충동에 이끌려 가십시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나는 잠이 안 온다, 이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사는 재미가 없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나는 죽을 것만 같다는 내적 필연성을 가지고 여러분 자신의 '예술에의 의지'에 복종하십시오. 아니, 차라리 예술을 가지고 노십시오! 예술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가볍게 장난감처럼가지고 노세요. 여러분 전공의 도구들, 피아노든 해금이든 HD 카메라, 컴퓨터, 무대 또는 혼합매체든, 이것들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닳아뜨리십시오. 이런 유희 정신이 중요합니다. 재미나게 가지고 놀다보면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결국 예술이란 '유희'로부터 '발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까요. 

남극이 바라다 보이는 파타고니아 빙벽 위에 알바트로스라는 새가 알에서 부화하여 깨어납니다. 새끼 새들은 어미의 부리를 마구 쪼아 불룩한 목에서 먹이를 꺼내어 먹습니다. 다 자란 새끼는 첫 비상을 위해 몸보다 훨씬 커진 날개를 질질 끌면서 뒤뚱뒤뚱 벼랑을 향해 질주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새들은 날기 위해 온몸을 바다에 던집니다. 그야말로 투신한 겁니다. 어떤 새들은 그대로 바다에 곤두박질쳐 죽어버립니다. 그러나 어떤 새들은 수면 위에서 가까스로 허공을 차고 날아오릅니다. 마침내 해벽을 지나가는 바람을 만나 구름을 뚫고 올라간 그 놈들은 지상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 알바트로스가 됩니다. 

2007학년도 신입생 여러분! 여러분이 이 학교를 졸업한 후 저 창공 너머 공기마저 희박한 드높은 곳에까지 여러분을 날게 할 자신의 날개를 이 학교에서 만드십시오. 입학을 축하합니다. 


2007년 3월 2일 

총장 황지우



뜬금없지만 갑자기 생각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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