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본 영화 결산 두 번째입니다.
전 다른 해에는 4회차 다 꽉꽉 채워서 예매를 다 미리 해놓는 편이라서 
다른 관객들의 평에 따라 영화를 바꾸거나 선정하거나 하는 일이 없는 편이었는데 
올해는 헐렁하게 비워서 짰더니 '누가 좋다더라'하는 영화를 영화제 후반부에 더 추가해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번에도 스포일러는 티켓카탈로그에 나온 시놉 정도로만.....


파라다이스:러브 - 이 영화는 보면서 도리스 되리 감독의 <헤어드레서>와 클레르 드니의 <백인의 것>을 섞어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식상하거나 하단 게 아니라 정말 맛이 그렇다는 얘기..)
3부작으로 기획돼서 <파라다이스:거짓>과 <파라다이스:희망>이란 영화도 만들어진다고 하네요.
시놉만 보고는 조금 코믹한 요소가 더 많을 줄 알았는데, 웃기더라도 참 씁쓸한 웃음이라서.. 한편으로는 중년 여성들의 성매매, 라는 점이..
모르겠어요. 제가 여자라 그런 거겠죠? 중년 남성들의 성매매로 다루었더라면 훨씬 더 추잡하게 느껴졌을 거란 생각은 들었어요. 혹은 덜 애잔했을 것도 같고요. 
여성이 소비자인 성매매라는 게 이질적이고 익숙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구요. 주인공이 측은하지만 또 어떤 점에선 측은하지 않아요. 자세히 쓰기엔 스포일 거 같군요. 
하지만 볼만 해요, 특히 <헤어드레서> 같은 풍을 좋게 보셨다면.. 아, 그리고 엔딩크레딧 뒤에 쿠키 영상이 있을 거에요. 

5월 이후 - 올리비에 아사야스 영화라고 해서, 또 68 이후를 다룬 영화라고 해서 예매했는데요.
실험영화 운동 같은 게 나오는 부분은 흥미로웠어요. 보면서는 재밌다고 생각한 영화였는데 일주일도 안 지난 지금 많이 희미해진 걸로 봐서 강한 인상은 못 남겼나봐요.
솔직히 어떻게 끝났는지도 가물가물해요. 

치리(흔적) -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입니다. '벚꽃이 피고 진다'라고 할 때에 진다-는 말이 치리인가봐요? (저는 일본어를 잘 모르지만 영화 볼 때 그런 말이 나온 거 같아서요.)
임종을 앞둔 할머니의 모습을 담아낸다는 시놉시스만 보고도 눈물이 많이 나올 거 같은 영화다, 싶었는데 정말 여기저기서 눈물이.. 저도 휴대용 티슈 하나를 다 썼어요.

영화를 보면 할머니의 피부, 머리카락, 눈가 등을 세세하게 훑는 장면이 있어요. 이 장면을 보고 아녜스 바르다의 <낭트의 자코>에서 바르다가 늙은 자크 드미를 찍던 장면이 생각났어요.
그치만 전혀 다른 인상을 준 것은, 자크 드미와 아녜스 바르다는 어쨌든 배우자이고 비슷한 연배이지만, 가와세 나오미는 자식의 입장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할머니의 죽음이라는 것을 너무 이용하는 거 같은 느낌이었다'고도 하시던데, 그렇게도 보이는구나 싶었어요.
사실 가와세 나오미의 어떤 영화들은 참 그 경계에 서있는 거 같아요. 이 영화는 특히 그렇구요.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 자체도 나르시즘의 영화라고 평가받기도 하고, 감독 본인에 대한 풍문도 '공주병이다' 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 근거 중 하나가 '나오미는, 나오미는'하면서 자신을 3인칭해서 부른다는 거였는데 이 영화를 보다보니 
할머니에게 그 말투를 쓰던 게 버릇이 돼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란다고 모든 사람이 손주처럼 말하진 않지만..)

근데 영화를 보고, GV를 듣고나니까 그런 이야기들의 많은 부분은 오해가 아닐까 싶었어요. 저는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나 감독에 대해서도 호감을 갖고 있는 편이고 이 영화와 GV를 통해 그런 게 더 생겼거든요.
특히 GV에서 '나는 부모가 없었고, 태어나자마자 50대였던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양녀로 들어갔다. 나를 가족으로 받아주신 그 분들이 있기에 내가 있었던 건데,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내가 존재하는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영화를 찍는 것은 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하는 방법이다 (마지막 부분은 벌써 기억이 희미해져서 정확하진 않아요.)' 라는 얘기를 하는데 정말 그런 것들이 영화에서도 전해졌던 거 같아서 슬펐어요.

저는 가족을 이용한다?라는 쪽보단.. 그냥 가와세 나오미가 늘 자기 치유적인 영화, 어떻게 보면 자의식과잉이라고 불리는 영화를 찍기 때문에 받는 오해라고 생각해요.
저도 만약에 영화를 찍게 된다면 제 이야기, 제가 감당해야 하는 문제, 특히 제 가족이나 내부로 침잠하는 이야기를 찍을 거 같거든요. 순전히 나를 위한, 내가 구원 받기 위한 영화를요. 가와세 나오미 영화를 보다보면 그런 인상을 받아요.

한편은 저도 '가족을 찍는다. 기록하고 담는다.'라는 것과 '가족을 찍어서 영화로 만들어서 관객에게 공개한다'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 않은가, 전자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후자는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라는 생각도 있었는데 이또한 GV를 보면서 이해가 됐어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당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걸 느끼고 가와세 나오미에게 '너에게 할 말이 있으니 녹음기를 가져다다오'
했는데, 어린 마음에 싫다고 녹음기를 절대 가져가지 않았대요. 그렇게 하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을 거 같아서. 그게 후회됐다고 하더라구요.

할머니를 카메라에 담아서, 영화로 만들어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면,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할머니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도 할머니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안에 새로운 현실이 생기는 거 같다고.
듣고보니 그건 정말 근사한 일인 거 같았어요. 생전에 나를 만난 적 없던 사람들이, 영화에 담긴 나를 보며 내 죽음을 애도해주고, 기억해주고, 또 자신의 가족들을 떠올리며 눈물짓게 한다는 건요. 
그래서 저는 다시금, 가와세 나오미를 무한 쉴드 치기로 (일단은) 마음 먹었습니다. 응원하고 싶어요!

+ 그런데 이번 상영에서는 진행순서가 영 이상하더군요. 치리를 상영한 후, 가와세 나오미 GV를 하고 메콩호텔을 상영했어요. 전 두 감독 다 팬이지만, 두 감독의 성향이 매우 다르므로 
한 쪽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메콩호텔 때문에 보러온 사람은 GV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잖아요. 더구나 카탈로그 기재 순서는 메콩호텔이 먼저였는데..  
차라리 메콩호텔 먼저 상영하고 인터미션 타임에 가와세 나오미나 가족들이 객석에 앉고 다시 치리를 상영했던 게 맞지 않은가 싶었어요. 
전 옆자리 분이 치리 GV 내내 한숨 쉬고 시계 보고 안달복달하시는 걸 지켜봐서 (아마 차시간이 걸리셨던 듯) 안타깝더라구요.

메콩호텔 - 표도 매진되고 취소표도 잘 안 나와서, 아! 전국의 아핏차퐁빠들 대집결의 시간이구나 했는데 생각보다? 지루해하시는 분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옆과 앞에서 자꾸 카톡을 해대서, 한마디 할까말까 고민하다 결국 못했지만...
영화 끝나고도 '그래서 대체 무슨 얘긴데?'라고 하며 일어나는 관객들을 목격ㅋㅋㅋ 그러게 말이에요..... 근데 이상하게 저는 이 영화가 아피찻퐁의 영화 중에서는 꽤 재밌는 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음악사용 때문에 보는 게 쉬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본 지인은 그 기타선율 때문에 정신을 놓을 뻔 했다고 ㅋㅋ 저는 <엉클 분미>가 훨씬 더 잠이 쏟아지는 영화였고 이 영화는 그렇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지인은 '난 <엉클 분미>도 재밌다고 하는 사람이지만 이 영화는 정말...........' 이라며 영 다른 의견을 ㅎㅎ 취향의 문제겠죠? 전 거의 <친애하는 당신> -> <열대병> -> 다음으로 이 영화가 좋다 싶을 정도에요. 
그 무슨 유령들인가 하는 cindi 상영작이랑 비슷하게 좋아요.

버베리안 스튜디오 - 데이비드 린치식 호러를 기대하고 갔는데 생각보다는 안 무서웠어요. <인랜드 엠파이어>같은 영화를 생각해보면 훨씬 덜 자극적이고 덜 기괴했다는 무난한 인상..

로렌스 - 런닝타임이 꽤 길었음에도 지루하지 않았어요. 큰 기대없이 예매하게 된 영화인데 생각보다 더 괜찮았어요. 2시간 49분이었나요, 런닝타임 때문에 개봉하기 힘들 거 같긴 하지만..
작은 곳에서라도 상영하면 한 번 봄직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브로큰 잉글리쉬>에 나온 남자배우라면서요? 안면인식장애인 저는 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만 어쩐지 멋있더라.........

불운 - 로렌스 끝나자마자 10분 텀을 두고 쫓아가서 본 영화인데, 이건 2시간도 안 되는 영화인데도 조금 약간 지루했어요. 폴란드의 버스터키튼 뭐 그런 얘길 듣고 가서 그런가봐요 ㅎㅎ

사이드 바이 사이드 - 사실 피곤해서 포기할까 한 영화였는데, 웬 걸! 포기했음 정말 후회했을 거에요. 그 며칠 전에 본 <실종신고> GV에서 한 관객이 
'(※<실종신고>는 필름으로 찍혀진 영화) 복고풍을 내기 위해 필름으로 찍는 사람들도 있던데, 감독님도 어떤 그런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필름으로 찍으신 건지, 디지털 장비를 구하기가 힘들어서 필름으로 찍으신 건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해서, 
저는 듣고 좀 엄청 충격 받았었거든요.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지만 필름이 '복고풍' 취급을 받다니, 내가 너무 옛날 영화 틀어주는 극장에만 갇혀지냈던 건가, 요즘 영화의 경향 같은 거 사실 별로 관심도 없지만.........
전 뭐 '영화는 필름으로 찍어야 진짜 영화지, 필름 때깔은 못 따라와! 필름이 갑이야!'하는 쪽이나, '아직도 필름으로 찍는 사람이 있나? 디지털의 혁신적인 화질이 최고야!'하는 쪽이나 
너무 극단적이고 편협한 쪽은 양쪽다 싫지만.... 그래도 굳이 굳이 한쪽을 들자면 필름편인데(ㅋㅋㅋㅋ) 필름이 복고풍이라니!! 필름페스티벌에 와서 필름더러 복고풍은 너무해!!!!!!! 라고 생각해서....

음, 하여튼 <사이드 바이 사이드>는 유명한 감독, 촬영감독, 제작자 등등에게 찾아가서 앞으로의 전망 : 필름이냐 디지털이냐에 대해 묻고 답하는 영화인데 
둘 다 상당히 팽팽해요. 데이비드 린치, 데이비드 핀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워쇼스키 남매 등등 여러 쟁쟁한 감독들이 나와서 거기에 대해 말을 하는데 
영화를 볼 줄만 알았지 기술적인 거에는 문외한인 저도 알아듣기 쉽게 만들어진 영화이고, 심지어 영화과 영화이론 1강에 나올 법한 그림자료까지 나와서 SD,HD,2k,4k  뭐 이런 얘기도 나와서..
영화시간 교육자료로 써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어요 ㅎㅎ 

아무르 - 역시 기대했던 것보다 더 보여주네요. 아주 예상 못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좋아요. 특히 마지막 장면이요. 개봉하면 한 번 다시 볼래요. 
자세히 쓰고싶지만 스포가 될까봐 일단 생략. 

비스트 오브 더 서던 와일드 - 볼 생각 없다가 평이 하도 좋아서 갑자기 티켓교환부스에서 건져서 보게 된 영화에요.
재미는 있더군요. 어떤 장면에선 눈물도 나고, 가와세 나오미 영화나 다른 영화와 묶어서 '애도의 방식'에 대해 써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시놉시스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시놉시스만 보고는 그냥 '엄마 찾아 삼만리 판타지 모험 귀요미판' 정도인 줄 알았는데,
저한테는 꽤 다른 결의 영화였거든요. 근데 보고 나오는데 뭔가 마음이 튼튼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미스터리 - 로 위예는 사실 썩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감독이에요, <여름궁전>이 나쁘지 않고 약간 좋았나? 싶은 정도의 영화였기 때문에
요번영화도 기대하고 갔는데.. 엄.... 음.......... 아............ 그냥 앞으론 굳이 이 감독 이름 보고 보러들어가진 않으려구요..
약간 그냥, 사랑과 전쟁 같은 느낌이.......

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 - <석류의 빛깔>도 그렇고, 러시아 해설이 들어간 필름 밖에 못 구했나봐요. 이번에 틀 때도 러시아 해설자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해서 
디비디 코멘터리처럼 띄엄띄엄 나오나 했더니 글쎄 배우 대사 전부를 따라하더군요. 더빙이라고 하자니, 배우의 원래 대사도 들리고 해설자의 다른 언어(?인지 긴가민가)로 하는 대사가 중첩돼서 들려서..
영화에 집중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의외로 중후반에선 잘 녹아들어서 봤지만... 10시에 봤으면 잤을 영화라는 생각도 들구요 ㅋㅋ 근데 이 감독의 화면은 정말 아름답네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 영화사를 통틀어 이토록 고양고양한 영화가 있을까! 없을 거야! 그렇다면 그런 영화는 일본에서 최초로 만들어지겠군! 하는 생각을 고대로 따라가면 이 영화가 뿅.
근데 기대만큼 고양이가 미친듯이 많이 포커스되어 나오진 않았어요. 그냥 인물이 앞에 있는데 후경에서 고양이들이 놀거나 그루밍하는 게 보여서, 배우 연기에 집중을 못하고 고양이만 보고 있게 될 뿐 ㅋㅋㅋ
저는 다음에 고양이 영화를 꼭 만들겁니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고양이 빼면 시체인.... 그래도 이 영화도 본격 고양이 찬양영화이긴 해요. '시적 허용' 같은 어쩔 수 없는 나이브함들이 있는 거 같지만 어쨌든 ㅎㅎ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일러스트들도 귀여우니 놓치지마세요. 

시저는 죽어야 한다 - 이 영화도 주위 추천으로 보게 된 영화에요. 타비아니 형제 유명한 건 알았지만 4년 전인가 부산영화제에서 그 감독들이 어떤 영화를 보고 너무 숙면을 취해서,
피하게 된 이름이기도 한데요. 특히나 시놉시스 보니까 셰익스피어 어쩌고 연극이 어쩌고.. 해서 런닝타임 내내 연극 화면만 보여주거나 할 줄 알았는데.
본 사람들 평이 다들 너무 재밌다는 거에요. 그래서 보게 됐는데 정말 의외로 웃기더군요 ㅋㅋㅋ 지루하지도, 어렵지도 않았어요. 연출적으로 미친듯이 매료되는 부분이 있진 않았지만,
다음에 다시 이 감독들의 이름을 마주치면 그 땐 그 영화가 뭐든 한 번 더 관람할래요.

세션 : 이 남자가 사랑하는 방법 - 웃기면서 감동적이면서, 조금 짠했어요. 주인공이 너무 위트있고 매력적이에요. 역시 워터프루프 마스카라 필요한 영화....

바르피! - 발리우드 영화라서 또 한 런닝타임의 반 정도 춤추는 영화일 줄 알고 갔는데, 이 영화는 그런 장면은 거의 없더군요 ㅎㅎㅎ 편집도 리드미컬하고 노래도 많이 나오긴 하지만요. 그 '발리우드 뮤지컬씬'은 아예 없는 듯.
러브스토리인데 감동적이구요. 엄마 모시고 가서 같이 봤는데, 둘 다 재밌게 봤습니다. 여배우가 너무너무 예쁘구요. 남자배우도 꽤 멋있었어요. 가끔 제임스 딘이나 닉쿤이 보이고, 엄마는 실베스타 스탤론이 생각났대요 ㅎㅎㅎ
보통 인도영화 보면서 '아 여주인공은 정말 예쁜데......왜..........왜............ 남자는 왜..........' 했던 적이 많아서 (feat.옴 샨티 옴) 요번 바르피의 배우는 평균에 비해 훤칠하고 멋있어보였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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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고 나와서 로비에 앉아있다가 듀나님 같은 분을 봤어요, 라고 하면 그게 뭐야! 라고 하시겠지만
진짜 그냥 '그럴 거 같은 분'이었습니다 ㅎㅎ 뭐 특징적인 게 있어서가 아니라 마치 막장드라마에서 잃어버린 혈육을 마주쳤을 때 한눈에 뭔가 찌릿하고 알아보는 그런 느낌으로다가..
물론 저는 혈육도 아니고, 사실 진짜 제 혈육도 못 알아볼 안면인식장애가 있지만... 진짜 아무 근거없이 그런 확신이 들어서.. (근거라고 하자면 '엄청 세상사에 달관한 분위기로 혼자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라는 정도인데 쓰고보니 디게 흔한 느낌..)
스마트폰을 하고 계시길래 슬쩍 옆에 가서 화면을 훔쳐볼까!!! 라는 못된 충동도 들었지만 역시 그건 사생활 침해라서 진짜하진 않았어요. 

근데 그 생각을 하고나서, 보니까 듀나님 트위터에 저랑 그 시간에 같은 영화를 봤다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그래서 더 확신.. (feat.망상장애) 했는데 다시 확인할 기회가 없어서 이건 그냥 미스테리로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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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오브 더 서던 와일드> 보려던 전날에, 브랫님께서 <먹다 자다 죽다>를 강력 추천하신 글을 보고 
마구 뽐뿌질이 와서 그 영화를 볼까말까 열두번 고민했어요!! 
더군다나 시놉시스가.. 

샐러드 포장 공장에서 일하던 20대 초반의 로사는 구조 조정의 여파로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현실을 마주한다. 양상추를 정확하고 빠르게 자르는 일만큼은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는 로사지만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고 운전 면허도 없는 그녀에게 구직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그간 남들이야 어떻게 바라보든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하기만 했던 로사는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고, 결국 태어나서 줄곧 자란 마을을 떠나야 할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주노동자, 다문화, 88만원 세대의 고통, 산업 재해 등의 사회적인 문제들을 배경으로 고군분투하는 로사를 보고 있노라면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스웨덴에 살고 있는 그녀와 우리의 젊은이들이 무척 닮아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거친 말투와 과체중 몸매와 아무도 채용해 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세우는 로사는 사랑스럽기만 하다. 신예 감독 가브리엘라 피클러는 장편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정감 있는 연출력을 선보인다. 주요 출연진들 또한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인 배우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놀랍도록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박가언)

이거 제가 완전 당면한 문제!!!!!!!
샐러드 포장 공장은 아니고 다른 알바를 하지만, 그 알바하는 데서는 에이스(ㅋ.....)로 불리고는 있으나 실상 그 알바자리에서 나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스킬들. 애초에 단기로 할 생각으로 들어갔고, 얼결에 7개월째 하고 있지만 
점점 내 자신에게 회의가 드는 알바, 였던 데다가 대학교 졸업장도 없고, 정확히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내세울 기술도 능력도 자신감도 없고...
등등등 왠지 이 영화를 봐야만 할 거 같은 기분이 팍팍 들었는데 좌석도 그렇고 표를 또 현매로 내놓아야 하고 상영 시작 시간이 달라서 시간표가 꼬이고 등등의 문제로 일단 포기했거든요.
사실 내심, 외면하고 싶은 맘도 없잖아 있었는데...

충격적인 일은!!!111 이 영화 보기를 포기하고 <비스트 오브 더 서던 와일드>를 본 다음 날, 알바 출근을 했더니 이제 고만 나오랩니다. 뙇!!!!!!!!
7개월을 다녔는데, 9시에 출근해서 9시 반에 잘려서 자리 정리하고 나왔어요. 제가 속한 팀 자체가 없어져서 알바 네 명, 직원 한 명, 과장 실장 다 퇴사...
같이 일하던 다른 팀 친구들은 너무 갑작스럽고 아쉽다고 울며 환송(!!!)까지 해주는데, 사실 전 좀 비몽사몽간에 일어난 일이라.. 약간 저희팀에 애저녁부터 망스멜이 나서 조만간 망할 거 같긴 했지만
진짜로 망하냐......... 하면서... 그냥 무덤덤+얼떨떨한 상태로 나왔거든요. 어차피 오후에 영화도 봐야되고 ㅋㅋ..ㅋ...

같이 잘린 알바언니랑 근처 카페에 앉아서 알바몬을 뒤지며 생각해보니 원래 하던 알바가 꽤 괜찮은 편이긴 했더라구요. 그래서 뒤늦게 아쉬운 기분도 들었지만....
다른 팀 팀장이 미친놈이라서 정말 그 인간을 성희롱으로 고소할까말까 고민하던 차여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잘려서 차라리 속편하기도 하구요. 이런 꼴 저런 꼴 안 봐도 되니까 -_-
아........ 근데 <먹다 자다 죽다>가 엄청 생각나드만요. 내가 그 영화를 봤어야했어!! 이건 운명적인 거였어!! 그 영화를 보면 그 영화에 해답이 있었을지도........ 샐러드 공장 에이스가 샐러드 공장에서 잘리면 뭘해야하는지........

하지만 있을 리가 없겠죠? 영화제 영화니까.. 적당히 희망적인 열린 결말로 끝났겠죠? ㅠㅠ
새 알바는 또 찾으면 있을 거 같긴 하고, 원래 일하던 곳의 다른 쪽에서 제가 하던 비슷한 일을 할 수 있게끔 해주려고 하셔서...
알바는 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이후는? 을 생각하면 또 참담해지네요. 현실직시할 나이는 이미 한참 지난 거 같은데, 아직 도피만 하고 있어요. 영화제이든 아니든 영화관 지박령이지만, 하루에 영화 세 편 네 편씩 연달아보다보면..
약간 약쟁이 같은 기분도 듭니다. 마약이나 대마초 같은 거, 해 본 적은 없지만 마치 그런 걸 끊지 못하고.. 건전하고 좋게 표현하면 성냥팔이소녀 같은 거요 ㅋㅋ 영화 한 편에 성냥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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