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시간없는 분들을 위한 늑대아이 한줄평: 사내자식이 효도 안하는 건 인간이나 늑대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1. 아동 관객으로 인해 관람에 지장이 없을 사태를 피하기 위해 조조로 시간표를 끊었습니다만, 생각 외로 그 이른 시간대에 가족 관객을 포함해서 꽤 많은 관객이 자리를 차지하더군요. 그래도 이른 시간대부터 영화 보러 나온 분들답게(?) 관람 분위기는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2. 영화는...전반적으로 적당한 수작이었습니다. 이야기 구조 자체가 상당히 잔잔한 데다가 어찌 보면 지루함을 유발할 수도 있는 구조였습니다만,(어쩔 수가 없는 게 영화에서 가장 정서적으로 강한 충격을 주는 장면이 영화 초반부에 나오거든요) 잘 정련된 영상들과 치유물적인 따스한 이야기 덕분에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어제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이 영화 덕분에 적어도 정신적인 면의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걷어낼 수 있었습니다. 


3. 사실 이런 총평보다도 디테일한 면에서의 잡상(을 빙자한 개드립)을 쓰는 게 목적이었는데(...) 그럼 각 부분부분 별로 썰을 좀 풀어봅시다. 


-몇몇 분들이 환호 우려하던 초반의 ㅅㄱ 장면은 그다지 염려할 구석이 없습니다. 직접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건 당연히 아니고(...) 그냥 공중파 방송에서 성적 관계를 암시하는 수준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그런 묘사가 일말이라도 나오는 게 싫다! 이런 분들이 아니면 아 그렇구나 넘어갈 만합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하나 입장에서도 남친이 울프 폼을 해주는 걸 더 반겼을 게 이 영화의 "그이"는 인간 모습을 할 때보다 늑대 모습을 할 때가 100배는 더 간지나게 생겼.... 일단 앞으로도 드립칠 게 많으니 이건 여기까지만 하죠(끌려간다)


-호소다의 전작에서도 주인공들이 먼치킨 수준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다는데, 늑대아이의 경우는 그 정도가 확실히 장난 아닙니다. 농담이 아니라 하나가 보여주는 (특히 귀농 이후) 능력은 반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수준. 아무리 농사스킬 만렙 찍은 츤데레 할아버지의 쩔(...)을 받았다고 해도 첫 농사에서 감자를 수십 바구니는 족히 캐는 먼치킨 농사력부터 시작해서, 웬만한 절간 대웅전 수준의 크기를 자랑하는 폐가를 혼자서 뚝딱뚝딱 고쳐서 웬만한 전통 여관 수준으로 복원시키고...하여간 언급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능력치.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빛나는 능력치는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그녀의 내구력(...) 맨손으로 공구들 두들겨서 집을 하나 만드는 수준의 대공사를 하면서 손에 밴드 몇 개 감을 찰과상 입은 게 부상의 전부질 않나, 하루 왼종일 육체 노동을 하면서 '에구 허리야" 한 마디 하는 정도 빼면 별로 피로해하지도 않나, 심지어 폭풍우 부는 날 산 속에 들어갔다가 미끄러져 비탈길을 신나게 굴러대고 밤새도록 비를 맞았는데도 다음날 아침에 멀쩡히 눈이 깨는 놀라운 생명력!(...) 더더욱 놀라운 건 이 고생을 10년 넘게 한 주제에 피부엔 주름 한 점 없고 몸매는 대학생 시절 그대로! 이쯤 되면 하나의 선조 중에 기린이나 봉황 같은 신수급 축생이 껴 있거나(...) 아니면 어디서 초인 혈청이라도 맞은 게 아닌가 의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를 관람한 다른 분들이 보통 "유키 긔여워요 긔엽긔" 모드가 되면서 유키를 편애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누나인 유키 쪽이 어릴 때도 활달해서 귀여운 면이 더 많고 초딩 졸업반쯤 되면 이게 초딩인지 고딩인지 헷갈릴 정도로 성숙미를 뽐내는 통에 하루종일 음침 모드인데다 허세 간지력조차 자기 아버지에 한참 못 미치는 아메 쪽보다 더 눈이 갈 수밖에 없더군요. 


게다가 이 자식은 가면 갈수록 불효자스러운 면이 강해지는 게, 점점 자연 쪽과 가까이 하면서 좋게 말하면 반항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책임한 모양새를 좀 많이 보입니다. 엄마가 워낙 먼치킨이라 집안일 돕는 묘사가 안 나오는 건 그렇다쳐도, 이 자식이 암말도 안 하고 비오는 날 튀어나가 버리는 바람에 까딱했으면 하나는 유키가 중학교 가는 것도 못 보고 남편 곁으로 갈 뻔했습니다(...) 


-사실 이 점에서 영화의 묘사가 다소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분명 하나 어머님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고, 영화의 전체적인 구도 또한 "양쪽 세상"을 공정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유키의 경우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물론 야생성을 온전히 버리지는 못하겠지만) 모습이 사람들과의 교류 장면 중에 자연스레 나오는 반면, 아메의 경우는 그러한 묘사가 다소 부족했거나, 묘사를 하더라도 인간의 개념 안에 자연을 가두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더군요. "숲의 현자" 여우가 그 좋은 예인데, 여우가 실제로는 생태계 지위가 잡몹 수준에 불과하다는 걸 배제하더라도, 숲의 "주인"으로 묘사하는 건 너무나도 인간적인 발상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숲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아메의 선택이 썩 와닿지 못했던 것 같고. 


-이러한 불안 요소를 담고 있지만, 제 생각보다 더 음미해 볼 만한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특별히 두 부분만 짚자면... 하나가 아메에게 구조된 이후 아메의 선택-어머니와, 인간 세상을 떠나 늑대로 살겠다-을 조용히 존중해 주는 부분과, 결말에서 아메만이 아니라 유키도 하나의 옆을 떠났다는 것을 알리는 장면입니다. 스물, 심지어 서른 넘어서까지도 부모의 자장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그들은 고작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이미 부모의 자장을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는 거죠. 그리고 하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키운 아이들을 어쩌면 너무나도 쿨하다 싶을 정도로 순순히 보내 주고.


적어도 저에겐, 결국 부모도 자식도 남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사는 거라는 걸,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말해 주는 장면으로 해석됩니다...


3. 아무튼 결론은, 간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애니메이션이 나왔으니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분들은 한 번 봐도 좋을 그런 영화라는 겁니다. 조만간 극장에서 다들 내릴 것 같은 분위기니 보실 생각 있는 분들은 가급적 빨리 보시는 게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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