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2 21:40
아시겠지만 당신은 정말 멋진 남자요. -
1764년 프리드리히 대왕이 상수시 궁의 정원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카사노바를 바라보며 한 말.
상수시 궁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동상(이 분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s://namu.wiki/w/%ED%94%84%EB%A6%AC%EB%93%9C%EB%A6%AC%ED%9E%88%20%EB%8C%80%EC%99%95
상수시 궁(베를린 근교 포츠담 시 소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10421&cid=42664&categoryId=42664
상수시 궁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18세기는 계몽주의 사조가 전 유럽을 풍미했고 이 당시 꽤 이름있었던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 루소, 볼테르, 디드로, 달랑베르 등등 - 프리드리히 대왕의 상수시 궁을 비롯하여 퐁파두르 부인의 베르사이유 궁정 그리고 에카테리나 2세의 러시아 궁정까지 진출하여 제왕들과 사상적 문화적 교류를 하였고 그들이 가진 지식과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하며 왕들의 정책에 반영되기를 희망했었죠.
비단 왕들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이 시절에는 귀족들이나 부르주아들도 이런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교류하는 것이 성행했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유럽의 정치적 여론에 끼치는 영향은 상당했었죠. 이런 여론에 상당히 민감했었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으로 그는 왕세자 시절 이와같은 시류를 타고 이름을 알리고자 <반마키아벨리론>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 논문 지도 선생은 그 유명한 볼테르였죠.
물론 모든 제왕들이 이런 시류에 민감했던건 아닙니다.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는 계몽주의 사상을 극도로 혐오하여 이들 철학자의 책들을 금서목록에 올리고 자녀들에게도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고 주의를 내릴 정도였죠. 영민한 그녀는 이들 계몽사상이 이빨을 감춘 호랑이라는걸 이미 알아봤던 겁니다. (특히 사회계약설…왕권신수설을 부정하고 인민주권론을 주장한…) 그러나 아들 요제프 2세는 이미 계몽주의에 심취해 있던 터라 이를 두고 모자간의 갈등이 적지 않기도 했습니다만…(나중에는 이런 갈등이 쌓이고 쌓여 모자간에 서로 황제 자리에서 폐위하겠다는 험한 언사가 오가기까지...두 사람이 공동 황제였거든요…)
그런데 이들 백가쟁명하는 사상가 - 인재들 사이에 다소 이색적인 인물도 하나 끼어있더란 말입니다.
앞서 언급한 학자들은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이라 이들이 임금 곁에 머물렀다는게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이 사람은 말입니다…대체 뭔 재주가 왕의 눈에 띄어 자리 하나를 얻게 됐던 걸까요?
바로 카사노바 말입니다.
회상록에서 그는 프리드리히 대왕과 상수시 궁에서 만났던 일화를 기록했는데(그는 비단 프리드리히 대왕 말고도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여제를 만나기도 했었죠)대왕에게 상수시 궁의 정원에 있는 분수대의 신기술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의견을 피력했다고요.
이게 그렇게 신통한 기술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여튼 그는 대왕에게 그럴듯한 자리 하나를 얻기는 했습니다. 베를린 군사 아카데미 교관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당시 기준으로는 그닥 대단한 자리가 아니었던지 얼마 못가 그는 교수직을 그만 두고 프로이센을 떠나게 됩니다.
지금 기준으로 봐서는 대학교수 - 그것도 육군사관학교 - 교관직이면 나무랄데 없이 꽤 괜찮은 자리인것 같은데 저 시절 기준으로는 임금에게 소위 '인재로 등용되어 발탁되는 자리'로는 하찮은 미관말직에 불과했던지 카사노바는 이 교관직에 불만이 많았고 성실하게 일을 하지도 않았지요.
물론 그 나름대로 이유도 있었습니다. 실은 그가 상수시 궁에서 처음 체류를 시작할 때 카사노바는 프리드리히 대왕을 직접 만나서 수 차례 담소를 나누곤 했었는데 - 이걸 지금 식으로 얘기하면 면접이겠죠 - 이 면담이 실은 완전 엉망진창이었다는…겁니다. 그의 회상에 의하면 말이죠.
프리드리히 대왕은 군왕답지 않은 재기발랄한 화법으로 - 보통 임금들이라는게 터무니없이 권위만 내세우거나 아니면 지루하기 짝이 없이 근엄한 인물들이었던 반면, 이 영민한 왕은 훗날 자신의 대명사가 된 계몽군주답게 그만 카사노바의 넋을 쏙 빼놓고 말았던 겁니다. - 그 천하의 카사노바가 말입니다 - 한 마디로 그냥 그 자리에서 털렸던거죠. 단지 몇 번 작정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눴던것 뿐인데 그로서는 도저히 왕의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더랍니다.
그냥 몇 마디 말로만으로도 그 얄팍한 지적 수준이 바닥까지 다 드러난 터라…말재주 하나만큼은 정말 자신이 있었던 그로서는 꽤나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뜻밖에도 왕은 그에게 베를린 군사 아카데미 교관직을 제의했던 것입니다. 이게 대체…왕 앞에서 지적 수준이 바닥까지 털린 그로서는 사람들 앞에서 망신이나 안 당하고 여길 떠나면 다행이려나 싶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에게 일자리를 제의했던 것이죠.
그는 바란대로 원하던 일자리도 얻었지만 예기치 않게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난터라 내심 무척 속이 상하기도 하고 자존심 또한 크게 상한 터였는데 어느날 불쑥 대왕이 그에게 이런 말을 한겁니다.
아시겠지만 당신은 무척 멋진 남자요 -
마침내 종전을 고한 7년 전쟁(1756~1763) 내내 전장을 뛰어다니느라 무척 고생이 심했던 프리드리히 대왕은 - 그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 마치 여자들 드레스 자락의 주름처럼 얼굴에 주름이 졌는데, 이 정도로 고생을 한 만큼 결국 그 전쟁에서 끝내 살아남았고 자신이 원했던 것을 모두 얻어낸터였습니다. (그의 왕국 프로이센이 드디어 듣보잡 소국에서 마침내 유럽의 5대 열강의 자리에 오름) 카사노바를 만났던 그 때에 그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한 편으로는 자부심 또한 무슨 하늘을 찌를듯 했습니다. 그러니까…이 말을 카사노바에게 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 날은 마침 카사노바가 상수시 궁을 방문한터라 두 사람은 나란히 궁의 포도밭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왕이 아끼는 그레이하운드 세 마리가 평소처럼 깡총거리며 두 사람을 따라오고 있었죠.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서 카사노바는 프리드리히 대왕을 바라보았습니다. 몇 마디 말로 사람을 마구 털어댈 때는 언제고? 뭘 알긴 대체…순간 그는 수줍게 고개를 돌리는 대왕의 눈빛을 보았죠.
당신처럼 잘생긴 남자를 본게 몇 년만인지 모르겠소. 듣자하니 당신은 여인들에게도 인기가 무척 많다고 들었소 -
여인들? 카사노바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것을 느꼈습니다. 대체 내가 여인들을 본지가 얼마나 되었더라? 베를린 군사 아카데미야 사관학교라 해도 특히 여기 상수시 궁에서는 진짜 여자라고는 코빼기도 구경을 못했던터라 그로서는 왕의 이 말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이 상수시 궁은 정말 이상한 곳이야…내가 여기를 방문한게 대체 몇 번인데 궁궐에서 여자라고는 왕이 키우는 개들밖에 없…(그것도 이름이 엘리자베타, 마담 퐁파두르, 마리아 테레지아…뭔 개들 이름이 죄다…)
이 방면으로 무척이나 촉이 민감했던 그는 순간 뭔가 짚히는게 있었습니다. 맙소사!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 이 상수시 궁에는 온통 시퍼런 군복을 입은 사내들 밖에는 없지않은가…임금이 군인이라 원래 그런줄 알았었는데, 그 놈의 전쟁을 7년 씩이나 해대는 통해 자연스럽게 궁궐이 야전사령부가 됐다고 생각했는데…이제 보니…
당신처럼 멋진 신사가 내 친구가 되었다니 난 그저 기쁠… -
예의 촉이 살아난 카사노바는 더 이상 대왕의 말을 들을 수가 없어서 그만 무엄하게도 왕의 말을 자르고 말았죠.
"폐하께서는 도대체가 제게 찾을 수 있는 장점이 반반한 얼굴밖에는 없단 말입니까?"
순간 예상치 않은 대갈 일성에 크게 놀란 왕이 무척이나 당혹한 표정으로 카사노바를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엔 수줍음에서 다음엔 당혹감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대왕의 태도를 보고 카사노바는 바로 자신의 직감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그는 즉시 왕에게 자신의 무례함을 사과한 뒤 서둘러 궁을 빠져나와 그 길로 도망치듯 프로이센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물론 군사 아카데미 교관직도 사표를 던지고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어…어쩐지…이상하더라…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도덕적이라 할 수 없었던 그로서는 정말 겁이 덜컥 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다면 성폭행이라도 해서까지 여인들에게 못된 짓을 서슴치 않았던… 그로서는 - 카사노바 이 인간 행적을 보면, 여자들에 관한 한 진짜 사악하기 짝이없는 작자였죠. - 막상 그 자신이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되자 정말 두렵기 짝이 없었던 겁니다. 사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던 그는 비단 여자들 외에도 가끔 사내들의 눈길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그 정도야 그냥 웃어 넘기면 될 일이었습니다만.... 이 경우는 정말 얘기가 달랐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결코 그저 그런 남자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는 소위 말하면, 총검을 지닌 진짜 권력자였으며 전장에서는 포격의 달인이었습니다. 카사노바로서는 진짜 살이 떨릴 일이었습니다. 자기가 그동안 여자들한테 한 짓을 생각해 보면 - 물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 영락없는 그 짝이었지만 말입니다.
…-_-; …
…그렇다고 합니다…
…여튼 프리드리히 대왕의 인재 구하기 중 카사노바와 관련된 어처구니 없는 일화가 있길래 한번 얘기해 봤습니다…
2017.07.23 01:35
2017.07.23 05:47
감사합니다:-) 어제 쓰다가 중간에 글을 날리는 바람에 다시 짤들 붙이느라 시간이 좀 걸렸네요.
여혐게이…프리드리히 대왕의 여성관이 결코 곱지는 않은터라 이 방면으로 설왕설래 말이 많죠. 특히 일생 동안 여성을 멀리 하려고 한 점이나(왕비와 일생 별거하면서 자녀도 없이 한 불행한 결혼생활…뭐 본인 말에 의하면 프로이센이라는 자녀가 있어서…넘 바쁘셨다고…진정한 국부…―,.― ) 본문의 일화처럼 키우는 개들에게 주변의 여성 통치자들 이름을 붙인 점이라든가…(엘리자베타 - 러시아의 여제, 마담 퐁파두르 - 프랑스 루이 15세의 총비, 마리아 테레지아 - 오스트리아의 여제…참 가지가지…―,.― ) 그런데 대왕의 여혐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여혐과는 살짝 좀 궤를 달리하는데 아무래도 3백년 전의 옛날이고 왕이면서 군인이라는 특수한 지위 때문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여혐과는 좀 다르게 봐야할것 같습니다.
2017.07.23 08:14
과연 흥미로운 인물임에는 분명합니다. 아무튼 시대적/사회적으로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는 좀 다르죠. 결국 한 개인의 이야기로 환원되니까요 이런 경우는.
로딩 오래 걸리는 글은 아예 따로 작성해서 올리실 건지가 궁금합니다.
2017.07.23 08:22
2017.07.23 06:09
2017.07.23 07:33
2017.07.23 08:06
2017.07.23 08:14
주변 남성들의 반응...... 저때나 지금이나 참 나.
개인을 이해하려고 하면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죠.
2017.07.23 08:36
아무래도 대왕이 전쟁영웅이라서 그런듯 합니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 진짜 몇 달만에 전쟁을 일으켰… - 슐레지엔 전쟁과 이후 7년 전쟁 그리고 그 사이 전쟁준비 기간까지 따지면 나이 50이 넘을 때까지 한창 때를 모두 야전에서 산 셈이니까요. 온통 남자들의 세상인 전장에서는 아무래도…그렇게 보였을듯 합니다. 일각에서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사생활 하나는 깨끗했다고…평을 하기도 합니다만(실제로 독일을 비롯한 서구 역사학계는 그렇게 평가했었죠. 20세기 초 바이마르 공화국 때부터야 비로소 대왕의 동성애 성향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이 시작됩니다.(그런데 그 사생활이란게…실은…당연히 그렇지가 않죠…―,.― )
2017.07.23 14:18
2017.07.23 14:42
2017.07.23 16:41
여혐과 호모포비아 성향이 왜 경향적으로 일치하는지를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
2017.07.23 17:31
2017.07.23 19:24
2017.07.23 20:06
2017.07.23 23:46
러시아의 여제 엘리자베타(1709~1762)
2017.07.23 23:48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
2017.07.24 11:16
이 분은 이제 확실히 알아봅니다. (교육의 성과!)
2017.07.24 12:00
2017.07.23 23:50
프랑스 루이 15세의 애인 퐁파두르 후작부인(1721~1764)
2017.07.24 00:05
상수시 궁에서 애견들과 함께 있는 프리드리히 대왕(근데 애견들 이름이...)
7년 전쟁 치르는 내내 왜 나는 치마 두른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냐고 한탄하심...그래도 전쟁은 다 남자들이 하는거지만 말입니다.
2017.07.24 11:17
개 작명 센스가 진짜... 어휴 왜 그러니 왜 그렇게 사니 하고 말해주고픈 충동이 드는 그런 부분입니다;
2017.07.24 11:33
2017.07.24 00:34
왕비 엘리자베트 트리스티네(1715~1797)
2017.07.25 21:42
2017.07.25 22:38
크리스티네 왕비 아름답죠. 비단 초상화만 그런게 아니라 실제 인물도 좋아서 당시 증언에 의하면 상당한 미인이었다고 합니다. 대왕의 아버지가 아들의 동성애 성향도 고치고 손주도 볼 욕심에 특별히 신경써서 예쁜 처자를 골라줬는데…
이것이 실은 그만 엉뚱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대왕님이 아내의 미모를 질투한 것이죠…. 그는 주변의 남자들이 예쁜 여자들을 보고 관심을 보이거나 여자들 얘기로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것을…참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들(뛰어난 학자와 유능한 정치가 그리고 용맹한 군인들)하고만 지내고 싶어서 상 수시 궁에 자신의 아내를 비롯하여 여자라고는 얼씬도 못하게 조치했죠. 덕분에 크리스티네 왕비는 일생 남편의 별궁 상수시에 갈 수가 없었다는 슬픈 일화가 전합니다. 딱 한번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도 7년 전쟁 중 수도 베를린이 함락의 위기에 처하자 급히 피난길에 올랐던 왕비는 - 그 때야 처음으로 - 상수시 궁에 들러볼 수 있었다는 얘기는 유명합니다.(물론 대왕님은 그 때 전장에 있었고)
이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7년 전쟁이 끝나고 몇 년 만에 만난 아내에게 딱 한 마디만 하고 그대로 헤어졌는데 그 한 마디가 진짜 걸작입니다. "…부인 그동안 살이 좀 찌셨소이다." ㅎㅎ
2017.07.25 22:51
볼테르도 그의 회상록(프로이센왕의 사생활)에서 대왕의 이같은 성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상 수시에 도착한지 달포가 지났는데도 이 궁의 안주인에게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이건 아무래도 대단한 결례인듯하여 왕에게 언제 왕비님을 뵐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내가 왕비님을 위해 소네트 몇 수를 지어도 되겠는지 묻자 그 젊은 왕은 놀랍게도 이렇게 말했다. …여기 상 수시는 여인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오! 다시는 그런 얘기를 꺼내지 마시길…그 얘긴 안 들은걸로 하겠소!…그 젊은 왕은 마치 못들을 소리라도 들은듯 크게 화를 냈다…
…-_-; …
예, 그렇다고 합니다 ㅎㅎ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 DJUNA | 2023.04.01 | 24799 |
공지 |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 엔시블 | 2019.12.31 | 43358 |
공지 |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 DJUNA | 2013.01.31 | 351707 |
와 완전 현웃 터짐입니다ㅋㅋㅋ 여혐 이성애자가 여혐게이를 만났을 때라닠ㅋㅋㅋㅋㅋㅋ
완전 그 만화 생각나네요. 앞에 서 있는 여자 엉덩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남자가 뒤에서 자기 엉덩이를 같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게이에게 화를 내며 What are you looking at!?이라고 소리지르는 3컷 만화(아마도)요. ㅋㅋㅋㅋ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