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시사회로 봤는데요. 완성도를 말하자면 90년대 미제 사건으로 끝났던 사건을 영화로 만든 두편의 한국 영화 사이에 있다고 놓여있다고 보면 됩니다.

살인의 추억보단 떨어지지만 그놈 목소리보단 괜찮습니다. 상영시간이 꽤 길어요. 132분인데 크게 두갈래로 나뉘죠. 그 중 부모가 범인이라고 지목하여 

난리가 났던 카이스트 교수의 가설을 다룬 전반부 한시간은 그럴싸합니다. 전반부 한시간만 놓고 보자면 걸작...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 시상식 작품상감이죠.

그러나 나머지 절반 부분이 문제에요.

 

영화를 한 100분 정도의 상영시간에 맞춰 카이스트 교수의 가설 부분만 다뤄도 재밌을 얘기지만 그러기에 개구리 소년 사건은 10여년에 걸쳐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그걸 많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중간 토막 한 부분만 영화로 만들기는 어려웠을겁니다. 영화는 끝까지 다루는데 워낙 말이 많았고

각종 소문, 괴담이 전해졌던 미제사건이라 1막 부분과 나머지 1시간여동안 그 뒤의 이야기를 나열식으로 전개하는 과정은 전체 맥락에서 볼 때 어정쩡하기만 해요.

사건이 일어난지 10년 만에 아이들 유골이 발견된 뒤는 영화적 상상을 더했는데 너무 나갔다 싶었어요. 그렇게 노골적으로 범인 암시를 하기엔 이 사건이

미스테리한 점이 많아서 개운치가 않더군요. 

 

전체 사건을 커버할 생각이었다면 한 3시간 정도에 담아냈어야 할 얘기인데 상업영화로써 쉽지 않았을테고 그러다보니 무게중심이 위태위태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영화는 괜찮습니다. 삐그덕거리는 부분이 적지 않았지만 부모를 범인으로 몬 전반부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었어요.

이미 다 억지추리라는 게 만천하게 밝혀진 마당인데도 소름끼치더군요. 그 흔한 깜짝 효과나 음향효과 같은거 전혀 없는데도 내내 오싹하고

무서워요. 특히 후반에 박용우가 산속에 들어가서 아이들 유골이 발견됐던 곳에서 스스로 목을 조이고 누워있는 부분에선 어찌나 불안하던지요.

 

전반부가 끝난 다음에도 볼만합니다. 일단 지루하지 않고요. 배우들 연기도 좋았어요. 류승룡이 분한 황우혁 박사는 황우석 조크로 활용된 배역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박용우가 "이제 그만해! 황구라 새끼야"하는 부분에서 다들 웃었습니다. 연극 배우 서주희가 간만에 그나마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더군요.    

전반부 한시간 때문에 전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촬영이나 색감도 좋았고 구태의연한 감상주의도 없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차분히 묘사하고 전개시키는데

사실의 힘이 얼마나 섬뜩한지 느꼈어요. 보면서도 류승룡의 궤변을 듣는데 듣고 있으면 정말 그럴싸해요. 부모가 범인이 아니란게 밝혀지고 난 뒤에

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추리였지만요. 자기 중심으로 생각이 고착되어 타인의 말에 귀기울일 틈바구니조차 소멸돼버리면 이토록 망가진다는 걸

몸소 보여준 캐릭터가 아닐까싶어요.

 

132분이 금방 갔는데 스타파워도 없고 고만고만한 영화들이긴 하지만 개봉일에 무려 15편의 신작이 개봉되기 때문에 선방을 날리긴 힘들것 같지만

영화적 재미와 사실의 힘이 커서 입소문이 좋게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 시사회 때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영화 끝나고 나오면서 학생들

서로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학생들은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나봐요. 이 사건 일어난 동시대를 겪었던 사람들에겐

감정이입 될 요소가 많은데 청소년들은 그렇게 재밌진 않았나봅니다. 90년대 초반의 시대적 묘사도 꼼꼼했어요. 정말 개구리 소년 찾기 운동은 대단했죠.

초코파이 상자 뒤에도 오랫동안 나왔는데 영화 보니까 담배각에도 인쇄가 됐었네요.

 

영화 보면서 예전에 어린이 영화 겸 개구리 소년 찾기 운동 일환으로 만들어졌던 영화 돌아오라 개구리 소년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들 얘기하면서 이 영화가 언급이라도

될 줄 알았는데 아직까진 별 기사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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