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쉬엄쉬엄  돌고 있습니다.

오늘은 화엄사와 천은사를 돌아보았습니다.


중창불사의 시끄러운 공사소음과 곧이어 들이닥친 고등학생 수련회 무리 덕에 고즈넉함은 없었어요.

복작복작 붐비는 화엄사지만, 그래도 4사자 석탑과 각황전 석등은 듣던대로 아름답고 멋졌습니다.


천은사를 가니 천은댐이 물을 막고 있어 다리를 건너 절로 들어가는 풍경이 그림같았습니다.

게다가 절내에 관광객이 정말 없더군요. 

아무리 평일이지만 그래도 초파일이 얼마 안남았는데...


극락보전이 이 절의 본전이었는데 상당히 조그맣고 예뻤습니다.

스님은 끝없이 석가보니불 석가모니불을 외고 계시고...


그 안을 들여다보며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는데 어느 노부부가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여기 법당이 따로 없어요?"

"이게 법당인데요"

"절 하고 뭣좀 빌게요."

"저기 저쪽으로 들어가셔서 안에서 스님 뒤에서 절하고 따라하셔요"


노부부는 제 말에 주춤하며 툇문으로 들어가 스님 뒤에 어설프게 섰습니다.

법당 오른편에있는 여시주를 따라하며 절이라도 몇 번 하면 좋으려만

그냥 허리만 굽혀서 엉거주춤 뭔가를 읊조리십니다.

그리고는 그냥 나오시는 겁니다.


저도 그쪽으로 지나쳐 뒷편의 관음전 들을 보려고 했기 때문에 노부부와 다시 마주쳐 하소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지리산이 좋대서 불공드리러 한번 와봤다고, 자기들은 불자 아니라고. 자기 아들은 절에 잘 다니는데

자기들은 잘 모른다고. 어디다 기도해야 하냐고...

우리 아저씨가 몸이 많이 아프다고, 약먹고 치료하고 몸이 약하다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와서 택시로 25만원 쓰고 왔다고.

지리산이 그렇게 영산이라는데 지리산 구경도 (죽기 전에) 해봐야지. 


그러고보니 남편은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바지통도 헐렁하고, 볼도 홀쭉했고, 머리도 다 빠져 한줌도 남아있질 않았습니다.


저는 약사전이라도 있으면 거기서 치성드리면 좋을텐데요. 하며 아는 척을 해보았습니다.


두 노부부는 노고단을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습니다. 

천은사는 노고단 올라가는 국도를 끼고 있어서, 노고단을 올라가려고만 해도 천은사에 입장료를 내야 하니, 

천은사는 노고단의 입구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두분은 차도 갖고 오지 않았고, 택시를 불러도 수만원은 받을텐데...


저는 제가 갖고온 차에 두 분을 태워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차에는 짐이 많았고, 특히 접이식 자전거가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어 두 분을 모두 태우긴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전 그냥 그분들을 지나쳐 경내를 둘러보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노 부부는 뭔가 건강에 좋을 것 같은 약초뿌리나 염주, 지팡이들을 사찰매점에서 만져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노고단에 올라가 풍경을 바라보니 후회가 되더군요.

내가 조금만 정리하고...특히 자전거는 천은사에 묶어두면 누가 가져갈래야 가져가기도 힘들었을텐데.

그 분들을 위해 조금만 정리해서 같이 모셔서 올라갈 걸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특히, 노고단 정상에 구례 버스가 있어서, 내려올 때는 따로 모셔다 드리지 않아도 되고요...


전 이 광경을 언젠가 또 누군가와 볼 겁니다. 

하지만 그 노부부는 그럴 날이 없을 지도 모릅니다.


혼자 다니니 이런 저런 생각만 드네요. ㅎ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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